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빛·별빛·책빛

 


  시골마을에 등불이 언제 들어왔을까요. 시골마을에 왜 등불을 들였을까요. 등불이 있어 어두운 밤에도 다니기 수월하다 말하지만, 저녁부터 어두움에 익숙하게 지내는 시골에서는 등불이 있대서 더 밝지 않습니다. 외려 등불 때문에 등불이 비추지 않는 자리가 더 어둡습니다. 등불이 없으면 밤눈으로 다 알아보았을 텐데, 등불 때문에 시골사람 밤눈이 자꾸 어두워집니다.


  등불 하나 없이 깜깜하던 내 어버이 시골집을 떠올립니다. 내 어버이 시골집 있는 마을 어른들은 등불 하나 없이 논길이건 들길이건 고샅길이건 척척 걷습니다. 도시에서 등불에 기대어 살다 보니 시골 밤길이 익숙하지 않던 어린 나는 자꾸 무언가에 걸려 넘어집니다. 자꾸 넘어지고 걸음이 처지는 나를 보던 외사촌 형이 문득 ‘땅만 보지 말고 하늘을 보며 걸으라’고 말합니다. 땅만 보면 더 잘 넘어진다고, 저 하늘이 얼마나 밝은지 보라고 말합니다.


  넘어져 흙이 묻은 바지를 털며 하늘을 봅니다. 별이 그득 쏟아집니다. 별이란 이렇게 많아서 별이로구나 하고 처음 깨닫습니다. 그렇다고 밤눈이 갑자기 밝아지지 않습니다. 어기적어기적 겨우 꽁무니를 좇습니다.


  불빛 하나 없는 길을 자전거로 달리면 차츰 길바닥이 하얗게 바뀝니다. 밤길에 눈이 익숙해지면서 등불 하나 없이 얼마든지 잘 달릴 수 있습니다. 밤길에 등불 없이 자전거를 달리면, 이 길에 선 개구리나 다른 작은 짐승을 곧 알아챕니다. 그러나, 등불에만 기대어 달리면, 이 길에 무엇이 있는지 더 못 알아보고 하늘에 별이 있는지 없는지 하나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모든 책에는 빛이 있습니다. 책에 있는 빛은 책빛이라 합니다. 다만, 모든 사람이 모든 책빛을 알아보거나 누리지 못합니다. 책빛은 마음을 활짝 여는 사람한테만 밝고 맑게 비춥니다. 마음을 열지 못하면 책을 지식으로는 읽되 빛으로는 맞아들이지 못합니다.


  별은 밤뿐 아니라 낮에도 밝게 빛납니다. 해는 낮뿐 아니라 밤에도 곱게 빛납니다. 낮을 지나 밤이 되었대서 해가 없지 않아요. 우리가 발을 디딘 지구별에서 저 뒤쪽으로 있을 뿐입니다. 해가 사라지지 않기에 지구별 저 뒤쪽에 있어도 우리들은 밤에 그럭저럭 시원하거나 조금 춥게 지낼 수 있습니다. 해가 사라지거나 없어진다면, 우리들은 모두 꽁꽁 얼어죽습니다.


  책마다 서린 빛을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책은 누구한테나 빛을 흩뿌립니다. 맞아들일 만한 마음그릇이든, 맞아들이지 못하는 마음그릇이든, 책은 구태여 금을 긋거나 가르지 않습니다. 언제라도 이 빛을 맞아들이기를 바라며 기다립니다. 찬찬히 기다리면서 살며시 빛을 드리웁니다. 그래서 어느 책을 손에 쥐더라도, 책을 쥔 사람들은 책빛을 곱게 받아요.


  보름달이 이울며 별빛이 더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그믐달이 되면 이제 별빛은 아주 눈부시겠지요. 도시에서는 등불이 사라져야, 또 아파트와 자동차가 모두 잠들어야, 비로소 별빛이 하나둘 드러나리라 생각합니다. 책빛을 읽자면, 책빛을 누리자면, 책빛을 받아먹자면, 우리들은 무엇을 끄고 무엇을 열어야 할까요. 4346.11.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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