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릴레이 - 전쟁 한가운데서 평화를 꿈꾸는 한 팔레스타인 가족 이야기
가마타 미노루 지음, 오근영 옮김 / 양철북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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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67

 


싸우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 생명의 릴레이
 가마타 미노루 글
 안도 도시히코 그림
 오근영 옮김
 양철북 펴냄, 2013.10.28.

 


  싸우는 사람은 이제껏 사랑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사랑을 배운 적이 없으니 그예 싸우고 맙니다. 싸움이 그쳐도 다시 싸움을 벌이고, 이 싸움을 마치면 다른 싸움을 자꾸 벌입니다. 마음속에 싸움이 자리하니 언제나 싸움이 불거집니다. 작은 일에도 싸우고, 큰 일에도 싸웁니다. 아니, 작거나 큰 일에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싸움이 되어요.


  말 한 마디를 할 적도 마치 싸우자고 달려드는 듯한 말씨가 됩니다. 길을 걸을 적에도 마치 싸워서 이기려고 하는 듯이 우격다짐입니다. 글을 쓸 적에도 툭탁툭탁 싸우려고 드는 모습이 되지요.


  싸우는 사람은 언제부터 싸웠을까요. 싸우는 사람은 언제부터 싸움을 겪어야 했을까요. 뜻하지 않게 싸우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스스로 바라며 싸우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사랑받은 적이 없기에 싸우는 사람이 되나요. 사랑을 늘 듬뿍 받지만 어딘가 못마땅하거나 아프거나 슬픈 생채기 있어 시나브로 싸움으로 기울어지고 마는가요.


  한 사람이 싸웁니다. 한 나라가 싸웁니다. 두 사람이 싸웁니다. 두 나라가 싸웁니다. 싸우는 사람한테는 무기가 있습니다. 총이나 칼이 무기가 되기도 하고, 돈이나 힘이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지식과 나이와 가방끈이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은 무기가 됩니다. 하찮아 보이는 것조차 무기가 되어 이웃이나 동무를 다치게 합니다. 이웃이나 동무를 다치게 할 적마다 스스로 마음이 다치고 몸이 무너지지만, 싸우는 사람은 누가 어떻게 왜 다치는가를 느끼지 않습니다. 쳇바퀴를 돌듯이 언제나 싸움 한복판에서 맴돕니다.


.. 아흐메드는 바다를 본 적이 없다. 에메랄드빛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지중해는 집에서 20킬로미터 남짓이지만, 소년에게 바다는 달나라만큼 멀게 느껴진다. 하티브 일가가 사는 곳은 요르단강 서쪽, 팔레스타인 자치구 제닌에 있는 난민 캠프다 … 2002년 4월 아흐메드가 아홉 살 때, 제닌 난민 캠프에 이스라엘군이 쳐들어왔다. 난민 캠프를 탱크로 에워싼 뒤 대포를 쏘아댔고, 장갑차로 건물을 짓뭉개 버렸다. 캠프 안에 사람이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  (8∼9, 20쪽)


  사랑을 나누는 사람은 사랑을 즐겁게 배웠습니다. 어버이한테서 배운 사랑이든, 이웃이나 동무한테서 배운 사랑이든, 즐겁게 배운 사랑을 즐겁게 나눕니다. 마음속에 늘 사랑이 감돌기에, 말 한 마디를 읊을 적에도 사랑스레 흐릅니다.


  작은 사랑을 나누고, 큰 사랑을 나눕니다. 사랑을 나누는 사람한테는 크거나 작은 사랑이 따로 없습니다. 모두 사랑일 뿐입니다. 이렇게 하기에 작은 사랑 되지 않고, 저렇게 하니 큰 사랑 되지 않아요. 사랑에는 처음부터 크기가 없어요. 사랑에는 높이도 길이도 무게도 없어요. 사랑은 값으로 따지지 않아요. 100원짜리 사랑과 100억짜리 사랑이 없어요. 사랑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아름다운 빛입니다.


  사랑을 나누는 사람은 언제나 사랑을 돌려받습니다. 사랑을 돌려받을 생각으로 사랑을 나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즐겁게 사랑을 나누고 보면, 언제나 이 사랑이 따사롭게 돌아와요. 그래서, 사랑을 받은 뒤 새삼스레 사랑을 다시 나누고, 사랑을 받으면서 새롭게 사랑을 다시 돌려줍니다.

  사랑을 낳는 사랑이요, 사랑으로 태어나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고운 씨앗 되어 이 땅에 드리우고, 씨앗으로 흙 품에 안긴 사랑은 차근차근 자라서 짙푸른 잎사귀와 줄기를 내놓은 뒤, 아름다이 빛나는 꽃송이로 자랍니다. 꽃피우는 사랑은 새로운 씨앗 맺지요. 새로운 씨앗은 거듭 이 땅에 드리우면서 다시금 찬찬히 자라요.


