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아라키의 애정 사진 아라키 노부요시, 사진을 말하다 2
아라키 노부요시 지음, 백창흠 옮김 / 포토넷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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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67

 


사진 찍는 마음은 오직 사랑
― 천재 아라키의 애정사진
 아라키 노부요시 글·사진
 이윤경 옮김
 포토넷 펴냄, 2013.10.25.

 


  나는 사진을 찍는 사람입니다. 나처럼 사진을 찍는 사람을 가리켜 ‘사진작가’라고도 하는데, 굳이 이런 이름이 붙지 않더라도 나는 ‘사진을 찍는’ 사람입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을 가리켜 한자말 이름으로 ‘농부’나 ‘농사꾼’이라 합니다. 그런데 시골에서 땅을 일구는 사람들, 그러니까 흙을 만지는 사람은 늘 땅과 흙을 지키고 돌봐요. 흙을 아끼고 사랑합니다. 이들 시골 농부와 농사꾼이란, 바로 ‘흙지기’입니다.


  새책방이나 헌책방을 가꾸는 사람들은 책을 다루는 일을 합니다.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일을 해요. 이들 책방 일꾼은 ‘책방지기’ 또는 ‘책지기’예요. 그러면, 사진을 찍거나 읽으며 즐기는 사람한테는 ‘사진지기’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집에서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는 사람도 사진지기입니다. 학교에서 사진을 배우는 사람도, 학교에서 사진을 가르치는 사람도 사진지기입니다. 사진기를 써서 예술품을 만들려 하는 사람도 사진지기 되고, 사진책 빚으려 땀흘리는 책마을 일꾼도 사진지기 됩니다. 노래를 사랑하며 즐겨 부를 때에는 노래지기 되고, 사진을 사랑하며 즐겨 나눌 적에는 사진지기 됩니다.


.. 요즘 사진들을 보면 정말 소중한 무언가가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잘난 척하는 것 같지만, 감정과 정감은 쏙 빼놓고 표면이랄까, 표상만 단조롭게 찍는다는 느낌이에요. 그러니 재미가 없을 수밖에요. 땀범벅, 눈물범벅이 되도록 열정을 다해 찍는 게 사진이지요. 얼마나 좋아요. 카메라는 그런 모습을 더 강조하려고 사용하는 도구 혹은 기계라고 보면 돼요 … 뭔가가 있다 싶은 사진이라면 슬픔이 느껴질걸요. 그게 정말 멋진 사진이라면 말이에요. 요즘 젊은 사람들 사진을 보면 그런 쓸쓸함이 느껴지지 않아요. 남 이야기라고 함부로 말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 달라요. 물론 사진이 달라졌다는 이야기예요. 시대는 변하기 마련이니까요. 엄청난 속도로 변해서 우주 공간을 둥둥 떠다니면서 디지털카메라로 찍는 시대가 온다 해도 상관없어요. 시대가 어떻든 사진에는 슬픔이 묻어나야 해요. 안타까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건 사진이 아니에요 ..  (6, 21쪽)

 

 

 

 


  사진을 찍는 마음은 오직 하나입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마음은 오직 하나입니다. 밥을 짓고 빨래를 하는 마음은 오직 하나입니다. 책을 읽는 마음과 글을 쓰는 마음은 오직 하나입니다.


  시골에 보금자리 마련해서 흙을 일구는 사람들 마음은 오직 하나입니다. 바다에서 고기를 낚고, 숲에서 나무를 보살피는 사람들 마음은 오직 하나입니다. 자전거를 달리는 사람 마음이랑, 두 다리로 온누리 골골샅샅 걸어서 다니는 사람 마음은 오직 하나입니다.


  누구라도 마음에는 오직 사랑 한 가지 있습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사랑씨앗 한 톨 심고 두 톨 심으면서 날마다 새로운 삶 짓습니다.


