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 - 고운 빛을 곱게
언젠가 ‘가난한 골목동네 골목사람 모습’을 누군가 흑백필름으로 찍은 사진을 본 적 있다. 이 사진에 나오는 가난한 골목동네는 흙바닥이었다.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길바닥을 깔기 앞서이다. 서울 마포쯤 가난한 골목동네 사진이었다고 떠오르는데, 이 사진들 가운데 아이들 뛰노는 작은 집에서 마당에 기저귀와 옷가지 빨랫줄에 넌 사진이 있었다. 때는 봄이라, 흙으로 된 길바닥 곳곳에는 풀이 돋았다. 나는 이 사진을 보고는 ‘흑백필름만 있던 옛날’이 아니라 ‘칼라필름이 그리 비싸지 않던 무렵’이니, 이와 같은 모습은 무지개빛이 또렷하게 드러나도록 찍을 때에 한결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진이 되겠다고 느꼈다. 아니, 이렇게 예쁘게 살아가는 예쁜 사람들 예쁜 빛을 왜 흑백으로만 찍으려 하는지 궁금했다.
다큐사진은 흑백이어야 하는가? 가난한 사람들 골목동네는 흑백으로 찍어야 맛이 살아나는가?
사진길 걷는 사람들은 스스로 틀을 깨야 한다고 느낀다. 다른 누군가 세운 틀이 있으면 그 틀까지 깨고 새로운 빛과 새로운 아름다움과 새로운 사랑을 찾아 씩씩하게 사진 한길 걸을 노릇이라고 느낀다.
바깥에서 구경꾼 눈길로 바라본다면 ‘가난한 골목동네’이다. 그렇지만, 이 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 이른바 ‘주민’이나 ‘동네사람’ 눈길로 바라본다면, 아이들 예쁘고 어버이도 예쁜 살가운 보금자리이다. 봄바람에 기저귀 나부끼고 봄나물 돋는 골목동네 사랑스러운 빛을 느껴야지. 이 빛을 흑백으로 뭉개지 말아야지.
흑백사진이 ‘빛을 뭉개는 사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흑백사진을 아무 자리에서나 찍으면 빛을 뭉갠다. 칼라사진을 아무 자리에서나 찍으면 빛이 어지럽다. 흑백도 칼라도 알맞다 싶은 자리에 알맞게 써야 한다. 이때에는 흑백이 낫고 저때에는 칼라가 낫다고 할 수 없다.
흑백필름으로 찍은 사진으로도 얼마든지 싱그러운 봄빛을 담을 수 있다. 빛과 삶과 꿈과 사랑을 한데 어우르면서 ‘사진에 담는 사람들이 바로 내 이웃이면서 나 스스로’라고 깨달으면, 어떤 필름, 또는 어떤 디지털파일로 찍든, 사진에 고운 빛을 곱게 담을 수 있다. 4346.11.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