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린네 9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279

 


이 땅에 떠도는 넋들
― 경계의 린네 9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3.5.25.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은 흙으로 돌아갈 적에도 즐겁습니다. 몸을 흙에 내려놓고 넋은 새로운 누리로 나아가리라 믿습니다. 즐겁게 살아가지 못하던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넋조차 스스로 어디로 가는가를 깨닫지 못하거나 생각하지 못하니, 이리 얽히고 저리 설킵니다.

  죽는 사람이 옷을 입고 가지 못합니다. 죽는 사람이 돈을 가져가지 못합니다. 죽는 사람이 이름값이나 권력을 들고 가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장 홀가분한 넋으로 새로운 누리로 갑니다.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이제까지 가지거나 얻거나 누리던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즐겁게 나누면서 어깨동무를 하며 살던 사람은, 언제나 즐거운 빛입니다. 언제나 즐거움과 동떨어진 채 홀로 거머쥐거나 차지하려던 사람은, 언제나 갑갑하고 바쁘며 찌푸리는 얼굴입니다.


- ‘케이코 선생님의 과거령은 자기의 쓰라린 경험 때문에 수험생을 쉬게 하려 한 것입니다.’ (24쪽)

 

 


  돈을 벌어야 한다면 왜 벌어야 할까요. 은행계좌에 차곡차곡 모으거나 땅을 사려고? 일을 해야 한다면 왜 해야 할까요. 돈을 벌어 집과 옷과 밥을 사야 하니? 날마다 어떤 낯으로 옆지기나 아이들이나 동무나 이웃을 마주하나요. 날마다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하거나 놀이를 하거나 나들이를 하는가요.


  열 살 나이도 한 번입니다. 스무 살 나이도 한 번입니다. 서른 살 나이와 마흔 살 나이, 예순 살 나이와 일흔 살 나이도 한 번입니다. 언제나 꼭 한 번만 누리는 날이요 해며 삶입니다. 어느 하루도 허투루 보낼 수 없을 뿐 아니라, 어느 하루도 빨리 지나가라 재촉할 수 없습니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인가요. 가장 사랑스러운 나날로 보내는 삶인가요. 가장 빛나는 아름다움을 마음속으로 포근히 안는 삶인가요.


- “한 가지 충고해 두지. 쥬몬지, 영의 소원대로 다 들어 주는 게 성불의 바른 길은 아니야.” (72쪽)
- ‘야요이 씨의 성불에 필요한 것은, 사랑받았다는 실감.’ “그래서 츠바사는, 그렇게 헌신적으로 야요이 씨를 상대했던 거야?” “나도 사랑의 고통이라면 누구보다도 잘 아니까.” (92쪽)

 

 


  타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책 《경계의 린네》(학산문화사,2013) 아홉째 권을 읽습니다. 지난 삶에 얽매여 그만 지구별을 떠도는 넋이 된 사람들 이야기가 흐릅니다. 우리는 왜 지난 삶에 얽매여야 할까요. 나는 왜 지난 삶을 자꾸 떠올리면서 나한테 가장 소담스럽고 아름다울 ‘오늘 하루’를 부질없이 보낼까요. 오늘은 오늘을 살아갑니다. 오늘을 어제처럼 살지 못합니다. 오늘은 오늘 밥을 먹습니다. 오늘에 와서 어제 밥을 먹지 못합니다.


  오늘 해야 하니 오늘 합니다. 오늘 놀아야 할 아이들은 오늘 신나게 뛰어놀 노릇입니다. 아쉬움을 남길 삶이 아니라, 아쉬움 없이 웃고 노래할 삶입니다. 기쁘게 춤추고, 땀흘려 일하며, 환한 웃음빛으로 어깨동무할 삶입니다.


- “아직 멀었구나, 린네. 너는 이 영의 본질을 전혀 이해 못하고 있어.” “뭐라고?” “잘 기억해 둬라. 원래 영이란 비논리적이야.” (125쪽)


  덧없는 일에 얽매이면 스스로 말이 안 됩니다. 아름다운 삶을 찾지 못하면 스스로 말이 안 됩니다. 슬기롭게 생각하고 슬기롭게 살아가며 슬기롭게 마음을 가꿀 적에 슬기로운 말이 되어요. 곧, 사랑스레 생각하고 사랑스레 살아가며 사랑스레 마음을 가꾸면 언제나 사랑스러운 말이 됩니다.


  아름다이 누릴 삶이 되자면? 그러면 생각부터 아름다운 길로 접어들도록 하고, 밥짓기도 옷짓기도 집짓기도, 또 말하기와 글쓰기와 모든 내 하루를 아름다운 바람이 흐르는 자리에서 즐거이 누리면 됩니다.


  아름다운 빛을 누리며 살기에 아름다운 빛을 남깁니다. 즐거운 빛을 나누며 살기에 즐거운 빛을 흩뿌립니다. 4346.11.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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