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과 진주와 대구에서 놀란 이야기
나는 여행을 다니지 않는다. 어느 곳에 가든 헌책방이 있는 마을로 찾아간다. 헌책방이 없는 마을을 간다면, 시골에서 살아가는 예쁜 이웃을 찾아가는 길이거나, 살붙이나 동무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요 몇 달 사이에 부산과 진주와 대구에 있는 헌책방에 찾아갈 일이 있었다. 세 군데는 경상도라는 곳에 있으며, 아마 정치 흐름이 비슷하리라 본다. 그런데, 세 군데에서 찾아간 헌책방마다, 책방에 텔레비전을 둔 곳에서는 모두 ‘TV조선’을 틀고 하루 내내 이곳에서 흐르는 이야기를 듣는다.
책방에 가면 으레 여러 시간 있는 터라, 여러 시간 ‘TV조선’을 함께 들어야 하니 귀가 몹시 아팠고 골이 매우 지릿거렸다. 그러면, 부산과 진주와 대구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책방지기’는 왜 ‘TV조선’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들여다보는가. 왜 이분들은 책방에 그득 쌓인 책을 읽지 않고 ‘TV조선’을 눈이 빠져라 들여다보는가. 무엇보다 ‘TV조선’에서는 어떠한 이야기를 보여주는가.
책방에 텔레비전을 들이지 않고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헌책방지기를 보면, 이분들은 신문을 다 읽은 뒤 어김없이 책을 펼쳐서 읽는다. 책방에 텔레비전을 두는 분들은 책을 읽지 않으며, 언제나 한 갈래 생각으로 이녁 마음을 딱딱하게 굳히는구나 싶다.
1992년부터 선거철마다 ‘기호 1번’만 찍은 우리 아버지도 어느 날부터 ‘TV조선’만 보신다. 아이들 데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뵈러 찾아갈 적마다 텔레비전 소리 때문에 골이 무척 아프다. 그나마 아이들한테 만화영화 보여주시겠다며 ‘TV조선’에서 다른 곳으로 돌려주시지만, 아버지는 ‘TV조선’이 그리워서 다른 방으로 옮긴 뒤 ‘TV조선’을 켜서 혼자 들여다보신다.
어느 날 문득 궁금해서 고향이 부산인 고흥 이웃한테 이녁 아버님은 부산에서 어떤 방송을 보시느냐 물었는데, 그분 아버님도 ‘TV조선’만 들여다보신단다.
ㅈㅈㄷ을 보거나 말거나 대수롭지 않다. ㅈㅈㄷ만 본대서 나쁘지 않다. 다른 신문을 보더라도 그 신문만 본다면 그리 아름답지 않다. 온누리를 골고루 품을 줄 알 때에 아름답고, 지구별이 사랑스레 빛나려면 어떠한 넋이 되어 어떠한 일을 해야 사랑스럽게 빛나고 우리 삶이 즐거운가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남녘땅 나이 있는 분들 마음자리에는 ‘TV조선’이 아주 단단히 뿌리내렸다. 4346.11.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