.. 유대인은 오랫동안 박해를 받아 왔다. 종교의 차이 때문이었을까? 유대인은 땅을 소유하는 것이 금지되어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고, 장인이나 상인이 되는 길도 제한되어 있었다 …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주해 온 이스라엘 사람에게도, 전부터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에게도, 이 땅은 고향이다 … 분리 장벽이 생기기 전까지 이곳은 민가가 들어차 있었고, 올리브밭이 펼쳐져 있었다. 분리 장벽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활과 긍지를 짓밟으면서 이어지고 있다 …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그 자녀들이다. 이런 일을 당하면 얼마나 괴로울지, 마음속 깊이 각인되어 있을 터. 뼈에 사무칠 정도로 알고 있을 터.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똑같은 일을 팔레스타인 마을에 하고 있는 것이다 ..  (11, 16, 66, 67쪽)


  싸우는 사람은 노래를 부르지 못합니다. 아니, 싸우는 사람 마음속에는 노래가 흐르지 않습니다. 싸움에 바쁜 나머지 노래가 깃들지 못합니다. 싸움만 생각하기에 다른 아무것도 마음속에 감돌지 않아요.


  사랑하는 사람은 노래를 부릅니다. 아니, 사랑하는 사람 마음속에는 언제나 노래가 흘러요. 스스로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노래가 솟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들려주려고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스스로 삶을 기뻐하는 노래입니다. 남 앞에서 보여주려고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스스로 삶을 즐기는 노래입니다.


  싸움이란 나한테도 남한테도 즐겁지 않습니다. 싸움이란 나부터 반갑지 않습니다. 싸움이란 내 이웃과 동무한테 웃음꽃을 베풀지 않습니다.


  사랑이란 나부터 즐겁습니다. 참말, 나부터 즐겁기에 내 둘레 사람들한테 즐거운 웃음꽃을 찬찬히 베풉니다. 베풀려고 하는 웃음꽃이 아니라, 저절로 흐르는 웃음물결입니다.


  햇살과 같은 사랑입니다. 날마다 뜨고 지는 해님과 같은 사랑입니다. 풀과 나무를 살찌우는 햇볕과 같은 사랑입니다. 온누리 골골샅샅 두루 퍼지는 햇발과 같은 사랑입니다.


.. 밖에서 친구들이 전쟁놀이를 하자고 부를 때도 싫다고 했다. 아무리 장난감이라도 총 따위는 만지고 싶지 않았다. 대신 기타를 안고 노래를 불렀다. 즐거운 노래, 마음이 편안해지는 노래를 불렀다 … 탕! 날카로운 소리가 조용한 공기를 갈랐다. 아흐메드가 무너지듯 쓰러졌다. 배에서는 시뻘건 피가 솟구쳐 올랐다. 몸부림을 치면서 일어서려고 했을 때, 탕! 두 번째 총알이 날아와 아흐메드의 관자놀이를 관통했다. 소년의 미래가 거기서 툭! 끊어졌다 ..  (24∼25, 29쪽)


  사랑하는 마음이 자라 아름다운 꿈이 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크면 고운 빛이 흩뿌려요. 사랑하는 마음이 자라지 못할 때에 스멀스멀 싸움이나 다툼이 태어나요. 사랑하는 마음이 움트지 못하면 고운 빛은 가뭇없이 사라져 쌀쌀하고 메마른 어둠이 넘쳐요.


  가마타 미노루 님 글과 안도 도시히코 님 그림이 어우러진 이야기책 《생명의 릴레이》(양철북,2013)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모든 목숨은 하나로 이어집니다. 아픈 역사가 다른 아픈 역사로 이어지고, 싱그러운 역사가 다른 싱그러운 역사로 이어집니다. 고단한 역사가 다른 고단한 역사로 이어지고, 밝은 역사가 다른 밝은 역사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아픈 역사가 멈출 수 있습니다. 싱그러운 역사 또한 끊어질 수 있습니다. 고단한 역사가 멎을 수 있습니다. 밝은 역사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아픈 역사가 이어지더라도, 이러한 역사는 이제 끝내려 하는 사람들 마음이 있으면, 아픈 역사는 바로 이때부터 멈춥니다. 싱그러운 역사가 고이 흐르더라도, 싱그러운 역사를 기쁜 웃음으로 나누려 하지 못하는, 그러니까 사랑을 저버리려는 짓궂은 마음이 싹트면 싱그러운 역사가 끊어져요. 고단한 역사가 오래되더라도, 이러한 역사로는 우리 삶터에 아무런 빛이 못 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며 새 역사를 열어요. 밝은 역사가 춤추어도, 밝은 눈빛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면 그만 밝은 역사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웁니다.


