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손

 


  우리 집 옆밭에 이웃 할매와 할배가 고구마 캐러 나오셨다. 언제 나오셨을까. 한창 집일을 하고 아이들 밥을 먹인 뒤 살짝 한숨을 돌리면서 마당으로 나오다가 비로소 알아본다. 그리 넓지 않은 밭이지만, 고구마줄기를 걷고 호맹이로 하나하나 캐자면 등허리 무척 아프실 텐데. 조금이라도 일손을 거들어야겠다고 느껴 삽 한 자루 들고 나온다. 할매와 할배가 삽으로 찍으면 다칠 수 있으니, 호맹이로 살살 긁어야 한다고 말씀한다. 삽은 갖다 놓고 호미 한 자루 들고 온다. 얼마 앞서 경운기 사고로 거의 죽다가 살아나셨다는 할배는 힘이 없다며 조금 일하고 고구마줄기 걷은 데에 눕고, 할매는 “감저(고구마) 진 묻으면 안 지워져. 하지 말고 들어가소.” 하고 말씀한다. 내 밭이 아닌 넘 밭 고구마를 캐자니, 처음에는 고구마 다칠까 봐 호미질을 깨작거린다. 깨작 호미질을 바라보던 할매가 “감저는 내가 캘 테니 저 줄기나 걷어 주소.” 하신다. 그래, 낫 한 자루 들고 고구마줄기를 차근차근 걷는다. 처음에는 줄기를 톡톡 끊으며 걷는데, 나중에는 문득 무언가를 느껴, 줄기를 살살 잡아당겨 땅속 고구마가 슬슬 끌려나오도록 잡아당기다가 톡 끊는다. 이렇게 하면 땅이 한결 부드러워지면서 고구마 캐기에 훨씬 수월하리라 느낀다. 한창 고구마줄기를 걷는데 까마중알이 쏟아진다. 이야, 까마중은 이 고구마밭 한복판에까지 들어와서 뿌리를 내렸구나. 흙놀이를 하는 큰아이를 부른다. “벼리야, 이리 와 보렴.” 굵직한 까마중알 훑어 큰아이 두 손에 수북하게 담는다. 또 한 번 수북하게 담아 준다. 이러고도 많이 있는 까마중알은 밭흙 묻어 까매진 손으로 훑어 바로 내 입으로 넣는다. 흙손으로 까마중알 훑어 먹지만, 입안에서 흙이나 모래가 까끌거리지 않는다. 아침 열한 시 조금 넘은 때부터 살짝 일손 거들려 했는데, 낮 네 시 오십 분 무렵까지 품을 파는 셈이 된다. 두 분이 힘을 쓰실 수 없기에, 고구마자루를 경운기에 싣고, 경운기에 실은 고구마자루를 두 분 방안으로 옮겨 내리는 일까지 거든다. “놉을 시킨 셈인데 밥도 못 지어 주네.” 하시면서 술 한잔 하라신다. 할배와 할매가 건네는 술잔은 여느 소줏잔으로 두 잔짜리이다. “(밭)일하느라 밥도 못 지어서 밥도 못 주네.” 하시면서 김치 한 접시를 내미신다. 한 점 먹다가 “요 김치 한 접시 가져가도 돼요? 아이들 어머니가 김치를 잘 먹어요.” 하고 여쭌다. “가져가쇼. 글면 묵은지도 좋아하요? 울 집이 아(아이) 하나가 김치를 안 먹어서 김치를 안 담그는데 집이(시골집으로) 오면 꼭 묵은지만 잘 먹어서 묵은지는 있는디.” “네, 주시면 고맙지요.” “가지 먹을 줄 아소? 먹을 줄 알면 가져가고.” 뭔가를 따로 받을 생각 없이, 바로 옆집이요, 할배가 몸이 많이 힘든 줄 아니 한손을 거들고 싶었을 뿐인데, 고구마를 한 자루 얻고, 가지를 여러 송이 얻는다. 여기에 김치 한 접시까지 얻는다. 집으로 돌아와 두 아이 불러 자전거에 태워 면소재지 마실을 한다. 오늘 하루 아버지가 옆집 할매와 할배 일손 거드느라 제대로 못 놀아 주었으니 저녁자전거 태워 준다. 얼음과자 사서 집으로 돌아와 몸을 씻는다. 아침에 할매 말씀처럼 참말 고구마물 묻은 흙이 안 지워진다. 손톱에 낀 흙때가 안 빠진다. 그러네, 수세미로 북북 문질러야 비로소 고구마물 묻은 흙이 지워지나 보다. 아이들 저녁밥 차려 주어야 하기에 물과 비누로만 얼추 씻고 수세미질은 않는다. 이듬날 아침에 고구마를 마저 캐신다니, 마저 일손 거들고 나서 수세미질을 해 보아야지. 4346.11.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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