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편지
유상준 지음, 박소영 그림 / 그물코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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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책 읽기 54

 


풀과 나무가 띄우는 노래
― 풀꽃편지
 유상준 글
 박소영 그림
 그물코 펴냄, 2013.11.25.

 


  군청에서 경관사업을 한다며 빈논에 심도록 시키는 유채논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유채논이 된 이 땅에 심은 유채씨는 어떤 유채씨일까요. 이 씨앗은 오랜 옛날부터 이 땅에서 나고 자라던 유채풀이 내놓은 씨앗일까요, 아니면 나라밖 널따란 유채밭에서 거둔 씨앗을 사들여서 심는 씨앗일까요.


  시골 군청마다 유채꽃으로 경관사업을 합니다. 제주섬에서도, 전라도 골골샅샅에서도, 경상도 구석구석에서도, 아마 충청도나 강원도나 경기에서도, 온 나라가 겨울부터 봄까지 온통 유채꽃이 되려 합니다. 유채꽃이 질 무렵에는 벚꽃이 흐드러져요. 뭐랄까, 온 나라를 한 가지 꽃으로 뒤덮으려 한달까요. 유채가 아니면 봄에는 피어나서는 안 되고, 유채가 질 무렵 벚꽃이 아니면 피어나서는 안 되는 듯한 흐름입니다. 마치 군대처럼, 꼭 기계로 찍는 공산품처럼, 다 다른 시골마을이 다 똑같은 모양새가 되어야 하는 듯한 물결이에요.


  유채꽃 말고 자운영꽃은 안 될까요. 자운영꽃 말고 제비꽃은 안 될까요. 제비꽃 말고 민들레꽃은 안 될까요. 민들레꽃 말고 코딱지나물꽃은 안 될까요. 코딱지나물꽃 말고 냉이꽃은 안 될까요. 냉이꽃 말고 씀바귀꽃은 안 될까요. 씀바귀꽃 말고 돌나물꽃은 안 될까요. 돌나물꽃 말고 도라지꽃은 안 될까요.
  왜 모든 지자차에서 오직 유채꽃 경관사업만 벌이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왜 모든 지자체에서 벚나무만 심으려 하는지 아리송합니다.


.. 내가 꽃을 좋아하는 것은 아마도 서울에 살면서도 뜰 있는 집을 고집하시던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 봄이 되면 우리 나라 전역의 산과 들에 흔히 피는 제비꽃은 식물체의 크기가 10센티미터가 되지 않을 만큼 작고 소박한 들꽃입니다 ..  (8, 21쪽)


  언제부터인가 도시에서는 길거리마다 팬지와 패튜니아를 심었습니다. 이 꽃들이 질 무렵 한동안 내버려 두었다가, 보기에 안 좋도록 시들었다 하면 어느새 꽃과 꽃그릇을 모두 걷어치웁니다. 그러고는 다시 돈을 들여 새 꽃을 사다가 갖다 놓습니다. 오랜 나날 이 땅에서 나고 자란 들꽃을 도시 한쪽에 심거나 돌보는 일이 없어요. 거님길 갈라진 틈을 타고 피어나는 민들레꽃이나 애기똥풀꽃을 예쁘게 바라보는 눈길이 없어요. 꽃다지잎이나 넝쿨잎을 곱게 쓰다듬는 손길이 없어요.


  십이월로 접어든 고흥 시골집에서 우리 식구는 아직 부추잎을 즐겁게 먹습니다. 부추풀 스스로 꽃을 하얗게 피우고 까맣게 맺는 씨앗을 둘레에 후두둑 떨구면, 이 씨앗이 이듬해부터 찬찬히 뿌리를 내려요. 해마다 부추씨는 넓게 퍼지고, 해마다 부추잎은 더 흐드러져요. 겨울 어귀에도 부추잎은 새로 뻗어, 날마다 뜯고 또 뜯어도 넉넉합니다. 고작 한 평쯤 되는 땅에서조차 네 식구 먹을 만한 잎을 얻습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도시에서도 집집마다 다문 한 평씩 ‘손바닥밭’을 누릴 수 있으면, 식구들 밥상에 푸른 내음 감돌도록 할 만합니다. 두 평도 석 평도 아니에요. 고작 한 평으로도 넉넉해요. 상추만 심어야 하지 않아요. 시금치 씨앗만 뿌려야 하지 않아요. 배추 한 포기에 무 두 뿌리여도 즐거워요. 곁에 부추도 자라고 고들빼기나 씀바귀도 자라면 돼요. 까마중도 한 포기 자란다면 잎이랑 열매를 누려요. 오늘은 이 풀을 먹고 모레는 저 풀을 먹어요. 끼니마다, 날마다 새로운 풀을 하나씩 둘씩 뜯어서 먹어요.