  사랑이 없이 사진을 찍으면 어찌 될까요. 사랑이 없이 아이를 낳거나 돌보면 어떻게 될까요. 사랑이 없이 밥을 짓는다면, 사랑이 없이 빨래를 한다면, 사랑이 없이 책을 읽으면, 사랑이 없이 글을 쓰면, 이러할 때에 우리 삶은 어떤 모습이 될까요.


  사랑 담아 찍는 사진과 사랑 없이 찍는 사진을 생각해 봐요. 사랑 담아 돌보는 아이와 사랑 없이 키우는 아이를 생각해 봐요. 사랑 담아 쓰는 글과 사랑 없이 쓰는 글은 누구나 곧바로 알아채리라 느껴요. 사랑 담아 건네는 말과 사랑 없이 뱉는 말은 누구라도 이내 알아차리겠지요.


.. 이런 풍경은 이미 내 머릿속에 잠들어 있었는지도 몰라요 … 사진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이런 특별한 날에는 역시 기념사진이 필수예요. 무조건 찍어 두는 편이 좋아요. 재미도 있고 추억거리도 되잖아요. 두고두고 찍길 잘했다고 생각할걸요 … 애정이 담기지 않은 사진은 진짜가 아니에요.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 사진 속엔 참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구석구석 스토리가 가득 펼쳐져 있어요 … 사진 속에 이야기가 펼쳐져 있다는 건 그만큼 보는 사람이 사진의 의미를 상상하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 사진은 찍는 순간에 성패가 결정돼요.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고민할 틈이 없어요. 반사적으로 셔터를 누르니까요 ..  (19, 23, 31, 35, 36, 93쪽)

 

 

 

 

 


  사랑하는 마음이기에 새롭게 하루를 맞이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날마다 아침을 열고 저녁을 닫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펼치기에 활짝 웃고 기쁘게 노래합니다.


  사진기 다루는 솜씨가 좋다고 해서 아름다운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기계 다루는 솜씨가 빼어난 사람은 그럴듯해 보이는 사진을 찍을 뿐, 마음속으로 스며들며 환한 빛 곱게 피어나게 이끄는 사진을 못 찍습니다. 기계 다루는 솜씨가 서툴더라도 마음 가득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사진기를 쥐면, 언제나 환하고 밝은 웃음꽃 피어나도록 이야기샘 흐르는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요리 솜씨 빼어나기에 밥이 맛있지 않아요. 온갖 재료 잔뜩 갖추어 요리를 하니 밥이 맛나지 않아요. 사랑이 어린 손길로 짓는 밥이 맛있어요. 즐겁게 웃고 노래하며 짓는 사랑스러운 밥이 맛나요.


  목청만 좋대서 노래가 듣기 좋지 않습니다. 사랑을 담아 부르는 노래일 적에 가락이 좀 어긋나더라도 듣기에 좋아요. 손놀림이 뛰어나기에 그림이 보기 좋지 않아요. 손놀림은 아직 어리숙하더라도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그린 그림일 때에 눈가 촉촉히 젖으며 벅찬 아름다움을 누려요.


  사진을 따로 배운 적 없대서 사진찍기를 두려워 할 까닭이 없습니다. 대학교 사진학과를 못 다녔대서, 나라밖으로 사진을 배우러 다닌 적 없대서, 사진찍기를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사진은 사랑으로 찍으니, 내 마음속에 어떤 사랑이 감도는가를 살피면 돼요. 사진은 사랑으로 찍어 사랑으로 읽는 만큼, 사진이론을 모르더라도 어떤 사진이나 다 잘 읽을 수 있어요. 이름난 작가 이름을 몰라도 사진은 잘 읽을 수 있어요.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이름’이 아닌 ‘속으로 우러나오는 사랑’을 찍고 읽으며 나누는 사람입니다.


