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책읽기

 


  우리 시골집에서 나와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옵니다. 읍내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순천으로 나갑니다. 순천에서 다시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진주로 갑니다. 진주 시내를 걸어 책방 두 군데 나들이를 합니다. 진주에서 시외버스를 더 갈아탄 뒤 대구로 갑니다. 대구 골목동네 한쪽을 걷습니다.

  한 시간 반 남짓 대구 골목길을 걷다가 발바닥과 무릎이 아프다고 느낍니다. 그래, 이 딱딱한 아스팔트길은 걸으면 걸을수록 발과 무릎이 아픕니다. 숲길이나 들길이나 멧길은 여러 시간 걷는대서 발이나 무릎이 아프지 않아요. 흙과 풀은 사람들 발과 무릎이랑 살갑습니다. 흙을 만지거나 밟으며 일하는 사람은 몸이 아프지 않습니다.


  옛사람도 짚을 삼아 신을 꿰었지만, 여느 때에는 으레 맨발로 일했습니다. 아이들도 가끔 신을 꿰지만, 여느 때에는 늘 맨발로 뛰어놉니다. 맨발로 달리고 뛰고 구르고 납니다. 맨발로 나무를 타고 냇물을 건너며 헤엄을 칩니다.


  그런데, 옛사람 가운데 권력자와 부자는 맨발로 다니지 않았어요. 부자는 시골 흙지기를 시켜 신을 삼도록 했습니다. 부자와 권력자는 언제나 신을 꿸 뿐 아니라, 발을 싸개로 덮습니다. 게다가 부자와 권력자는 흙과 풀을 밟지 않아요. 돌이나 나무로 깐 바닥만 걷습니다.


  부자와 권력자는 문화와 문명을 세웁니다. 의사를 만들고 병원을 올립니다. 부자와 권력자 곁에서 일거리 얻으려는 사람들이 나타나며 도시가 이루어집니다. 도시가 이루어지며, 도시사람도 신을 하나둘 뀁니다. 도시사람 또한 부자와 권력자와 마찬가지로 흙과 풀을 안 밟을 뿐 아니라, 흙과 풀을 안 만져요. 그러니, 도시에서는 누구나 신을 꿰고 숲이나 들하고는 멀어집니다.


  예나 이제나 시골에서 흙 밟고 만지며 일하는 사람은 으레 맨발입니다. 무논이나 흙밭에서는 신을 꿰면 더 성가십니다. 무논에는 목긴신조차 번거롭습니다. 흙밭에서 목긴신 꿰더라도 흙이 다 들어옵니다. 맨발로 일하고 나서 찬찬히 씻으면 한결 낫고 시원합니다.


  사람 둘에 모든 짐승이 맨발과 맨손으로 살아갑니다. 다람쥐도 토끼도 고양이도 범도 모두 맨손이요 맨발입니다. 곰도 이리도 여우도 너구리도 모두 맨손이자 맨발입니다.


  흙을 밟고 만지는 사람은 아프지 않습니다. 풀을 다루고 사랑하는 사람은 고단하지 않습니다. 흙이 모든 목숨을 살리고, 풀이 온 숨결을 살찌웁니다. 흙과 풀하고 멀어질수록 몸이 아프고, 흙이랑 풀을 잊을수록 고된 일에 짓눌립니다.


  하늘 찌르는 권력을 품에 안더라도 흙이나 풀하고 등진 삶이라면 재미없어요. 수십 억원이나 수백 억원을 거머쥐었다 한들 흙이나 풀이 없이는 밥을 굶고 물이나 바람을 시원하게 마시지 못해요.


  도시로 바깥마실을 다니다가 지친 몸으로 시골로 돌아옵니다. 군내버스가 우리 마을 어귀에 닿아 내리면, 상큼한 바람과 흙내음이 나를 반깁니다. 천천히 천천히 걸어 집으로 갑니다. 별빛을 마시고 구름빛을 들이켭니다. 내가 나답게 살아가는 곳이 어디인가 헤아립니다. 내 발바닥과 손바닥이 좋아하는 삶터가 어디인가 돌아봅니다. 4346.11.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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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1-19 11:23   좋아요 0 | URL
예, 저도 1시간 넘어 걷다 보면 발도 아프고 무릎도 아파요..
그럴때면 이 길이 아스팔트가 아니고, 흙길이라면 참 좋겠다는 마음이 들지요.
지난 번에 아스팔트길에서 넘어져 얼굴을 깠을때..만약 흙위에서 넘어졌다면 그정도로
다치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저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흙을 밟고 사는 날이 있으리라 즐거운 기다림을 합니다~*^^*

숲노래 2013-11-19 11:50   좋아요 0 | URL
아이고, 넘어지셨군요.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ㅠ.ㅜ

흙길이나 숲길에서는
그닥 넘어질 일이 없는데
도시에서는 길바닥이 고르지 않으면
쉬 넘어져요.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푸른바람을 누구나 누릴 수 있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