.. 귀화식물이 뿌리내리고 자라는 곳을 보면 대부분 환경이 파괴되어 황폐화된 곳이 많습니다. 저는 울창한 숲 속에서 귀화식물의 대표 격인 망초나 개망초를 본 적이 없습니다 … 낯선 곳을 지나다가 이따금 만나게 되는 수령 200∼300년 정도의 정자나무를 보고도 저는 감탄을 금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1000년이 넘은 나무는 과연 어떻게 생겼으며, 또 얼마나 거대할까 ..  (18, 50쪽)


  풀을 뜯어서 먹는 동안 풀노래를 부릅니다. 풀을 뜯으러 밭자락이나 들이나 마당에 나오면 풀노래를 듣습니다. 봄에는 봄볕을 누리는 봄풀노래예요. 가을에는 가을볕 누리는 가을풀노래예요. 겨울에는? 겨울에도 싱그러이 돋는 풀이 있으면 반가우며 기쁜 겨울풀노래를 들어요.


  나무 한 그루 자라는 둘레에 이런 풀 저런 풀 잘 돋아요. 나무는 나무대로 누리면서, 나무 둘레에서 자라는 풀을 얻고, 이 풀에서 피우는 꽃을 즐겨요. 나무는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에 걸쳐 사뭇 다른 빛을 베풀어요. 새눈이 터지고, 잎사귀가 벌어지며, 꽃봉오리가 열려요. 씨앗을 맺고 열매가 떨어지며 가랑잎이 져요. 겨울눈 옹크리고 새 가지가 나요.


  풀은 우리가 심어도 나지만, 우리가 안 심어도 바람과 새가 씨앗을 날려 줍니다. 나무는 우리가 심어도 나지만, 우리가 안 심어도 바람 따라 날아오고 새 먹이 되어 먼 데까지 날아갑니다.


  아이들은 어른이 무언가 가르쳐야 배운다지만, 어른이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어른 둘레에서 어른들 삶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배우기도 하고, 아이들 스스로 이것저것 해 보면서 차근차근 배우기도 합니다. 흙을 만지작거리면서, 나뭇가지를 쥐어 놀면서, 두 다리로 씩씩하게 이 땅을 박차고 구르면서 튼튼하게 자라요. 몸을 다스리고 마음을 가꾸면서, 아이들은 싱그러운 햇살웃음 터뜨립니다.


  놀면서 배우고, 놀면서 가르쳐요. 놀면서 동무를 사랑하고, 놀면서 이웃을 아껴요. 노는 사이 풀빛을 누리고, 노는 결에 나무노래 들어요. 노는 동안 천천히 하늘숨 마시고, 노는 자리에서 시나브로 햇볕을 품에 안아요.


.. 애기똥풀 속의 노란 즙액에 충독을 풀어 주는 성분이 들어 있다고 하지요. 만약 산이나 들에서 있다가 모기에 물렸다면 주변에서 애기똥풀을 찾아 그 즙액을 물린 곳에 발라 보세요. 가려움은 금방 없어지고 조금 뒤에는 물린 자국도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봄의 느티나무는 연둣빛으로 삐죽삐죽 돋아나는 새싹이 눈부시도록 아름답습니다 ..  (83, 88쪽)


  유상준 님이 글을 쓰고 박소영 님이 그림을 그린 《풀꽃편지》(그물코,2013)를 읽습니다. 두 분은 시골에서 살림을 일구면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간다고 해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지내다가 시골자락에 조그맣게 서재도서관을 꾸리기도 해요.


  시골숨 마시며 늘 마주하는 풀과 나무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모두어 《풀꽃편지》가 태어납니다. 풀이 사람한테 띄우고, 꽃이 사람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냅니다. 풀한테서 받은 이야기를 다시 풀한테 돌려주고, 꽃한테서 얻은 사랑을 새롭게 꽃한테 보내는 노래를 조곤조곤 밝힙니다.


