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너구리네 봄맞이 민들레 그림책 6
권정생 글, 송진헌 그림 / 길벗어린이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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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떠오르는 봄
― 아기너구리네 봄맞이
 권정생 글
 송진헌 그림
 길벗어린이 펴냄, 2001.12.1.

 


  겨울이 다가옵니다. 겨울을 앞두고 시골마을은 가을걷이와 콩털기를 마무리짓습니다. 마늘을 심을 곳은 마늘을 다 심고, 보리나 밀을 심을 데도 보리나 밀을 다 심었겠지요. 조금 더 일손을 놀리면 이제 가을일은 끝마치고 겨우내 폭 쉬는 일이 남습니다. 참말 겨우내 폭 쉬는 일을 해야 다시금 새봄에 기운내어 들일에 나설 수 있습니다.


  논에 마늘을 심지 않는 집에서는 유채씨를 뿌립니다. 요즈음은 시골마다 빈논에 유채씨를 뿌려 봄날에 노란 꽃물결 일렁이게 하는 바람이 곳곳에 붑니다. 봄날에 유채 꽃물결 노랗게 일렁이는 모습은 틀림없이 보기 좋습니다. 그런데 모든 지자체에서 유채씨를 뿌려 유채꽃잔치를 한다고 나서는 모습은 그리 보기 좋기 않습니다.


  꽃잔치를 벌여 도시사람 관광객으로 불러들이는 일이 얼마나 아름답거나 즐거울까요. 시골마을에서 시골사람 아끼고 사랑하는 조촐한 봄잔치라면 모르되, 도시사람한테 구경거리 되도록 하는 관광축제로는 나아가지 않기를 빕니다. 유채가 자라 꽃이 질 무렵 갈아엎으면 좋은 거름으로 된다 하는데, 씨앗도 못 맺은 유채밭을 갈아엎지 않고, 그러니까 빈논을 그대로 두어도 냉이며 민들레며 씀바귀며 고들빼기며 온갖 풀이 빈논에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요. 이 들풀을 갈아엎어도 얼마든지 좋은 거름이 됩니다.


  봄날 유채꽃만 보기 좋지 않아요. 코딱지나물꽃도 보기 좋고 봄까지꽃도 보기 좋습니다. 냉이꽃도 민들레꽃도 모두 보기 좋습니다. 오히려 온갖 들꽃이 알록달록 피어난 빈논이 훨씬 보기 좋으며, 이렇게 온갖 들풀이 골고루 난 논을 갈아엎어서 논으로 삼을 적에 논흙은 더욱 기름집니다.


..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멀리 마을이 조그맣게 보였어요. 그렇게 먼 산 속에 너구리네 집이 있었지요 ..  (2쪽)

 


  무당벌레가 가랑잎 사이에 옹기종기 모여서 겨울잠을 자려 합니다. 꽃뱀과 풀뱀도 다 같이 풀숲 아늑한 자리를 찾아 포근한 흙땅에 구멍을 내어 깃들려 합니다. 풀개구리와 참개구리도 이제 더 춥기 앞서 배를 잔뜩 불려 풀숲 따사로운 흙땅에 구멍을 파고 한숨 쉬려 합니다.


  모두들 폭 쉬는 늦가을입니다. 겨울에는 땅이 얼어붙어 땅속에 깃들지 못하거든요. 어쩌면, 잠자리도 나비도 이 늦가을 알록달록 물드는 아름다운 잎빛을 조금 더 지켜보고는 잠들고 싶을 수 있어요. 뱀도 개구리도 무당벌레도, 저마다 아리따운 가을잎 무지개빛을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쉬고 싶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도 이 가을에 가을마실 다니거든요. 도시에서 아무리 일손이 바쁘더라도, 아무리 주머니가 가난하더라도, 그래서 멀리 가을마실 다니지 못한다 하더라도, 가까운 곳에 가을잎 눈부신 나무 한 그루 있기를 바라며 가을빛 누리고 싶습니다. 시골에서도 바쁜 가을 일손 놀리다가 살며시 허리를 펴고는 “아따, 곱구만.” 하고 웃음짓습니다.


  가을이 넉넉한 철이라 한다면, 겨울 지나 봄과 여름에, 다시 찾아올 가을까지, 모두들 배부르게 먹을 곡식을 얻으며 푸성귀와 열매를 얻는 철이기도 할 테지만, 곱게 물드는 가을빛이 온누리를 따사롭게 덮기도 하기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 “얘들아, 우리끼리 한번 밖에 나가 볼까?” 오빠너구리가 물었어요. 언니너구리, 막내너구리는 가슴이 두근두근했어요 ..  (10쪽)


  권정생 님이 쓴 글에 송진헌 님이 그림을 더한 그림책 《아기너구리네 봄맞이》(길벗어린이,2001)를 읽습니다. 따사로운 글에 포근한 그림이 어우러져 멧골짝 너구리네 여섯 식구가 어떻게 겨울나기를 하는지 찬찬히 보여줍니다.


