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과 스무 해
나한테 새해는 마흔 살이 되는 해이다. 나는 스무 살부터 어버이 집에서 따로 나와서 혼자 살림을 꾸렸으니, 살림을 꾸린 지 꼭 스무 해째 되는 해가 되기도 한다. 마흔 살 가운데 반토막을 집일을 나란히 하는 삶으로 누린 셈이다.
아침에 마룻바닥을 맨손으로 쓸다가 그만 오른손 셋째손가락을 크게 벤다. 핏물이 똑똑 떨어진다. 웬만큼 베어서는 손가락이든 다리이든 어느 곳이든 아무것도 안 바르고 안 붙이는데, 오늘만큼은 빨간약으로 소독을 하고 밴드를 두른다. 그런데 퍽 성가시다. 안 하다 하니 그런 듯하다. 푼다. 그런데, 풀자마자 벤 자리가 벌어진다. 다시 피가 날 듯하다. 이번에는 하얀 그물천을 대고 돌돌 감는다. 더 도톰하다.
설거지는 할 수 있을까. 빨래는 할 수 있을까. 밥은 지을 수 있을까. 에휴 한숨 한 번 쉬다가 그대로 자판을 두들기고 빗질을 하고 밥을 짓는다. 설거지는 왼손으로 한다. 칼질을 하고 고구마를 헹군다. 무를 썰고 국을 끓인다.
지난날 돌이키면 손가락이든 발가락이든 이곳저곳 곧잘 다쳤다. 제대로 마음을 쓰지 않아 다치고, 몸을 함부로 굴리다가 다쳤다. 손끝이 살짝 베더라도 신문을 돌리려 자전거를 몰 적에 번거롭다. 무릎을 다치거나 어깨를 다쳐도 신문배달뿐 아니라 글쓰기와 청소와 밥하기 모두 고단하다. 어느 한 곳 다칠 때에는 다음에 이렇게 다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다치면 아파서 안 좋다기보다 집일과 집살림 모두 여러 곱 힘을 들여야 하니까.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다가 그물천은 젖어서 벗긴다. 벤 자리는 아직 아물지 않는다. 넓직한 밴드를 새로 붙인다. 저녁까지 이대로 두고 잘 때에 벗겨야겠다. 밥은 알맞게 익고 국도 이럭저럭 익는다. 달걀도 다 삶았으니, 조금 뒤 아이들 부엌으로 불러 밥을 먹여야지.
다른 사내들은 혼인을 하면 집일을 거의 안 하거나 아주 적게 할 텐데, 나는 혼인하기 앞서부터 언제나 집일을 혼자 맡아서 했고, 혼인한 뒤로도 집일을 도맡아 한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모든 살림을 고만고만하게 다스리면서 하루를 누린다. 집일과 집살림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아이들한테 제대로 마음을 쏟지 못하는 곁님과 지내니 여러모로 일거리가 그득그득 쌓인다. 이렇게 지내니 책방마실은커녕 집에서 느긋하게 책을 펼칠 겨를조차 모자란다. 그러면 나는 슬프거나 힘든 삶일까. 아무것도 못하는 삶일까. 틈이 없어 글을 못 쓸까.
집일을 도맡으니 외려 더 글을 많이 쓸 수 있다고 느끼기도 한다. 늘 새롭게 글을 쓰고 책을 읽기도 한다고 느낀다. 밥을 짓는 글을 쓰고, 국을 끓이는 책을 읽는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글을 쓰고, 아이들 놀이를 함께 누리는 책을 읽는다. 손가락이 다치면 다치는 대로 재미난 글을 쓸 만하고, 손가락이 나을 무렵 새삼스러운 책을 읽는구나 싶다.
내 나이 스무 살이던 지난날은 우리 어머니가 이녁 작은아이와 누린 스무 해였겠지. 그무렵 어머니는 어떤 넋과 삶과 말로 하루를 누리셨을까. 앞으로 우리 아이들 스무 살 나이가 되면, 내가 우리 어버이와 제금을 나며 살던 무렵 어머니가 느꼈을 마음이 될까. 이제 천천히 첫 걸음 내디디는 삶이 아닐까 하고 돌아본다. 4346.12.1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