  그런데, “민들레잎을 꺾으면 하얀 즙액이 나오고 맛을 보면 매우 쓴데, 이것은 같은 무리에 속하는 씀바귀, 고들빼기와 닮았습니다(118쪽).” 하는 대목에서는 고개를 살짝 갸우뚱합니다. 민들레잎은 우리 네 식구 고흥 시골집에서 즐겨먹는 풀 가운데 하나예요. 흰민들레도 노란민들레도, 잎이며 줄기며 뿌리며 모두 맛나게 먹어요. 날로도 먹고 갈아서 풀물로도 먹어요. 갈아서 먹을 적에는 꽃송이까지 모두 먹어요. 언제 어떻게 먹어도 민들레잎이 쓴 줄 느낀 적 없어요. 봄민들레도 가을민들레도 늘 산뜻산뜻 푸른 맛이라고 느껴요.


  곰곰이 생각하면, 쓰지 않은 풀이라 하더라도 사람 손을 덜 타면 쓴맛이 아주 짙을는지 몰라요. 그런데, 같은 풀을 놓고 누군가는 안 쓰고 누군가는 쓸 수 있어요. 어느 풀이 누군가한테 쓰다면, 그이는 ‘쓰게 느끼는 까닭’이 있어요. 어느 풀을 안 쓰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 풀이 안 쓰다고 느끼는 까닭이 있지요.


  우리 네 식구(여섯 살 세 살 아이까지)는 씀바귀잎도 고들빼기잎도 아주 잘 먹습니다. 부추잎이건 마늘쫑이건 날풀로 잘 먹습니다. 갓잎은 좀 많이 쓰다고 느껴 많이 안 먹지만, 갓잎은 데치거나 볶으면 쓴맛이 거의 안 나요.


  “예전 저희 집 담장 주변에 심은 아주 널찍하고 시원스런 잎을 가진 후박나무도 사실은 일본에서 들어온 ‘일본 목련’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습니다(173쪽).”와 같은 대목에서도 고개를 갸웃합니다. 후박나무는 아무 데에서나 자라는 나무가 아니에요. 소금기 묻은 바람이 부는 따뜻한 마을에서 자라는 후박나무예요. 웃쪽에서는 거의 자라지 못해요. 바다를 낀 따스한 마을에서 후박나무가 잘 자라요. 뭍으로 깊이 들어가고 추운 데에서는 후박나무가 제대로 못 자라요. 글을 쓴 유상준 님이 ‘후박나무’인 줄 여긴 나무가 후박나무가 아닌 다른 나무였다는 뜻으로 쓴 글인가 싶기도 한데, 후박나무는 잎이 널찍하지 않습니다. 동백잎이 후박잎보다 더 널찍해요. 후박잎은 좀 갸름하다고 할 만합니다. 유상준 님이 생각하는 ‘일본목련’은 한국에서 자라는 ‘후박나무’하고 잎이며 꽃이며 열매며 모두 다릅니다. 후박나무는 녹나무과에 드는 나무요, 일본목련은 목련과에 드는 나무예요.


.. 자신이 사랑하는 나무를 관리하고 보살피느라 집 주인도 무척 공을 들였겠지만, 그 나무도 따뜻한 자신의 고향을 떠나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혹한에 견디며 적응하느라 얼마나 애를 썼을까요 … 옛날 어른들에게 이 꽃에 대해 여쭈어 보면 대개 금낭화라는 이름은 잘 모르시고 그 대신에 며눌치 또는 며느리취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  (149, 170쪽)


  시골에서 살아가며 나무를 사랑하고 풀을 아끼는 이웃들 차츰 늘어날 수 있기를 빌어요. 도시에서 살더라도 나무를 좋아하고 풀을 그리는 동무들 하나둘 늘어날 수 있기를 빌어요. 우리가 마시는 숨(바람)이란 나무와 풀이 나누어 주는 푸른 숨인 줄 함께 느껴요. 우리가 먹는 밥이란 나무와 풀이 흙을 살찌우기에 얻는 밥인 줄 함께 느껴요. 우리가 들이켜는 물이란 나무와 풀이 정갈하게 걸러서 흐르는 물인 줄 함께 느껴요.


  풀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아요. 나무하고 노래를 불러요. 풀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나무가 부르는 노래에 마음을 열어요. 그리고, 우리 이야기를 풀한테 들려주고, 우리 노래를 나무한테 불러요. 4346.1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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