  참말 너구리는 겨울에 멧골짝에서 어떻게 지내는가요. 오소리는 겨울에 멧골짝에서 어떻게 지낼까요. 박쥐와 참새는 저마다 겨울나기를 어떻게 할까요. 사슴이나 노루는, 고라니는, 토끼는, 다람쥐는, 삵은, 사람들 등쌀에 밀려 깊디깊은 숲속으로 숨지만 먹이가 없어 사람들 살아가는 마을로 조용히 내려오는 이 들짐승과 멧짐승과 숲짐승은 저마다 겨울을 어떻게 지낼까요.


  겨울 지나 봄이 오면 조금 살 만할까요. 겨울 지나 봄이 되면 사람들이 새 고속도로를 낸다고, 새 고속철도를 뚫는다고, 새 골프장을 짓는다고, 새 발전소를 세운다고, 새 관광단지와 경기장을 닦는다면서 북새통을 이루지는 않을까요. 해마다 겨울이 될 적마다 근심 한 바구니요, 다시금 봄이 찾아올 때마다 걱정 한 소쿠리가 되지는 않을까요.

 


.. “아이구, 저게 뭐야?”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오빠너구리가 말했어요. “어마나! 하얀 찔레꽃잎이 마구마구 쏟아진다.” 언니너구리가 그랬어요. “에그, 꽃잎이 어째서 이렇게 차갑니?” 막내너구리가 입을 비쭉댔어요. “그럼, 대체 뭐야?” 모두모두 궁금해졌어요 ..  (14쪽)


  소복소복 내리는 겨울눈은 늦봄에 흩날리는 찔레꽃잎과 같습니다. 하얗디하얀 눈송이는 하얗디하얀 꽃송이하고 닮습니다. 아마 봄날에는 찔레꽃잎을 바라보며 ‘이야, 눈송이와 닮았구나!’ 하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오늘날 아이들은 찔레꽃을 보기 어렵습니다. 새봄에 새롭게 푸른 물이 오르는 찔레싹을 보지 못합니다. 오늘날 어른들도 찔레싹을 먹지 않고 찔레잎을 보지 못하며 찔레꽃을 노래하지 못합니다.


  찔레꽃도 못 보는 아이들이고 어른들이면서, 너구리하고 사귀지 못하는 아이들이며 어른들이에요. 개구리와 제비하고도 사귀지 못하는 오늘날 사람들입니다. 나비와 종달새하고도 뛰놀지 못하는 오늘날 사람들이에요.


  우리들은 무엇을 바라보는가요. 우리들은 누구와 사귀는가요. 우리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 일구는가요. 우리들은 어떤 사랑을 꽃피워 어떤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는가요.

 


.. 눈보라가 그치고 바람이 조금씩 부드러워졌어요. 햇볕이 포근포근 쪼이고 쌓였던 눈이 녹았어요. 개울물이 조록조록 흐르는 기슭으로 버들강아지가 꽃을 피웠어요. 그토록 기다리던 봄이 성큼 다가온 거예요 ..  (20쪽)


  겨울을 앞두고 봄을 떠올립니다. 다가올 겨울 휘휘 찬바람 몰아치면서 춥디춥게 지나가면 따사로운 바람 살랑이며 들과 숲마다 푸른 싹 돋습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며 새봄이 반갑고, 새봄이 반가운 만큼 여름이 즐겁습니다. 여름이 즐거우니 가을이 기쁘고, 가을이 기쁜 터라 겨울이 재미있습니다.


  겨울에는 우리 무얼 하며 놀까요. 너구리가 잠들고 다람쥐도 잠자는 이 겨울에 우리 무얼 하며 놀까요. 겨울에 소복소복 내리는 눈은 우리 보금자리와 마을에 어떤 빛이 되어 드리울까요. 겨울눈은 자동차 다니기 힘들게 하니 염화칼슘 뿌려 녹이고 얼른 치워야 하나요. 겨울눈은 아이와 어른 모두 까르르 웃음 터뜨리며 눈놀이를 하라고 부르는 하늘노래는 아닐까요. 겨울에도 여름과 똑같은 회사와 공장에서 네 철 내내 똑같은 일을 쳇바퀴 돌듯 해야만 하나요. 겨울에는 겨울일과 겨울살림을 일굴 수 없나요. 우리 아이들이 겨울에 ‘겨울아이’ 되고, 우리 어른들은 겨울에 ‘겨울어른’ 되어 저마다 가장 빛나고 환한 사랑꽃이 이 땅에 찾아오도록 할 수 있을까요. 4346.11.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한 가지, 그림에서 아쉬운 대목 있는데, 멧골짝 나무들이 '모두 똑같은 모습'이에요. 권정생 님 글에는 '다 다른 나무 이름'이 나오지만, 막상 송진헌 님은 이 다 다른 나무를 다 다른 겨울나무로 그리지는 못하셨구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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