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파요 과학은 내친구 15
야규 겐이치로 글 그림, 예상열 옮김 / 한림출판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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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22

 


맛있게 밥 함께 먹어요
― 배고파요
 야규 겐이치로 글·그림
 예상렬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2002.7.30.

 


  배가 고플 적에 밥을 먹습니다.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끼니 때에 맞추어 밥을 차릴 수 있습니다만, 배가 고플 적에 먹어야 밥맛이 돕니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습니다. 배가 고픈 아이들은 밥그릇을 싹싹 비웁니다.


  참말 그렇지요. 배가 고프니 밥을 차리고, 배가 고프니까 밥을 먹어요. 배고픈 아이와 어른이 나란히 둘러앉아 밥그릇을 비웁니다. 수저를 들고 신나게 먹습니다.


  퍽 어린 아이는 배가 고프면 웁니다. 갓 태어난 아기도 배가 고프면 울어요. 배가 고픈데 왜 밥을 안 주느냐면서 웁니다. 배가 고프니 얼른 밥을 주어 놀 기운을 되찾게 해 달라며 울어요.


  자, 아이들이 기다리니 밥을 차립니다. 차근차근 밥을 차립니다. 때로는 후다닥 밥을 차려서 내놓습니다. 때로는 아이들이 느긋하게 기다리도록 하면서 밥을 올립니다. 밥 익는 냄새가 돌고 국 끓는 소리가 들리면, 아이들은 이야 곧 맛있게 먹겠구나 여기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많이 어린 아이라면 좀처럼 못 기다릴 수 있으니, 아직 다 차리지 않은 밥상에 앉거나 어버이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한 입만 두 입만 하면서 입을 쩍쩍 벌립니다. 배부를 적에는 쳐다보지 않던 먹을거리라 하더라도 배고플 적에는 부랴부랴 손을 뻗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밥을 잘 안 먹거나 가려서 먹는다면, 배가 고프게 하면 됩니다. 신나게 뛰어놀도록 하고는 밥은 살짝 뜸을 들여서 주면 돼요. 밥은 다 차렸지만 밥상에만 올리지 않고는 조용히 기다립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나오는가를 지켜봅니다. 그야말로 배가 고파 어떤 밥이든 고맙게 먹으려 할는지, 배고픈 주제에 이것저것 가리려 하는지 가만히 살펴봅니다.

 

 


.. “아, 배고프다. 언니, 오늘은 엄마가 안 계시니까 일찍 간식을 먹자.” “안 돼. 간식은 간식 시간에 먹어야 해!” ..  (2∼3쪽)


  아이들이 먹는 밥은 어른이 함께 먹는 밥입니다. 어른은 아이들 몸이 튼튼히 자라기를 바라며 밥을 차립니다. 그런데, 어른은 어른이 되기까지 살아오며 입과 혀에 익숙한 밥을 차리곤 해요. 아무래도 ‘아이와 함께 먹는 밥’보다는 ‘어른이 이제껏 먹은 밥에 숟가락 더 얹어서 먹는 밥’이 되곤 합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나라와 고장마다 날씨가 다르고 삶이 달라요. 시베리아나 알래스카에서는 이곳대로 밥삶이 달라요. 티벳이나 몽골도,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도, 중남미나 북중미도, 또 유럽도, 중국과 일본도, 저마다 밥삶이 다릅니다. 한겨레 사이에서도 함경도와 평안도와 경기도와 강원도와 충청도와 전라도와 경상도 밥이 똑같을 수 없습니다. 날씨가 다르고 삶이 다르니까요. 추운 곳에서는 추운 곳대로 밥을 차리고, 더운 곳에서는 더운 곳대로 밥을 차려요. 바닷마을과 멧골마을 밥차림이 달라요. 들이 너른 마을과 깊숙한 골짝마을 밥차림이 다르지요.


  그래도 옛날에는 어디에서나 시골밥이었으리라 느껴요. 옛날에는 어디나 시골이었을 테니까요. 임금이나 신하 같은 이들이 아니었다면, 양반이라 하더라도 떵떵거리듯 돈이 많은 집안이 아니었다면, 참말 거의 모든 한겨레는 손수 흙을 일구면서 밥을 얻었으리라 생각해요. 흙에서 곡식을 거두고 풀을 얻으며 열매를 따서 도란도란 밥을 차렸으리라 생각해요.


