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기대지 않기

 


  대청마루를 손바닥으로 쓸다가 손끝을 길게 벤 탓에 여러 날 물 만지기 힘들었다. 어제부터 제법 아물어, 이제는 물을 만져도 쓰라리지 않다. 벤 자리가 아직 달라붙지 않고 살짝 벌어졌기에 물을 만지면서도 살짝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물을 만진다. 쌀을 씻고 설거지를 하며 밥을 짓는다.


  손가락을 다친다든지 어디 아프다든지 이럴 때에는, 살짝 기대고픈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럴 때에 기대지 않는다. 이럴 때에 기댈 만하다면 여느 때에 곁님이 씩씩하게 일어서서 살림을 다부지게 일구지 않았겠느냐고 느낀다. 여느 때에 씩씩하게 일어설 수 있도록 조용히 기다리면서 지켜보아야 한다고 새삼스레 느낀다. 그래서, 다친 손가락으로 어떻게 밥을 짓고 물을 만지며 빨래를 해야 할까 하고 가만히 헤아린다. 우리 어머니가 젊을 적에 어떻게 집살림 건사하셨을까 하고 곰곰이 그린다. 지난날 어머니들은 아버지한테 조금도 기댈 수 없었다. 지난날 어느 아버지가 집일을 건사했는가. 지난날 어느 아버지가 밥을 짓거나 빨래를 하거나 청소를 하거나 아이들을 맡아 돌보거나 했는가. 더러 집일을 살뜰히 나누어 맡는 분들 있었을 테지만, 즐겁거나 씩씩하게 먼저 나서서 집일을 알뜰살뜰 가꾸려 한 사내는 아주 드물다.


  모르는 일이지. 조선 사회가 되며 가부장 제도가 뿌리를 내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는 일이지. 고려나 고구려나 가야나 백제나 발해 같은 때에는 가부장 제도 아닌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며 함께 일구는 살림’이었는지 모를 노릇이지. 왜냐하면, 어느 역사책에도 여느 시골마을 여느 살림집 이야기를 안 담으니까, 책으로는 알 수 없지. 그러나, 조그마한 시골마을이라든지 깊은 숲속 멧골집을 떠올리면, 이러한 집에서 ‘아버지라서 집일 안 해도 되는’ 삶은 없었으리라 느낀다. 사내이건 가시내이건 나무를 하고 장작을 패며 불을 지펴 밥을 지을 줄 알아야 했으리라 느낀다. 사내도 가시내도 나물을 캐고 풀을 뜯으며 씨앗을 심을 줄 알아야 했으리라 느낀다. 절구질을 누구나 해야 했을 테고, 멧돌질도 서로 도우면서 함께 했겠지.


  오늘날 사회는 ‘남녀평등(또는 여남평등)’을 이야기하는데, 막상 마을 이웃이나 도시 이웃을 살펴보면, 평등보다는 푸대접과 외곬로만 나아가는 듯하다. 현대 사회나 도시 사회는 더더욱 ‘어머니가 집에서 할 일’이 늘거나 많을 뿐, ‘아버지가 집에서 할 일’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고 보여주지 않으며 말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국민학교에서 가시내와 사내 가리지 않고 밥하기·뜨개질·톱질을 가르쳤다. 예전에는 손위인 누나이든 형이든 오빠이든 언니이든, 손아래인 동생을 돌볼 줄 알아야 했다. 사내라서 동생을 안 돌봐도 되지 않았다. 가시내만 동생을 돌봐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참말 오늘날은 어떤 모습일까. 오늘날 젊은이는 집일을 얼마나 알까. 오늘날 푸름이는 집살림을 얼마나 물려받거나 배울까. 오늘날 아이들은 동생을 얼마나 아끼거나 사랑하면서 돌볼 줄 알까.


  손가락을 다쳐 며칠 끙끙 앓으며 집살림을 새삼스레 돌아본다. 나 스스로 한결 알차고 알뜰히 일손을 찾아보라는 뜻 아닐까 하고 헤아린다. 이제 손가락은 거의 아물었고, 깊은 밤에 부시시 깨어나, 아침에 식구들 먹을 밥을 지을 수 있도록 누런쌀을 밥냄비에 부어 잘 씻어서 불린다. 저녁에 안 하고 남긴 설거지를 한다. 한겨울에는 밤에 따로 물을 틀어 설거지를 해야 물이 안 언다. 고흥은 겨울에 물을 안 틀고 지내도 안 얼기는 하지만, 퍽 추운 다른 고장에서 살던 버릇이 있어, 따뜻한 곳에서조차 밤에 한두 시간마다 일어나 물을 틀어서 살핀다. 4346.12.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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