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치는 노인처럼 문예중앙시선 3
김승강 지음 / 문예중앙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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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41

 


시와 술잔
― 기타 치는 노인처럼
 김승강 글
 문예중앙 펴냄, 2011.4.15.

 


  술을 마시는 사람은 많으나 술을 빚는 사람은 드뭅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술을 빚어서 마시려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은 누구나 밥을 날마다 먹지만, 스스로 흙을 일구어 나락을 거둔 뒤, 나락 껍질을 벗겨 쌀을 안쳐 밥을 지어서 먹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할매와 할배를 빼고 스스로 쌀을 얻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다 지은 밥을 놓고 밥맛을 이러쿵저러쿵 따지는 사람은 많은데, 막상 밥이 되기까지 겨를 벗긴 쌀이 어떠한 냄새와 맛인지를 살피는 사람은 드물어요. 흙맛을 가눌 줄 아는 사람이 드물고, 물맛을 깨닫는 사람이 드뭅니다. 맛집을 다니면서 밥상에 차린 밥과 반찬을 살피는 눈과 손이 있을 뿐, 밥상에 밥을 올리기까지 흘리는 땀을 돌아보는 눈과 손이 잘 안 보입니다.


.. 두부를 꼭 사야겠다고 나온 것도 아니었다. 두부를 사야겠다고 알려준 이는 두부장수였다. 처음부터 두부는 사도 그만 안 사도 그만이었다 ..  (두부를 위하여)


  가만히 돌아보면, 흙맛과 물맛과 바람맛을 모르면서 나락맛을 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흙과 물과 바람을 살찌우는 햇볕이 어떠한 기운이요 따스함인 줄 모른다면, 이 또한 나락맛을 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나락맛을 모르는데 겨를 벗긴 누런쌀과 흰쌀이 저마다 어떤 맛인지 알기 어려울 테며, 누런쌀과 흰쌀로 지은 밥이 어떤 맛인지 알기는 더 어렵습니다.


  밥맛을 모르고서 술맛을 안다 할 만할까요. 술이 되는 쌀이나 보리나 밀을 모르고서 술을 안다 할 만할까요. 덧붙여, 술로 담는 물이 어떤 맛인지 모르고서 ‘다 된 술’만 놓고 맛을 가린다면, 얼마나 술을 아는 셈이 될까요.


  마지막으로 흙을 일구고 물을 대며 씨앗을 갈무리하는 흙지기 손길과 손빛을 알지 못하는 채 밥맛과 술맛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곡식과 물을 다스려 술을 빚는 사람들 손길과 손빛을 모르는 채 술넋을 헤아리기는 어렵습니다.


  밥도 술도, 또 옷 한 벌도, 조그마한 보금자리를 돌보는 어버이 손길과 손빛도, 모두 골고루 헤아리고 살필 때에 제대로 안다 할 만합니다. 한 가지로 이루어지거나 나타나는 삶이 아닙니다. 모든 숨결과 넋이 어우러지면서 이루어지거나 나타나는 삶입니다.


.. 나는 더 이상 못 참겠다고 말하고 말았다 아내는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결심한 듯 아내가 말했다: 충분히 이해한다 좋다 이렇게 하자 한 달에 한 번은 눈감아주겠다 다만 나도 함께 간다 같이 들어가겠다는 말이 아니다 일을 끝내고 나올 때까지 차 안에서 기다리겠다 우리는 신포동으로 갔다 기찻길 옆 동네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고가철로로 춘천행 밤기차가 지나갔다 나는 유리 상자 속 붉은 조명 아래 앉아 있는 여자들 중 한 여자를 골랐다 여자는 나를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  (밤으로의 긴 여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어 책을 엮습니다. 책에 실을 줄거리를 다스리는 출판사 일꾼이 있어야 하고, 종이와 잉크를 다루는 일꾼이 있어야 하며, 풀과 실을 다루는 일꾼이 있어야 합니다. 다 찍고 묶은 책을 실어서 책방에 나를 일꾼이 있어야 하며, 책꽂이에 꽂아 책손을 마주하는 책방 일꾼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나무를 베고 날라서 다룬 뒤 종이를 만드는 일꾼이 있어야겠지요. 잉크를 만드는 일꾼이 있어야 하고요. 사람들이 책을 장만해서 읽은 뒤에는, 이 책이 흘러나올 때에 받아들일 헌책방이 있어야 하며, 책이 오래도록 이어가도록 도서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고 보면, 글을 쓰는 이들한테는 연필이나 붓이나 펜이 있어야 해요. 연필이나 붓이나 펜을 만드는 일꾼이 있어야 글이 태어날 수 있습니다. 글을 쓰겠다며 스스로 연필을 만드는 사람이란 없어요. 그림을 그리겠다며 스스로 물감을 만드는 사람이 없어요. 꼭 무엇이든 스스로 만들어야 하느냐고 물을 만한데, 스스로 만들 줄 모를 때하고 스스로 만들 줄 알 때하고는 사뭇 달라요. 아이를 착하게 사랑할 줄 아는 사람하고 아이를 착하게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뭇 다릅니다. 교대를 나오고 교사자격증을 따야 교사가 되지 않습니다. 아이를 착하게 사랑할 줄 알면서, 아이하고 어깨동무를 하고, 아이하고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삶 누릴 줄 알 때에 비로소 교사입니다. 교과서 지식을 잘 집어넣는대서 교사가 아니에요.