  아마 풀밥이었을 테지요. 끼니마다 키질을 하고 절구질을 하며 조리질을 한 뒤 물을 맞추어 솥에 장작불 때어 밥을 지었을 테지요. 흰쌀밥이란 거의 안 먹었으리라 생각해요. 돈과 힘이 있는 이들은 스스로 흙을 만지지도 않고 키질이니 절구질이니 조리질이니, 또 아궁이에 불을 때어 솥으로 밥을 끓이는 일이니, 아무것도 안 했겠지요. 흰밥에 고깃국이란 돈과 힘이 있는 이들이 누리던 밥차림이었으리라 느껴요. 그리고, 흰밥에 고깃국만 먹던 이들은 쌀알에서 씨눈까지 제대로 먹는 밥이 아니었을 테니 자꾸 몸이 아팠겠지요. 스스로 흙을 만지지 않고 땀흘려 일하지 않는 채 영양소만 많이 집어넣으니 몸이 튼튼하기 어려웠으리라 느껴요. 이와 달리, 누런쌀밥 먹고, 풀을 뜯으며, 늘 흙을 만지고 흙집에서 지내는 거의 모든 시골사람은 몸이 아프거나 힘들 일이 없었으리라 생각해요.


.. 선희네 저녁은 뭐지? 몰라. 하지만 크로켓이면 좋겠다. 나도, 할머니가 만든 만두, 아주 좋아해. 엄마가 만든 크로켓, 할머니가 만든 만두 ..  (13쪽)

 


  야규 겐이치로 님 그림책 《배고파요》(한림출판사,2002)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아, 배가 고플 적에 얼마나 밥이 먹고 싶을까. 아, 배가 고파서 먹는 밥이란 얼마나 맛있을까.


  무엇을 차려서 먹든 대수롭지 않아요. 고픈 배를 채울 수 있으면 고맙습니다. 맛나게 먹을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나물 몇 가지에 밥과 함께 간장에 버무려서 먹어도 반갑습니다. 된장국이랑 밥 한 그릇이어도 즐겁습니다. 김치 한 조각 있어도, 김치 아닌 날무나 날배추 있어도, 언제나 뚝딱 삭삭 말끔하게 밥그릇 비울 만합니다.


  푸른 숨결을 먹는 밥이거든요. 따순 사랑 담긴 밥이거든요. 즐거운 넋 서린 밥이거든요. 밥을 차리는 사람들 예쁜 손길을 밥 한 그릇으로 먹어요. 밥상에 오르기까지 너른 들과 숲과 바다와 멧골 곳곳에서 저마다 푸른 숨결로 살아온 다른 목숨을 먹어요. 나락 한 줌은 봄부터 가을까지 어떤 햇볕을 머금었을까요. 어떤 빗물을 마시고, 어떤 바람을 누리며, 어떤 흙에 뿌리를 내리다가 이렇게 밥 한 그릇이 되었을까요. 나물 한 줌은 어느 들이나 밭둑이나 숲이나 멧골에서 어떤 햇볕과 빗물과 바람과 흙을 누리며 자라다가 우리 밥상까지 왔을까요. 물고기 한 마리는 어떤 바다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파란 물빛 머금다가 우리한테 고기 한 점 될까요.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어떤 삶을 누리느냐가 달라지지 싶어요. 먹는 밥에 따라 삶은 새롭게 거듭나지 싶어요. 사랑스러운 밥을 먹으면서 사랑스러운 삶 되고, 따순 밥을 먹으면서 따순 넋 되어요. 착한 밥을 먹으면서 착한 삶 되고, 고운 밥을 나누면서 고운 넋 됩니다.


.. 아, 맛있었다! 간식을 먹었더니 기운이 난다. 밖에서 놀다 올까? 신나게 놀고 나면 저녁 때는 ..  (28쪽)


  그나저나, 예쁜 그림책 《배고파요》인데, 이 그림책에 적힌 말투는 좀 곰곰이 생각해야지 싶어요.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지만, “배가 납작납작”이라든지 “배 납작 신호” 같은 말을 자꾸 되풀이하는 이 그림책 말투는 아이 어버이로서 찬찬히 따져야지 싶습니다.


  ‘납작해진다’고 할 때는 어떤 모습일까요? 오징어가 납작해지지요. 쥐포가 납작하지요. 자동차 바퀴에 눌려 납작해져요. 꾹 누르거나 밟으면 납작해집니다. 그러니까, 부피 있는 무언가를 눌러서 부피를 없앨 때에 ‘납작하다’고 합니다.


