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의 노래
백성민 지음 / 세미콜론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87


 

그림옷을 입은 삶노래
― 광대의 노래
 백성민 글·그림
 세미콜론 펴냄, 2007.10.19.

 


  나비가 춤을 추고 새가 춤을 춥니다. 사마귀가 춤을 추고 베짱이가 춤을 춥니다. 목숨 있는 모두 춤을 춥니다.


  아이가 춤을 추고 어른이 춤을 춥니다. 갓난쟁이는 응애 울면서 춤을 추고, 늙은 할매와 할배는 구부정한 몸으로 천천히 춤을 춥니다. 숨을 쉬며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나 춤을 춥니다.


  바람이 부르는 노래를 듣습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에 부는 바람이 사뭇 다릅니다. 봄바람에 실려 들려오는 노래에는 보드라운 손길이 있고, 여름바람에 묻어 들려오는 노래에는 싱그러운 눈길이 있습니다. 가을바람에 깃들어 들려오는 노래에는 밝은 꿈길이 있고, 겨울바람에 담겨 들려오는 노래에는 새하얀 마음길이 있습니다.


  나무는 바람을 먹습니다. 한 숨 두 숨 찬찬히 먹습니다. 나무는 햇볕을 먹습니다. 한 줄기 두 줄기 가만히 먹습니다. 나무는 빗물을 먹습니다. 한 방울 두 방울 맛나게 먹습니다. 나무는 흙을 먹습니다. 한 줌 두 줌 살그마니 먹습니다.


  바람을 먹으며 바람노래를 부르고 바람춤을 춥니다. 햇볕을 먹으며 해노래를 부르고 해춤을 추어요. 빗물을 먹으며 비노래와 비춤을 즐깁니다. 흙을 먹는 동안 흙노래와 흙춤을 베풉니다.


  사람은 무엇을 먹으면서 어떤 춤을 추나요. 사람은 어디에서 살아가며 어떤 노래를 부르나요. 사람들 목소리에 살풋 실려 흐르는 노래에는 어떤 빛이 있는가요. 사람들 몸짓에 살랑 담겨 감도는 춤에는 어떤 꿈이 있는가요.


- 내 그림이 붓으로 그었다고 해서 일반적인 동양화는 아닌 것 같구요. 극화나 민화도 아닌 것 같습니다. 모두가 그리는 ‘마당그림’이랄까. (머리말)

 

 

 

 


  백성민 님 만화책, 또는 그림책이라 할, 《광대의 노래》(세미콜론,2007)를 읽습니다. 만화를 그리다가 틈틈이 붓을 쉬면서 홀가분하게 춤을 추듯 그린 그림조각을 하나둘 그러모아 ‘마당그림’이 되고, 이 마당그림이 책이 되었다고 합니다. 백성민 님은 네이버 누리사랑방에 곧잘 그림을 띄웁니다. 웹툰연재는 아니고, 블로그질도 아닙니다. 즐겁게 그린 그림을 즐겁게 띄웁니다. 신나게 누린 그림을 신나게 올립니다. 다만, 자주 올리지는 않고, 많이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꼭 알맞게, 밥그릇에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을 예쁘게 담듯이, 맛깔나게 그린 그림을 흐뭇하게 보여줍니다.


  극화라 할 만화를 혼자서 그리는 백성민 님은 자잘한 데까지 그리다 보니 눈이나 손이나 몸이 무척 고단했으리라 생각해요. 그런데, 극화 아닌 여느 만화를 그리는 이들도 지난날에는 혼자서 모든 그림을 다 그렸어요. 글을 쓰는 사람도 밑글을 쓰고 나서 원고지에 정갈하게 옮겨적고,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실로 꿰매며, 봉투에 담아 우체국에 부치는 일을 으레 혼자서 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도 필름을 장만하고 사진기를 손질하는 일부터, 사진 찍을 곳으로 오가는 일, 찍은 사진을 찾고 종이로 뽑는 일을 혼자서 하기 마련입니다. 이제 컴퓨터와 인터넷이 발돋움하면서, 그림도 글도 사진도 손품과 다리품이 많이 줄었어요. 예전처럼 홀로 고단하게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는 일이 퍽 줄었습니다.


  백성민 님은 오늘날에도 즐겁게 붓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해요. 종이에 물감이나 먹을 묻혀 그림을 그린다고 해요. 나도 연필을 쥐고 종이에 글을 쓰기를 즐깁니다. 다만, 종이에 연필로 글을 쓰더라도, 이 글을 보내자면 다시 타자로 옮겨 누리편지로 띄워야 하지요. 그림쟁이는 스캐너로 그림을 긁으면 되지만, 글쟁이는 스캐너를 못 씁니다. 어찌 되든, 그림도 글도 사진도 손맛입니다. 컴퓨터를 켜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더라도 손맛이 깃듭니다. 왜냐하면 손을 움직여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니까요.


  디지털파일이 되더라도 손길이 깃듭니다. 디지털파일로 그림과 글을 빚기 앞서 온몸으로 삶을 겪어야 합니다. 스스로 누린 삶이 있을 때에, 이 삶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엮어 그림이나 글로 빚습니다. 스스로 누린 삶이 없으면, 이야기로 엮을 삶이 없다는 뜻입니다. 책이나 자료를 뒤져서 그림을 그리지 못해요. 책이나 자료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이도 있지만, 이런 글에서는 싱그럽게 빛나는 사랑이 감돌지 못해요. 삶은 삶으로 만나고 사랑은 사랑으로 마주할 뿐입니다. 빗방울은 빗방울로 마주해야 빗방울인 줄 알아요. 흙은 흙으로 만지고 밟아야 흙인 줄 알아요. 바람은 바람으로 맞아들여야 바람인 줄 알지요. 햇볕은 햇볕으로 쬐어야 비로소 햇볕인 줄 압니다.


  백성민 님이 들려주는 홀가분한 그림마당, 또는 마당그림인 《광대의 노래》는 살가운 빛입니다. 살가운 빛이 사랑스러운 빛이 되는 그림이요, 사랑스러운 빛이 새삼스레 살아가는 빛으로 다시 태어나는 그림입니다. 삶을 누린 이야기가 그림으로 거듭납니다. 삶이 촉촉히 흐르는 이야기가 그림옷을 입고 책이 됩니다. 4346.11.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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