.. 사진을 찍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상대방과 동격이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대상이 누구건 상대방과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이거예요. 사진을 찍는 사람의 마음이랄까 품성, 인생 따위가 고스란히 사진에 녹아들기 마련이니까요 … 찍히는 사람은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잖아요. 찍는 사람도 대상이 어느 때보다 행복해 하는 모습, 아름다워 보이는 순간을 포착하고 싶어 해요. 그래서 그런 모습을 찾고 또 찾아요. 신기한 건 결국 그런 장면을 찾게 된다는 사실이에요 … 본인도 모르는 숨은 매력을 내가 끌어내는 것, 이게 바로 내가 하는 일이에요 … 흔히들 사진에는 인생이 담겨 있다고 하잖아요.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인생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어요. 소소한 일상을 담은 게 바로 사진이니까요 ..  (26, 27, 71, 73쪽)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찍은 사진을 이녁 스스로 바라보면서 사진벗이랑 조곤조곤 나눈 이야기를 살풋살풋 들려주는 사진책 《천재 아라키의 애정사진》(포토넷,2013)을 읽습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어느덧 일흔 살을 넘어선다고 합니다. 그렇구나, 이분 나이가 벌써 일흔이 넘는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이분 사진을 읽을 적에 나이를 느낀 적이 없다고 깨닫습니다.


  그래요, 사랑하는 마음은 스무 살이거나 마흔 살이거나 예순 살이거나 여든 살이거나 똑같습니다. 여든 해 살아온 사람은 이만큼 사랑을 나눈 빛이 있고, 스무 해 살아온 사람은 이동안 사랑을 꽃피운 빛이 있습니다. 높은 사랑 없고 낮은 사랑 없어요. 언제나 즐겁게 누리는 사랑이 있습니다. 늘 기쁘게 주고받는 사랑이 있습니다.


.. 평범한 일상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 좋은 거예요. 이런 ‘순간’이 가장 좋아요. 그런 ‘순간’이 전부 여기에 담겨 있으니까요 … 행복한 ‘순간’, 좋은 시간을 찍는 게 최고예요. 사람은 무엇보다 행복해야 하니까요. 누구나 경험하는 시간이지만 사실 다들 그런 ‘순간’을 찍지는 않아요. 그래서 사진작가가 대신 촬영하는 거예요. 그게 사진작가가 할 일이니까. 사진작가는 다른 사람 대신 사진을 찍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정말 행복한 ‘순간’이 왔다 해도 보통은 찍을 카메라가 없거나 순간을 포차하는 기술이 부족하거든요 … 찰칵 하는 순간 내 마음까지 찍힌 거지요. 아주 짧은 순간이에요 ..  (64, 65, 82쪽)

 

 

 

 


  즐겁게 찍은 사진을 전시장에 붙여 사진잔치 할 수 있습니다. 기쁘게 찍은 사진을 한 장씩만 종이로 뽑아 사진첩 만들고는 집안에 둘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사진책을 만듭니다. 누군가는 셈틀에 고이 두고는 가끔 들여다봅니다. 누리집을 만들어 여러 사람 들여다보도록 할 수 있습니다. 문화재단에서 돈을 받아 이모저모 이름을 알리고 작가로 일할 수 있습니다.


  어느 길을 가든 모두 사진입니다. 사진역사에 이름을 남겨야 사진이 아닙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스스로 즐겁게 누릴 때에 사진입니다. 사진문화를 북돋운다는 일에 앞장서야 사진이 아니에요. 바로 오늘 이곳에서 스스로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하면서 사진 살가이 찍으면 사진입니다.


  혼인잔치나 돌잔치에 사진작가 불러 사진 찍어 달라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까요. 동무더러 사진 찍어 달라 할 수 있습니다. 주례를 서는 분이 사진기 들고 사진 찍을 수 있고, 신랑신부 어버이가 사진기 들어 사진 찍을 수 있어요.


  사진찍기는 남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남 눈치를 보며 사랑하는 일이 없으니, 사진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즐겁게 찍습니다. 신랑이나 신부가 혼례잔치에서 씩씩하게 걸어가면서 한손에 사진기 쥘 수 있어요.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스스로 사진을 좋아하는 삶 그대로 사진을 즐기는데요. 어떤 상을 받는 자리에 서더라도 어깨에 사진기 걸치고 올라갈 수 있어요. 자전거로 마실 다니며 사진기를 목걸이처럼 걸 수 있어요. 아이들과 밥을 먹으며 무릎에 사진기 놓고는 아이들 밥 먹는 모습 찰칵찰칵 담을 수 있어요.


