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고 누런 나무들 (도서관일기 2013.11.26.)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서재도서관과 살림집을 시골로 옮기면서 무엇보다도 나무와 숲을 눈여겨보려 했다. 자동차와 경운기 소리 아닌 멧새와 풀벌레 노래하는 소리를 아이들과 함께 듣고, 우리가 깃드는 시골마을 이웃들도 숲과 나무가 들려주는 푸른노래 함께 들을 수 있기를 바랐다.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은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소리를 이야기하고, 숲과 들에서 일하며 숲노래와 들노래 누리는 사람은 숲과 들을 이야기한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거나 도시로 와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숲과 들하고는 등진 삶이니 숲과 들을 말하지 못하거나 않는다지만,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숲과 들을 노래하거나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랐다.


  오늘 이 나라 시골마을 이웃들은 숲노래나 들노래를 얼마나 즐길 만할까. 텔레비전이 아닌 새와 풀벌레 노래를, 자동차나 경운기 아닌 나무와 풀 노래를, 보드라우면서 푸르고 싱그러운 노래를 얼마나 아끼거나 사랑한다 할 만할까.


  우리 도서관으로 삼는 옛 흥양초등학교는 1998년부터 문을 닫았다. 이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학교 나무는 나무결 그대로 자란다. 이 나무를 가지치기 하는 사람도 가지치기 할 만한 사람도 없다. 나무는 나무마음 그대로 즐겁고 씩씩하게 하늘로 뻗는다. 우람하게 크는 후박나무며 소나무며 단풍나무며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사람 손길을 타지 않을 때에 얼마나 고운 빛이 흐르는가를 새삼스레 느낀다.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가. 시골을 떠나거나 시골을 잊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가.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사람들은 나무를 어느 만큼 알거나 사귀거나 어루만질까. 나무가 없으면 숨을 쉴 수 없고, 나무가 없으면 책을 쓰거나 읽을 수 없으며, 나무가 없으면 집을 짓기는커녕 그야말로 무엇 하나 할 수 없다. 나무가 자라지 않는 땅은 사막이 된다. 나무가 없는 곳에서는 냇물이 흐를 수 없고, 싱그러운 숨결이 자랄 수 없다.


  나무가 없는 메마른 땅에 나무를 심겠다고 소매 걷어붙이는 씩씩한 일꾼들 있다. 그런데, 아프리카이든 중동이든 어디에 가서 나무심기를 하는 한편, 이 나라 이 땅 도시 한복판에 나무를 심어야 하리라 느낀다. 이 나라 시골마을 들길에서 모조리 사라진 나무를 다시 살리도록 한 그루 두 그루 찬찬히 심어야 한다고 느낀다. 집집마다 잘 자라던 마당나무와 뜰나무를 다시 살려서 돌보고 아껴야 한다고 느낀다. 예부터 어느 마을 어느 집이건 마당에 나무를 심었는데, 왜 오늘날 어느 시골 어느 집이건 마당에서 나무를 찾아보기 어려울까. 왜 마당에서 나무를 베어서 없앨까. 왜 마당을 온통 시멘트로 덮기만 할까. 왜 고샅길 나무를 싹둑 베어 전봇대만 척척 박아야 할까.


  시골집 마당에서 나무가 사라지고 시골마을 고샅에서 나무가 없어지면서, 들과 숲 한복판에 우람한 송전탑이 선다. 들 한복판에 송전탑을 박는 전력회사 일꾼이나 관공서 일꾼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참 알쏭달쏭한데, 모두들 이렇게 제 넋을 잃거나 잊으니, 도시에서는 더더욱 나무가 사라지고, 아예 생각조차 못하리라 느낀다. 도시에서도 집집마다 ‘집나무’를 심어서 사랑할 수 있어야지. 어른과 아이 모두 ‘집나무’를 사랑하고 아끼면서 푸른 숨결 받아먹을 수 있어야지. 가을에 붉고 누렇게 빛나는 나무를 두 팔로 안으면서 가을빛 흐뭇하게 나눌 수 있어야지.


  책이란 나무이다. 책은 나무에서 태어난다. 책을 건사하는 도서관이란 나무를 아끼고 사랑하는 쉼터이다. 도서관에는 책을 알뜰히 갖추어야 제몫을 한다지만, 종이책만 갖추어서는 도서관이 되지 못한다고 느낀다. 책을 갖추어 꽂는 시렁과 방을 차곡차곡 두면서, 책을 둔 건물 둘레는 온통 나무가 우거진 숲이 될 때에 비로소 참다운 도서관이 되리라 느낀다. 책이 되어 준 나무를 느끼도록 하고, 책으로 다시 태어난 나무를 사랑하도록 하며, 책내음으로 몽실몽실 고이 흐르는 나뭇결과 나무노래를 살가이 누릴 수 있는 도서관. 가을이 저물며 겨울로 넘어가는 시골빛이 아름답다.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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