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넋

 


  책을 쓴 사람들 넋을 읽는다. 책을 빚은 사람들 꿈을 읽는다. 책을 다루는 사람들 손길을 읽는다. 책이 되어 준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흐르던 빛을 읽는다. 책마다 곱게 드리우는 무늬를 읽고, 책 하나에 살포시 감도는 이야기를 읽는다.


  책을 읽는 사람은 어떤 마음이 될까.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삶을 일굴까. 책을 말하는 사람은 어떤 눈빛이 될까.


  어린이와 함께 읽는 책을 쓰거나 엮거나 다루는 사람은 이 땅 아이들한테 어떤 꿈을 들려주려는 마음일까. 성인잡지를 내거나 성인만화를 그리는 사람은 이 땅 어른들한테 어떤 노래를 들려주려는 마음일까. 시를 쓰거나 소설을 쓰는 사람은 이 땅 이웃들하고 어떤 사랑을 나누려는 마음일까. 자기계발과 처세를 말하려는 사람은 이 땅에서 나고 자라는 이웃들 앞에서 어떤 빛이 되고 싶은 마음일까.


  어느 책이든 나무가 있기에 태어난다. 이제 나무도 종이도 없이 전자책이 나올 수 있다 하는데, 나무도 종이도 쓰지 않는 책은 참으로 지구별과 숲을 아끼는 넋으로 엮는 책이 될까. 나무도 종이도 쓰지 않는 책이 되면서, 오히려 지구별과 숲하고 더 멀어지는 책으로 나아가지는 않을까. 나무로 된 책이요, 종이로 빚는 책을 엮으면서, 섣불리 아무 글을 쓸 수 없으며, 함부로 아무 책이나 내놓을 수 없는 넋을 잊거나 잃지는 않는가.


  글 한 줄에 아름다운 넋 담으려 한 책은 오래도록 읽힌다. 글 두 줄에 사랑스러운 얼 실으려 한 책은 두고두고 읽힌다. 글 석 줄에 푸른 숨결 얹으려 한 책은 한결같이 읽힌다. 누구나 바람을 마셔야 목숨을 잇듯, 아름다운 넋이 있기에 책을 읽는다. 누구나 물을 들이켜야 목숨을 건사하듯, 사랑스러운 얼 있어 책을 읽는다. 누구나 밥을 먹어야 목숨을 살찌우듯, 푸른 숨결 있는 책을 읽는다. 바람과 같고, 물과 같으며, 밥과 같은 넋으로 책이 태어난다. 4346.1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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