  사랑하는 마음으로 찍는 사진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며 찍는 사진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난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보살피면서 즐겁게 웃는 사이 살짝살짝 한 장 두 장 찍는 사진입니다.


.. 가까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명작이 탄생하나 봐요.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요. ‘네 실력 한번 볼까. 날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겠군’ 하며 지켜보고 계신 것 같잖아요 … 사람이 죽으면 하나같이 얼굴이 온화해지더군요. 그러니 그 순간만큼은 꼭 찍어 둬야 해요.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그 사람이 평생을 가꿔 온 얼굴이거든요. 주위 사람들에게 사람을 듬뿍 받으며 만들어진 작품이 보기 흉할 리가 없지요 … 사진이란 절묘한 테크닉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지요. 빛과 그림자가 관능적으로 어우러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은 디지털카메라가 이미 알려줬잖아요. 결국 사진의 성패를 판가름하는 건 진실한 사랑밖에 없어요. 진심 어린 사랑으로 대하는 사람과 허울뿐인 사랑으로 꾸며내는 사람은 분명 달라요 ..  (79, 94∼95쪽)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앞으로 여든 살을 맞이할 적에도 손에 사진기를 쥐겠지요. 어쩌면 수술대에 오를 적에도 한손에는 사진기를 쥘는지 모르고, 또는 사진벗한테 수술받는 아라키 님 모습을 찍어 달라 할는지 모릅니다. 목숨이 다해 흙으로 돌아가는 날 한손에 사진기 꼭 쥘는지 모릅니다. 목숨이 다해 흙으로 돌아가는 날 사진벗이 마지막 모습 곱다라니 찍어서 사진책에 담아 달라 할는지 모릅니다.


  모든 삶이 사진으로 태어납니다. 모든 삶이 사랑스럽게 사진으로 새로 태어납니다. 모든 삶이 사진으로 사랑스럽고도 새롭게 태어나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진을 찍고 읽는 마음이 오직 사랑인 까닭은, 사진은 삶을 찍고 사진으로 삶을 읽기 때문입니다. 삶을 찍기에 사랑을 찍고, 삶을 읽기에 사랑을 읽습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굳이 사진으로 찍을 일이 없고,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릴 일이 없습니다. 사랑이기에 사진으로도 글로도 그림으로도 옮기는데, 사진이나 글이나 그림으로 옮기는 사랑이란, 우리들이 즐겁게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춤추며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가 있기에 살아가고, 이야기가 있어 사진이 태어납니다.


.. 내가 머무르는 곳, 생활하는 곳에서 찍는 게 진정한 사진이구나 싶어요. 이사를 가게 된다면 새로운 곳을 터전 삼아 찍으면 그만이고요 … 사진의 품격을 결정하는 건 그 여성이 지닌 품격과 기품이 아닌가 싶어요. 아름다움이란 곧 품격을 의미하니까요. 사진 촬영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품격 없는 여성을 찍으면 아무리 애써도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요 … 사진작가에게 필요한 자질 중 하나는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장면을 순간적으로 프레이밍해서 셔터를 누르는 능력이에요. 그게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렇게 하면 딱 적당한 상황에 대상이 화면에 쏙 들어와 주거든요 ..  (132, 149, 169쪽)

 

 

 

 


  나는 1998년에 처음 사진을 배웠습니다. 처음 사진을 배우던 때, 사진학과 교수는 우리더러 ‘너희 사진 주제를 스스로 하나씩 잡으라’고 했습니다. 나는 사진을 석 달 배우고서 혼자 사진기 어깨에 걸고 돌아다니며, 내 사진감(사진 주제)을 무엇으로 잡아야 할까 하고 석 달 생각했습니다. 이것도 찍고 저것도 찍어 보았어요. 사람들이 많이 찍는 사진감을 헤아리고 사람들이 안 찍는 사진감을 돌아보았어요.


