씨눈 책읽기

 


  몇 살 적인지 잘 안 떠오르지만, 아마 열 살 언저리였지 싶은데, 어느 날 밥을 먹다가, 밥그릇에 담긴 쌀알마다 노란빛이 끄트머리에서 곱게 피어나는구나 하고 느꼈다. 밥알을 젓가락으로 하나하나 집으면서 곰곰이 들여다보았다. 밥알을 하나씩 입에 넣어 야금야금 깨물어 보았다. 하얀 속살은 어떤 맛이고 노란 씨눈은 어떤 맛인지 헤아려 보았다. 아주 천천히 야금야금 깨물어 보니, 하얀 속살과 노린 씨눈은 저마다 맛이 다른 줄 알 수 있었다. 한참 밥알을 하나씩 야금야금 깨물어 되게 천천히 밥을 먹은 적이 있다.


  어릴 적에 어머니 일손을 거들며 조리로 쌀을 일 적에, 물로 가만히 씻고 보면, 하얀 쌀알에 노란 씨눈이 반짝반짝 빛나곤 했다. ‘그래, 너를 먹으며 기운을 내는구나. 너를 먹어야 기운이 솟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뒤로는 어디에서 밥을 먹든 씨눈이 어느 만큼 맑게 빛나는가를 살핀다. 씨눈이 있는 밥은 조금 더 많이 씹으면서 밥맛을 즐기고, 씨눈이 없는 밥은 씹는 맛이 없어 저절로 입에서 녹아 삼켜야 하곤 한다.


  읍내에서 쌀을 사거나 이웃 할매가 건네는 쌀을 받을 적에 으레 씨눈을 살핀다. 요즈음은 누런쌀이더라도 씨눈을 깎곤 한다. 생김새는 누런쌀이라지만, 씨눈 없는 누런쌀이 있기도 하다. 일본 한자말로 ‘오분도미’라든지 ‘삼분도미’라든지 ‘칠분도미’ 같은 말을 쓰는데, 쉬운 한국말로 ‘씨눈 있는 누런쌀’이나 ‘씨눈 없는 누런쌀’이나 ‘씨눈 있는 흰쌀’이나 ‘씨눈 없는 흰쌀’처럼 쓰면 참으로 좋으리라 느낀다. 아마 도시에서는 씨눈을 살릴 만큼 깎는 흰쌀을 어렵잖이 찾을 수 있으리라. 도시에 있는 커다란 가게에서는 그 자리에서 쌀겨를 벗겨서 팔기도 하니까. 외려 시골에서는 어디를 가다 씨눈을 모조리 깎아서 판다. 씨눈 있는 쌀을 찾기가 어렵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애써 유기농이니 친환경농이니 한다 하더라도, 막상 씨눈을 모조리 깎아서 버린다면, 밥을 먹는 뜻이나 보람이 얼마나 될까. 씨눈을 안 먹고서 밥을 먹었다 할 수 있을까. 예부터, 기운을 솟도록 북돋우는 알짜는 씨눈과 껍질에 있다고 했는데, 왜 오늘날 시골에서는 씨눈도 껍질도 모두 버리려 할까. 언제부터 이 나라 시골에서 씨눈과 껍질을 모두 버리는 삶 되었을까. 4346.12.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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