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33] 밖에서 먹은 것 내놓기
― 물맛과 바람맛 사뭇 달라

 


  시골에서 살아갈 밑돈을 도시에서 법니다. 도시를 가끔, 한두 달에 한 차례쯤 드나들며 이럭저럭 살림돈을 법니다. 군내버스를 타고 시골집을 나선 뒤, 시외버스를 타고 읍내를 벗어나는데, 시골마을 나설 때부터 ‘이 좋은 바람을 한동안 못 마시네’ 하고 느껴요. 우리 집 맑은 물을 두 병 챙겨 길을 나서는데 ‘이 좋은 물을 알뜰히 아껴서 마셔야겠네’ 하고 다짐합니다.


  도시에서는 샘물을 페트병에 담아서 팔아요. 공장에서 척척 찍어내고, 짐차에 그득 실어 날랐다가, 가게에 척척 쌓아 형광등 불빛을 받아요. 도시사람 먹는 샘물이란 모두 깊은 시골마을 아주 조용하고 한갓지며 깨끗한 곳에서 흐르던 물일 텐데, 막상 이 조용하며 한갓지며 깨끗한 숨결 깃든 물을 도시로 보낼 적에는 가공식품처럼 다룹니다. 햇볕도 바람도 나무도 꽃도 마주하지 못하는 물이 되어요.


  시골물 다 마시면 페트병 물을 사다가 마셔요. 페트병 물도 시골물이지만 맛이 달라요. 석유화학물에서 뽑은 플라스틱병에 오랫동안 담겼거든요. 어마어마한 기계가 땅을 파헤쳐 뽑아올렸거든요. 아무리 깨끗하고 예쁜 시골물이라 하더라도, 플라스틱병에 담기기까지 고달프고, 플라스틱병에 담긴 뒤로도 고단해요. 페트병 시골물이 가게에 놓인 뒤에도 오랫동안 냉장고나 창고에 갇힌 채 시달려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병원을 자주 들락거려야 하는 까닭 가운데 하나는 물 때문이 아닌가 하고 느껴요. 물꼭지를 틀어서 마시는 물은 시골마을 여럿 물에 잠기게 하는 댐부터 이은 물인데, 흙바닥인 곳에서 흐르는 냇물 아닌, 시멘트 물관을 거쳐서 흐르다가 플라스틱이나 쇠로 만든 관을 거쳐 얻어요. 도시에서는 페트병이든 물꼭지이든, 또 정수기이든, 사랑스러우면서 반가운 물이라기보다 고단하면서 괴로운 물을 마시는 셈이에요. 우리 몸으로 들어오는 물이 차분하거나 느긋하게 쉬지 못한 채 들볶이다가 우리 몸으로 들어오는 셈이에요.


  도시로 일하러 마실을 갈 적에는 으레 물잔을 한동안 들여다봐요. 내 앞에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니, 부디 네 맑은 빛으로 돌아가렴, 내 몸으로 스며들면서 고운 네 넋 되찾으렴, 하고 마음속으로 빌어요.


  도시에서 일을 마치고 시골집으로 돌아오면 며칠쯤 배앓이를 합니다. 집 바깥인 도시에서 먹은 것을 여러 날에 걸쳐 배를 끙끙 앓으며 내놓습니다. 물은 물대로 물맛이 다르고, 마을과 집 둘레를 흐르는 바람은 바람대로 바람맛이 달라요. 몸과 마음을 살리는 물과 바람을 싱그럽게 새로 맞아들이면서 속비우기를 해요. 속비우기 여러 날 하며 다른 일은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데, 며칠 지나면 기운을 되찾아 다시 즐겁게 시골살이 누립니다. 4346.1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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