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책 20만 원
서울 창천동에 있는 헌책방 〈글벗서점〉에 책마실을 간다. 여러 해 들르지 못해 오늘은 꼭 가자고 다짐한다. 망원동에 있는 출판사로 가는 길에 들른다. 나한테 주어진 말미는 한 시간. 바지런히 골마루를 돌고 누비며 사진책을 바라본다. 이 책도 사고 싶고 저 책도 고르고 싶다. 주머니를 헤아린다. 내가 쓸 수 있는 맞돈은 팔만 원 즈음. 어느 책을 골라서 쥐어들는지 망설인다. 이 책을 집어서 만지작거리다가 내려놓는다. 저 책을 들어서 넘기다가 히유 한숨을 쉰다. 우리 사진책도서관에 두고 싶은 사진책을 장만하자면, 이곳에 있는 사진책으로만 하더라도 이백만 원쯤 들겠구나 깨닫는다. 추리고 추려서 팔만 원어치 고른다. 헌책방 아주머니가 만 원을 에누리해 주신다. 찻삯까지 썼는데 찻삭이 남는다. 몹시 고맙다. 장만한 책을 가방에 넣고 책방을 나오려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마음속으로 다짐을 한다. ‘나는 언제나 엄청난 부자이다.’ 이 사진책들 안 사고 집으로 가서 땅을 치지 말자. 책값은 내 살림살이에 곧 들어오지 않겠어, 하고 생각한다. 씩씩하게 사진책 네 권 더 고른다. 십이만 원 나온다. 헌책방 아주머니가 또 만 원 에누리를 해 주신다. 카드로 긁는다. 더없이 미안하면서 고맙다. 헌책방 아주머니가 말씀한다. “저기 저 위쪽 보셨어요? 저기에 일본 사진책들 있는데.” 아무렴, 보았어요, 그런데 저 책들까지 가져가려면 우리 집 살림돈이 바닥나는걸요, 아까 그 사진책들 슬쩍 쳐다보기만 하고 일부러 못 본 척했답니다, 하는 말은 속으로만 하고, 빙그레 웃는다. “저 가운데 한 권은 있어요. 참 아름다운 사진책이라 다 가져가고 싶은데, 아이고.” 내 손으로 온 책들 사랑하자. 오늘 못 산 책은 다음에 사면 된다. 오늘은 오늘 산 책들 즐겁게 돌아보고 살피고 읽고 삭히면서 마음밭 살찌우자. 그리고, 사진책 장만할 돈도 기쁘게 벌자. 아름다운 글을 써서 내 이웃들과 나누고, 아름다운 책을 내놓아, 우리 이웃들한테 선물하며, 나는 아름다운 돈을 벌어 아름다운 책을 새삼스레 장만해서 우리 사진책도서관에 즐겁게 꽂자. 다음에는 사진책 이백만 원어치 신나게 사들일 수 있는 살림으로 가꾸자. 4346.1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