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은 책 말하기

 


  읽지 않은 책을 말하는 사람이 무척 많다. 비평이나 평론을 하는 사람이라면 너무 바쁜 나머지 미처 읽지 않은 책이라 하더라도 말해야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왜 읽지 않은 책을 말하려 할까. 읽은 책만 말하더라도 책이야기를 미처 못 풀어놓는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 백 권을 읽는다면 백 권을 다 말할 수 있을까. 천 권이나 만 권을 읽었으면 천 권이나 만 권을 다 말하는가.


  첫 쪽부터 끝 쪽까지 눈으로 다 훑는다고 해서 ‘책을 다 읽었다’고 말할 수 없다고 느낀다. 첫 쪽부터 끝 쪽까지 다 훑는 일이란 ‘책훑기’이지 ‘책읽기’가 아니다. 책훑기란 책을 살피는 여러 모습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곧, 책훑기를 한대서 책읽기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책훑기를 마친 뒤에라야 책을 말할 수 있지 않다. 다시 말하자면, 책읽기를 해야 책을 말할 만하다. 책 하나를 빚은 사람들 넋과 꿈과 사랑을 찬찬히 ‘읽은’ 뒤에, 비로소 어느 책 하나를 두고 나 스스로 ‘읽은’ 삶과 꿈과 사랑을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녁 삶결대로 책을 읽는다. 책을 잘 읽거나 못 읽었다고 가를 수 없다. 저마다 이녁 눈길대로 책을 읽을 뿐이다. 그런데, 이 말도 그리 올바르지 않은 듯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녁 삶결대로 책을 ‘훑는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 사람들은 저마다 이녁 눈길대로 책을 ‘훑는다’고 해야 맞지 않을까. 그저 훑기 때문에 책을 말하지 못하고, 그예 훑는 몸가짐으로는 책을 제대로 밝히거나 나누거나 이야기하기 어려운 셈 아닐까.


  이곳저곳에서 ‘책읽기모임’을 하지만, 책읽기모임을 슬기롭고 아름답게 하는 곳은 드물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책읽기모임은 책을 ‘읽고’ 나서 즐거움과 사랑과 꿈을 나누는 모임이 되어야 할 텐데, 하나같이 책을 ‘훑는’ 데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왜 책을 첫 쪽부터 끝 쪽까지 훑으려 하는가. 책을 ‘읽으’면서 이녁 마음을 사로잡거나 파고들거나 북돋우거나 살찌우거나 건드리거나 깨우치거나 이끄는 이야기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내 살가운 이웃이 아름답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함께 느끼고 싶어 ‘읽는’ 책이다. 내 사랑스러운 동무가 즐겁게 살림하는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 싶어 ‘읽는’ 책이다. 우리들은 “읽은 책 말하기”를 할 때에 아름다우리라 생각한다. 우리들은 “읽은 책 말하기”를 꽃피울 때에 즐거우리라 생각한다. 우리들은 “읽은 책 말하기”를 나누는 책읽기모임 꾸릴 때에 사랑스러우리라 생각한다. 4346.1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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