  자, “배가 납작납작”이라면 어떤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요. 배가 고픈 모습이라면 어떤 말로 나타내야 올바를까요.


  배가 부르면 배가 나옵니다. 배가 고프면 배가 들어갑니다. 배가 쏙 들어가요. 홀쭉해집니다. 그래서 ‘홀쭉이’와 ‘뚱뚱이’ 같은 이름이 있어요. 몸이 마른 사람이라면 ‘날씬하다’고도 하지만, 제대로 못 먹은 사람은 ‘비쩍 말랐다’고 해서 ‘홀쭉하다’고 가리킵니다.

 


 배고파서 배가 납작납작. 지금부터 간식 시간까지 몇 분? (4쪽)
→ 배고파서 배가 홀쭉홀쭉. 이제부터 간식 때까지 몇 분?
 굉장히 배가 고파서 배가 납작해졌어. (9쪽)
→ 몹시 배가 고파서 배가 홀쭉해졌어.
 할머니가 만든 만두. 나 배고파지기 시작했어. (13쪽)
→ 할머니가 빚은 만두. 나 슬슬 배고파.
 우리의 배는 언제 납작해지는 것일까? (16쪽)
→ 우리 배는 언제 홀쭉해질까?
 ‘배 납작 신호’는 우리 몸 속의 ‘에너지’가 모자라게 되었을 때 나옵니다. (18쪽)
→ ‘배 홀쭉 소리’는 우리 몸에 ‘힘’이 모자랄 때 나옵니다.
 ‘배 납작 신호’가 나오면 우리는 배고파져서 밥을 먹게 됩니다. (20쪽)
→ ‘배 홀쭉 소리’가 나오면 우리는 배고파서 밥을 먹습니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24쪽)
→ 밥을 제대로 먹지 않으면
 간식에는 ‘영양분’이 들어 있지 않나요? (24쪽)
→ 간식에는 ‘영양분’이 안 들었나요?
 ‘영양분’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덤’인 간식도 필요한 것입니다. (25쪽)
→ ‘영양분’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덤’인 간식도 먹어야 합니다.


  ‘홀쭉’이라고 적어야 할 대목을 ‘납작’이라고 자꾸 적은 대목은 마땅히 바로잡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배는 홀쭉해지니까요. 그리고, 이 그림책을 읽을 어린이 눈높이와 안 맞는 말투도 가다듬어야지 싶어요. 아직 한글을 모르는 나이부터 이 그림책을 어버이와 함께 귀로 들을 텐데, 너덧 살 눈높이를 헤아려 우리 말글을 찬찬히 살펴 알맞게 가누어야지 싶어요. 낱말도 말투도 꼭 아름다운 한국말이 되도록 마음을 기울여야 비로소 아름다운 그림책 돼요.


  “배고파지기 시작했어” 같은 말투는 한국 말투가 아닌 일본 말투입니다. 이른바 직역투입니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슬슬 배가 고픈걸” 하고 말해요. “배고파지기 시작”하지 않습니다. 밥은 밥이지 ‘식사’가 아니에요. 밥을 먹으면 ‘힘’이나 ‘기운’을 새로 낼 수 있어요. 아이들한테 섣불리 ‘에너지’를 말할 까닭 없어요. 이 그림책에서는 “배 납작 신호”라 나오지만, 배가 고파서 홀쭉할 적에 꼬로록 하는 소리가 나요. 그러니까, ‘신호’라기보다는 ‘소리’요, ‘신호’가 아닌 ‘소리’라 말해야 알맞다고 하겠어요. 너덧 살 아이들한테까지 ‘필요’ 같은 일본 한자말을 이야기할 까닭은 없어요. 아이들이 튼튼히 자라려면 “영양분이 많이 들”고, 덤인 “간식도 먹어야” 그야말로 무럭무럭 자랍니다.


  예쁘게 자랄 아이들한테 예쁜 말로 빚은 그림책을 베풀 수 있기를 빌어요. 그러고 보니, 만두는 ‘만든다’고 하지 않아요. 만두는 ‘빚는다’고 하지요. 도자기를 빚듯이 만두를 빚습니다. 어른들만 보는 책에서도 말은 말대로 옳게 가눌 노릇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보는 그림책은 더더욱 말을 잘 살피고 올바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맛있게 밥 함께 먹고, 즐겁게 책 같이 읽어요. 4346.12.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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