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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생일 선물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95
엘사 베스코브 글 그림, 김상열 옮김 / 비룡소 / 2003년 3월
평점 :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14
어머니와 아이가 주고받는 선물
― 엄마의 생일 선물
엘사 베스코브 글·그림
김상열 옮김
비룡소 펴냄, 2003.3.21.
아이가 무언가 합니다. 조물조물 만지작거립니다. 꼼지락꼼지락 움직입니다. 무엇을 할까요. 무슨 생각을 하면서 무얼 만질까요. 부엌에서 후추를 물에 타고는 “아, 맛없어.” 합니다. 얘야, 마시는 물에 왜 후추를 타니. 마당에서 호미를 쥐고는 흙을 콕콕 쫍니다. 이러다가 어느새 호미로 널판을 콕콕 내리칩니다. 망치로 못을 두들기듯 호미치기를 합니다. 이 모습을 아버지가 물끄러미 쳐다보는 줄 느끼더니 빙그레 웃고는 다시 호미로 흙을 콕콕 쫍니다.
괜찮다, 괜찮아. 호미로 널판을 찍어도 되고, 후추를 물에 타도 돼. 물을 마시다가 쏟아도 되고, 장난감 어질러도 되지. 흐트러진 장난감은 치우면 되고, 어질러진 부엌도 치우면 돼. 네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놀이를 멈추지 말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나게 놀아라.
아이들한테 아침을 차려서 먹인 뒤 등허리가 결리는구나 싶어 살짝 드러눕습니다. 이동안 작은아이는 물병을 기울여 물잔에 물을 따른다고 하더니 촬촬 넘치도록 붓습니다. 누워서도 물 넘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이고, 얘야, 마실 만큼 따르고, 다 마신 뒤에 또 따라야지.
.. “하하하! 파란 사과라고? 이건 블루베리 열매란다. 여기는 우리 집이고.” 할아버지는 큰 소리로 웃더니 소리쳤어요. “얘들아, 모두 이리 나와라!” 눈 깜짝할 사이에 블루베리 소년들 일곱 명이 나타나 꼬마에게 인사했어요 .. (13쪽)
작은아이는 누나가 하는 무언가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하나하나 따라합니다. 작은아이는 누나가 하는 말을 곰곰이 들으면서 한 마디 두 마디 따라합니다. 작은아이는 누나 몸짓과 눈짓과 손짓을 골고루 살피면서 하나둘 이어받습니다.
그러고 보면, 큰아이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는 무언가를 찬찬히 지켜보면서 하나하나 따라하고 배웠습니다. 큰아이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들려주는 말을 낱낱이 들으면서 세 마디 네 마디 따라하고는 제 말을 살찌웠습니다. 어머니 삶이 아이 삶이 되고, 아버지 말이 아이 말이 됩니다. 어머니가 즐겁게 누리는 하루가 아이로서 즐겁게 누리는 놀이가 됩니다. 아버지가 기쁘게 하는 일이 아이가 기쁘게 맞이할 일이 되어요.
날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리쬐는 햇볕은 온누리에 드리우는 선물입니다. 언제나 한결같이 흐르는 바람은 온누리를 감도는 선물입니다. 졸졸 흐르는 냇물과 촉촉 내리는 빗물은 온누리를 적시는 선물입니다.
어버이가 짓는 웃음은 아이들한테 삶을 살찌우는 선물이 되겠지요. 아이가 부르는 노래는 어버이한테 삶을 빛내는 선물이 될 테고요. 서로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함께 선물을 나눕니다. 같이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 오두막 앞에는 곱게 차려입은 산앵두나무 아주머니가 다섯 달들과 함께 앉아 있었어요. 아주머니와 딸들은 꿀에 넣고 끓일 산앵두나무 열매를 하루 종일 땄대요 .. (21쪽)
엘사 베스코브 님이 빚은 그림책 《엄마의 생일 선물》(비룡소,2003)을 읽습니다. 어린 피터는 어머니한테 선물을 주고 싶습니다. 숲에서 블루베리하고 산앵두를 따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블루베리랑 산앵두가 어디에서 나는지 잘 모릅니다. 숲속에 앉아 한참 망설이는데 숲을 지키는 작은 님이 아이한테 찾아와요. 아이 몸을 작게 바꾸어 블루베리밭으로 데려갑니다. 그러고는 산앵두나무밭으로 데려가지요. 아이는 작은 님들하고 신나게 논 뒤 블루베리 선물과 산앵두 선물을 받아요. 바구니 그득그득 열매를 따서 어머니한테 돌아갑니다. 어머니는 작은 아이 피터가 어디에서 이 열매들 찾아서 따왔을는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더 묻지는 않아요. 아마 어머니도 아이처럼 어렸을 적에 이녁 어머니한테 블루베리랑 산앵두를 선물하려고 숲속을 떠돌았을 테고, 숲속에서 작은 님들 만나 함께 놀았을 테니까요.
.. 엄마는 피터의 선물을 받고 매우 기뻐하셨어요. “와, 이렇게 맛있는 열매들은 어디서 땄니?” 엄마가 물었지만 피터는 배시시 웃고 말았지요 .. (33쪽)
어머니 사랑을 물려받은 아이가 무럭무럭 자랍니다. 아버지 꿈을 이어받은 아이가 씩씩하게 자랍니다. 아이는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됩니다. 아이는 어버이 되어 지난날 이녁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받은 사랑을 이녁 아이한테 하나둘 물려줍니다. 사랑스레 삶을 짓고, 사랑스레 살림을 꾸리며, 사랑스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날마다 아름다운 빛이 흐릅니다. 언제나 고운 노래가 넘실거립니다.
선물은 늘 마음속에 있습니다. 삶이 선물이고, 웃음이 선물입니다. 함께 지내는 하루가 선물이고, 손을 맞잡고 걷는 들길에서 맡는 들내음이 선물입니다.
겨울 문턱에서 들풀이 시듭니다. 며칠 따순 볕 내리쬐니 봄풀이 늦가을에 살몃살몃 고개를 내밀었는데, 찬바람 여러 날 이어지니 그만 바알갛게 시듭니다. 풀벌레 노래 없고 개구리 노래 없는 가을들은 고즈넉합니다. 해가 떨어지고 달이 오르면서 더욱 고요합니다. 바람이 나뭇잎 간질이는 소리만 들립니다. 별빛이 차츰 밝습니다 마을에 있는 집집마다 불이 하나씩 들어오다가 이내 꺼집니다. 어른도 아이도 새근새근 자며 새 하루 기다립니다. 4346.11.2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