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83] 동그라미
우리 집 큰아이가 다섯 살부터 ‘네모빵’을 말합니다. 어른들은 ‘식빵’이나 ‘샌드위치빵’이라 말하지만, 큰아이로서는 이도저도 못 알아들을 만한 이름이라 여겼는지, 그냥 ‘네모빵’이라 말해요. 그래서, 곁님과 나는 큰아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네모빵’이라 말합니다. 아무래도 우리 두 사람이 ‘사각형’이라는 한자말을 안 쓰고 ‘네모’라는 한국말을 쓰니, 큰아이도 이 말을 배웠구나 싶어요. 우리 집 작은아이는 세 살로 접어든 어느 날부터 ‘동그라미’를 말합니다. 처음에는 ‘동그람’이라고 했고 한동안 ‘동글암이’처럼 말하기도 하는데, 무얼 가리키나 궁금했는데, 동그랗게 생긴 과자나 빵이나 소시지나 장난감을 모두 ‘동그라미’로 가리켜요. 훌라우프도 아이들한테는 아직 ‘동그라미’입니다. 고구마를 동그랗게 썰어서 자주 내밀면, 작은아이는 고구마도 ‘동그라미’라 가리키겠지요. 아무래도 곁님과 내가 ‘원’이라는 한자말은 안 쓰고 ‘동그라미’라는 한국말만 쓰니, 작은아이도 이 말을 시나브로 물려받았지 싶어요. 아이들이 조잘조잘 예쁘게 들려주는 말을 가만히 들으며 내 어린 날을 곧잘 돌아보곤 합니다. 국민학교에서 교사인 어른들이 ‘원’이라 말하면 무얼 가리키는지 좀처럼 못 알아들었어요. 그러다가 ‘동그라미’라 하면 아하 하고 알아차렸어요. 아마 우리 어머니도 어린 나한테 ‘동그라미’만 말씀하지 않았을까요. 어느 어머니이든 갓난쟁이 앞에서, 또 두어 살 아기 앞에서, 그리고 서너 살 너덧 살 대여섯 살 어린이 앞에서 ‘동그라미’만 말할 테지요. 4346.12.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