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글씨 간판
새책방도 처음에는 간판을 손글씨로 넣었으리라 본다. 지난날에는 간판글씨를 뚝딱뚝딱 만드는 일 없이 나무판에 붓으로 척척 그렸으리라 본다. 간판집에서 글판을 처음 만들고 난 뒤, 새책방은 으레 글판을 붙여 책방이름 알리는 간판을 올렸으리라 느낀다. 이와 달리 헌책방은 간판조차 없이 가게를 꾸리는 일이 잦았고, 이럭저럭 살림돈 모여 간판을 올릴 수 있은 뒤에는, 덧붙일 이야기 있으면 손글씨로 이래저래 적어 넣었을 테지.
‘간판 없는 새책방’이 있을까. ‘간판 없는 헌책방’은 참 많았다. 책방이름을 따로 안 짓는 헌책방들인데, 이곳 헌책방지기는 “그냥 헌책방이라면 되지, 굳이 이름을 붙이느냐?” 하고 얘기했다. “간판 없어도 책 볼 사람은 다 찾아온다.”고 했고, “간판에 돈 쓰기 아깝다.”고 했다. 간판 올릴 돈이 있으면 헌책을 더 장만해서 책손이 바라는 책을 더 갖추어야 할 노릇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새책방이라면 간판이 잘 보여야 할까. 곰곰이 돌아본다. 아니, 장사를 하는 가게라면 어디나 간판이 잘 보이도록 큼지막하게 걸거나 불을 번쩍번쩍 비추기까지 한다. 가게 꾸리는 돈 못지않게 간판 알리는 돈을 많이 쓴다. 기름집을 보면, 기름집에서 다달이 쓰는 전기삯이 무척 세다고 한다. 그래도 벌이가 되니 기름집 간판불 밝히는 데에 돈을 엄청나게 쏟아부을 테지.
어릴 적부터 여러 책방과 도서관 다니는 동안, 새책방과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잘 갖추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새책방은 ‘새책방인 탓’에 바닥에 책을 쌓지 않는다. 새책방 가운데 책꽂이를 늘리고 늘려 천장까지 빼곡하게, 골마루가 비좁도록, 이렇게 책을 갖추려는 데는 못 보았다. 새책방에서는 오래도록 안 팔리는 책 있으면, 좀 철이 지났다 싶은 책 있으면, 출판사에 가볍게 반품한다. 도서관에서도 책이 많이 쌓이면, 책이 좀 낡거나 대출실적 없으면, 이런 책을 가볍게 버린다.
헌책방에서도 책이 지나치게 쌓이면 짐차를 불러 버리기는 하지만, 헌책방에서는 책을 더 꽂으려고 책꽂이를 자꾸 늘린다. 책꽂이를 늘리고도 모자라 책탑을 쌓는다. 책탑으로도 모자라 책방 앞 길가에도 새로운 책탑을 쌓는다. 언젠가 어느 헌책방지기가 문득 한 마디 했다. “이렇게 책방 앞에 쌓은 책탑이 헌책방 간판이지요. 헌책방에 간판이 달리 뭐 있나요.” 그러고 보면, 동네헌책방 자주 드나드는 단골 가운데 어떤 분은 이녁이 단골로 거의 날마다 드나드는 그 헌책방 이름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분은 “내가 여기 책 보러 오지, 간판 보러 오나? 책방이름 몰라도 거기에 책방 있는 줄 아니까 오지.” 하고 얘기했다. 4346.11.2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