  이동안 날마다 헌책방 두어 군데씩 들러 예닐곱 시간씩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진을 석 달 배우고서 석 달 동안 헌책방마실을 예닐곱 시간씩 하며 ‘내 사진감은 무엇일까?’ 하고 골머리를 앓은 셈입니다.


  석 달이 지난 어느 날 문득 깨달았어요. 내 사진감이란 바로 내가 살아가는 곳입니다. 내가 사진으로 찍을 이야기란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사진으로 즐겁게 찍을 모습이란 내가 환하게 웃고 노래하는 모습입니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사진감으로 삼거나 말거나 아랑곳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곳에는 나도 살고 내 이웃도 살아요. 그러니 내가 살아가는 골목동네를 나도 이웃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어요. 1998년이 아닌 2013년 오늘을 떠올리면 나는 아이들과 시골에서 살아요. 내가 낳아 돌보는 아이를 내가 사진으로 찍으면 되듯이, 누구나 이녁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으면 됩니다. 시골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많을 수 있어요. 시골에 살아가는 사람들 숫자만큼 ‘시골’을 사진감으로 삼을 만합니다. 자전거를 사진감으로 삼을 수도 있어요. 스스로 자전거를 즐긴다면 얼마든지 자전거를 즐겁게 찍을 만해요.


  내 사진감은 내가 사랑하는 삶이면 됩니다. 내 사진감은 내가 사랑하는 삶에서 흐뭇하게 피어나는 이야기이면 됩니다.


.. 나한테 100미터만 걸으라고 해 봐요. 아마 사진집 한 권은 거뜬히 나올걸요. 동네가 어디건 상관없어요. 내가 걷기만 하면 명연기자들이 등장해 주니까요 … 자동차는 안에 누가 탔는지 보이지 않잖아요. 자전거와 오토바이는 사람이 보여서 좋아요. 거리가 살아숨쉬고 있구나, 움직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니까요 … 결국 내가 찍은 건 분위기인 셈이지요 … 사람들이 사진을 보고 알아줬으면 해요. 느껴 달라는 말이지요. 얼마나 쓸쓸한지, 지로의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 보는 사람이 결정하면 되는 거예요 ..  (192, 202, 229쪽)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100미터만 걸어도 사진책 한 권 거뜬히 나온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한 마디 덧붙여 말할 수 있습니다. 100미터 아닌 1미터만 걸어도 사진책 한 권 거뜬히 나와요. 1미터 걷기 아닌 제자리에 가만히 있어도 사진책 한 권 얼마든지 나와요. 눈을 감고 찍어도 사진책 한 권 예쁘게 나와요. 왜냐하면, 사랑스러운 눈길로 온누리를 바라보고 내 삶자리를 마주하면, 언제나 얼마든지 ‘사진으로 찍을 어여쁜 이야기’가 나한테 찾아옵니다.


  사랑스러운 눈길이 없다면 100미터 아닌 100만미터를 걷더라도 사진책 한 권 못 엮습니다. 사랑스러운 눈길과 마음길이 아니라면 백 해 아닌 천 해 동안 사진을 찍어도 사진책으로 엮을 만한 사진이 안 나옵니다.


  작품을 찍어 보았자 사진이 아닌 작품입니다. 사진을 찍어야 사진입니다. 사랑을 찍을 때에 사진이요, 사랑을 못 찍는다면 작품이라는 이름조차 부끄럽습니다. 사랑을 찍어 사진이 되면, 이 사진은 모두 작품이 될 수 있고 문화와 예술이 될 수 있습니다.


  삶은 사랑에서 비롯합니다. 사진은 사랑에서 태어납니다. 삶은 사랑이 있어 아름답습니다. 사진은 사랑을 찍어 아름답습니다. 4346.1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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