..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에게 ‘국적은? 민족은? 종교는?’ 하고 물을 수 있을까요. 전 그저 사람이라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 이스마엘은 평화로운 일상을 원할 뿐이었다. 아이들이 안심하고 뛰어놀 세상을 만들고 싶을 뿐이었다 ..  (86∼87, 90쪽)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녁이 겪은 슬픔과 아픔을 다른 사람들한테 똑같이 돌려주면 즐거울까 궁금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녁이 겪은 슬픔과 아픔을 이제부터 모두 사라지도록 할 때에 즐겁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건, 이웃 나라와 겨레를 괴롭히거나 해코지할 적에 즐거운 웃음꽃이 피어날까요. 어느 나라와 겨레이건, 다른 나라와 겨레를 포근히 안으면서 따사로이 사랑할 적에 웃음꽃이 피어나지 않을까요.


  어리석은 사람은 일본에도 있고 한국에도 있어요. 일본에 있던 어리석은 사람들이 정치권력 거머쥐어 이웃나라를 식민지로 내리눌렀어요. 한국에 있던 어리석은 사람들은 일본 제국주의 정치권력자한테 빌붙으며 헤헤거렸어요. 일본에 있는 슬기로운 사람들은 제국주의 정치권력자를 꾸짖으면서 이웃나라 사람들하고 어깨동무하려 했어요. 한국에 있는 슬기로운 사람들은 제국주의 정치권력 서슬에도 푸른 마음 건사하면서 아름다운 길 걸었어요.


.. 팔레스타인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올 때까지 이스마엘의 ‘무기에 기대지 않는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  (119쪽)


  무기에 기대어 싸우면 언제까지나 무기에 기대기 마련입니다. 새로운 무기를 자꾸 만들어 더 힘이 세지기를 꾀하고 맙니다. 무기에 기대지 않으면, 또 싸우지 않으면, 언제나 무기하고는 멀리 떨어진 채 웃습니다. 새로운 무기를 만들 까닭이 없고, 힘이 더 세질 일이 없습니다.


  무기에 기대어 싸우니, 언제나 싸움입니다. 늘 전쟁입니다. 무기에 기대지 않으니, 언제나 평화입니다. 늘 평화요 사랑입니다.


  전쟁이 그치게 하는 길은 오직 하나예요. 전쟁무기 내려놓거나 버리는 길이 바로 전쟁을 그치게 하는 길입니다. 평화를 지키는 길은 오직 하나예요. 평화를 아끼고 섬기면서 사랑을 나누는 길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권력자와 어리숙한 사람들이 온통 전쟁무기만 치켜든 채 바보짓을 한다면? 어리석은 권력자와 어리숙한 사람들이 온통 넘치면? 아주 쉽지요. 전쟁무기만 들고 살아가면 곧 죽어요. 굶어서 죽지요. 굶어서 죽을 뿐 아니라, 땅과 물이 모두 더러워졌을 테니, 숨이 막히고 목이 말라 죽습니다.


  정치권력자가 스스로 흙을 일구는 일은 없습니다. 어리숙한 사람들이 시골에 깃들어 조용히 흙을 일구는 일도 없습니다. 정치권력자는 서울에 몰려서 군인과 경찰을 곁에 거느리지요. 어리숙한 사람들도 시골을 떠나 정치권력자 있는 서울에 옹기종기 모여 돈벌이에만 마음을 쏟아요.


  누가 흙을 일구어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를 베풀까요. 누가 흙을 살찌우거나 아끼면서 푸른 바람과 맑은 물이 흐르게 할까요.


  정치권력자도 사라질 노릇이요, 어리숙한 사람도 깨달을 노릇입니다. 모든 사람이 회사원이나 공무원 되면 나라가 무너져요.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있어야 하더라도 1/3을 넘으면 안 될 뿐 아니라 1/10조차 넘으면 안 됩니다. 아니, 회사원과 공무원들도 스스로 흙을 일구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들이 정년퇴직을 한 뒤 돈을 받도록 할 일이 아니라, 땅을 받도록 해서 스스로 흙을 일구어 밥을 거둘 수 있도록 해야 옳아요. 왜 돈을 주나요. 땅을 주어야지요. 골프장 걷어치우고 고속도로를 뜯어내어 푸른 숲을 일구어야 마땅합니다. 공장을 허물고 발전소를 없애어 푸른 들로 가꾸어야 옳습니다.


  전쟁무기로는 평화를 이루지 못해요. 학교교육과 도시 물질문명으로는 사랑이 태어나지 못해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를 가로막는 ‘분리 장벽’에는 다시 올리브나무가 자라야 합니다.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도 전쟁무기 아닌 꿈과 사랑을 가르치고 배우면서 흙을 살찌우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국도 일본도, 중국도 미국도, 모두 슬기로운 사랑을 스스로 깨달아 아름다운 길을 걸어야지요. 4346.11.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청소년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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