.. 가족들이 다시 모여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우리는 감사했다: 언제나 우리는 하나씩 가족과 영원한 이별을 할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란 세상에 있는 동안 세상이 나누어주는 음식을 함께 맛있게 나누어 먹는 사이 ..  (가족)


  글을 쓰려면 삶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을 쓸 때에 글입니다. 삶을 쓰지 않으면 글이 아닙니다. 삶 가운데에는 참삶이 있을 테고, 거짓삶이 있을 테지요. 참삶이든 거짓삶이든 스스로 꾸밈없이 쓸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속으로 그린 삶을 쓰든, 생각으로 지은 삶을 쓰든, 삶을 써야 비로소 글이 돼요. 지구별에 태어난 어느 글을 돌아보더라도 글쓴이 삶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글쓴이 삶을 드러내지 않고는 글이 되지 않아요.


  어떤 물건을 어떻게 다루라고 알려주는 글을 쓸 적에는 삶이 안 깃들지 않느냐 물을 수 있겠지요. 그러면, 아이한테 이런 글을 써 보라 해 보셔요. 아이한테 동무더러 어느 물건 다룰 수 있도록 알리는 글을 써 보라 해 보셔요. 어른들처럼 딱딱하고 차가우며 삶이 도무지 안 드러나는 재미없는 글을 쓸까요.


  삶을 쓰는 글이기에 즐겁게 읽습니다. 삶을 쓰는 글이라서 기쁘게 나눕니다. 삶을 쓰는 글이기에 책 하나로 아름답게 엮습니다. 삶을 쓰는 글이라서 웃고 울면서 이야기를 빚습니다. 그런데 나날이 삶을 잊거나 잃은 채 쓰는 글이 넘칩니다. 삶을 등지거나 모르쇠하며 쓰는 글이 북적거립니다. 오늘날에는 ‘삶글’이나 ‘삶말’이라는 말을 따로 써야 할 판입니다. ‘삶책’이나 ‘삶노래’를 따로 써야 합니다.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까지, 시골사람은 시골마을에서 시골일 하면서 즐겁게 노래를 불렀어요. 학자는 ‘노동요’나 ‘민요’라 가리키지만, 시골사람한테는 그냥 ‘노래’입니다. 덧붙이자면 ‘일노래’이면서 ‘놀이노래’이고 ‘삶노래’입니다. 요즈음은 어떤가요. 요즈음에는 삶노래가 있다 할 만할까요. 지난날 시골지기는 시골살이를 노래하면서 시골빛을 가꾸었어요. 오늘날 사람들은 어떤 노래를 부르면서 어떤 빛을 가꾸는가요.


.. 나는 마지막 한 모의 두부만 남기고 빈 스티로폼 박스를 싣고 그들의 마을을 떠나 집을 향해 달렸다 ..  (달려라 두부)


  김승강 님 시집 《기타 치는 노인처럼》(문예중앙,2011)을 읽습니다. 김승강 님은 어떤 삶을 어떤 말로 노래하는가요. 김승강 님이 누리는 즐거운 삶이란 무엇일까요. 삶이 즐겁지 않아 즐겁지 못한 글을 쓰나요. 삶이 즐거워 줄거움 묻어나는 글을 쓰나요. 삶이 아름답다고 여겨 삶빛 흐드러지는 글을 쓰나요. 삶이 따분하거나 벅차거나 아파서 삶빛 모두 지운 채 글을 쓰나요.


.. 낯익은 새 한 마리 날아와 /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 앉다. / 훌쩍 다른 나무로 날아갔다 ..  (새와 나무)


  우리 삶에 노래가 흐른다면 바로 내가 노래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 노래가 안 흐른다면 바로 내가 노래를 안 부르기 때문입니다. 참 많은 시인들이 이녁 시에 ‘술 마시는’ 이야기를 씁니다. 그렇지만, 술을 술맛답게 누리거나 느끼면서 술빛을 밝히는 이야기는 드문 듯합니다. 으레 술잔을 기울이지만, 술 한 방울이 우리 앞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 손길과 손빛을 탔는지, 술 한 방울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햇볕과 바람과 빗물과 흙과 풀내음을 먹었을는지, 곰곰이 생각하거나 그리는 사람이 드뭅니다.


  술잔에 붓기에 술이 아닙니다. 숨결이 깃들기에 술입니다. 술병에 담으면 술이 되지 않습니다. 넋을 빚기에 술입니다. 목구멍에 콸콸 들이붓는다고 술을 마신다 할 수 없어요. 마음으로 느끼고 가슴으로 아로새길 적에 비로소 술을 마시는구나 하고 말할 만합니다.


.. 자동차 시동을 막 건 아내 친구 부부가 / 차창을 내리고 밖으로 얼굴을 내밀면서 / 차 안이 모과 향으로 가득하다며 환하게 웃는 게 아니겠습니까 ..  (모과)


  모든 글은 삶을 그린다고 느낍니다. 그러면 삶이란 무엇일까요. 삶이란 사랑일 테지요. 곧, 삶을 그리는 글이란 사랑을 그리는 글이라고 느낍니다. 사랑이란 또 무엇일까요. 사랑이란 꿈일 테지요. 그러니까, 사랑을 그리는 글이요 꿈을 그리는 글이라고 느낍니다. 꿈은 또 무엇일까요. 꿈은 빛일 테지요. 하루를 밝히고 마음을 살찌우는 빛이 바로 꿈일 테지요. 곧, 빛을 그리는 글이요, 빛으로 다시 태어나는 시이고 소설이고 수필이고 비평이 되리라 느낍니다.


  문학도 비평도 모두 삶이면서 사랑이고, 꿈이면서 빛이지 싶습니다. 삶이 아닐 때에는 글이 아니고, 빛이 아니라면 글이 아니라고 느껴요. 마음을 밝히는 글빛이에요. 마음을 가꾸는 사랑빛이에요. 마음을 살찌워 삶을 아름답게 북돋우는 꿈빛입니다. 4346.11.2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집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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