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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숟가락 4
오자와 마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3년 10월
평점 :
만화책 즐겨읽기 276
한 번도 겪은 적 없어
― 은빛 숟가락 4
오자와 마리 글·그림
삼양출판사 펴냄, 2013.10.23.
날마다 맞이하는 아침은 날마다 다른 아침입니다. 이제껏 똑같은 아침이 찾아온 적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똑같은 아침이 찾아오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언제나 새롭습니다. 날마다 새삼스럽습니다.
밥을 지으면서 똑같은 밥을 지었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글을 쓰며 똑같은 글을 썼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사진을 찍을 적이든 그림을 그릴 적이든, 똑같은 일을 한 적이란 참말 한 차례조차 없구나 싶습니다.
편지를 부치려고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와 샛자전거에 태워 낑낑거리며 면소재지까지 다녀오는 길도, 늘 다른 길입니다. 같은 자리를 지나가더라도 1월과 3월과 5월과 7월과 9월과 11월이 사뭇 달라요. 10월 22일과 10월 24일이 달라요.
바람이 다릅니다. 햇볕이 다릅니다. 날이 다르고 날씨가 다릅니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랍니다. 어른은 나이가 든다고 하는데, 나이를 더 먹으면서 새롭게 다리에 힘살이 붙습니다.
그러고 보면, 날마다 새날 맞이하는 만큼, 날마다 이제껏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일을 맞이합니다. 늘 새로운 삶입니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처음 겪는 일을 맞이합니다. 오늘과 같이 모레와 글피도 늘 새로운 일을 겪고 새로운 삶을 일구겠지요.
- “맛있는 냄새. 오늘은 뭐야?” “드디어 소금누룩이 완성돼서 당장 돼지고기를 구워 봤어.” (10∼11쪽)
- “네 친부모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몰라. 알 필요 없다고 생각했거든.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경위로 네가 태어났으며 어떤 사정이 있어 남한테 넘겼는지도. 사실은 좀더 빨리 얘기해야 했던 건지도 모르지만, 네가 친자식이 아니라는 걸, 솔직히 잊고 있었어.” (26∼27쪽)
봄과 여름 동안 제비집에 제비가 새끼를 까서 먹이를 물어다 나르는 일도, 제비한테나 우리한테나 늘 새롭습니다. 제비가 물어다 나르는 먹이는 언제나 다릅니다. 같은 잠자리를 두 번 잡지 못합니다. 같은 나비나 애벌레를 두 번 먹지 못합니다.
부추잎을 꺾건 민들레잎을 뜯건 늘 새로운 잎을 꺾거나 뜯습니다. 새로운 밥을 먹고, 새로운 푸성귀를 먹습니다. 새로운 바람을 마시고 새로운 물을 들이켜요.
새로운 책을 읽습니다. 같은 책을 되읽는다 하더라도 새롭게 맞아들이며 읽는 책입니다. 어제 읽을 때와 오늘 읽을 때가 같을 수 없어요. 오늘 나는 어제보다 하루 더 자란 나예요. 모레와 글피에 읽는다면, 모레만큼 더 자라고 글피만큼 새롭게 자란 나입니다.
사랑을 속삭여 봐요. 날마다 새로운 사랑입니다. 사랑을 노래해 봐요. 언제나 새로운 사랑이에요. 꿈을 꾸는 나도, 새롭게 꿈꾸는 나입니다. 길을 걸을 때나, 풀을 벨 적이나, 씨앗을 심을 적이나, 반가운 동무를 만나 이야기꽃 피울 때나, 늘 새롭고 새삼스럽습니다. 새로움은 즐거움이고 새삼스러움은 사랑스러움입니다.
- “배고프지? 얼른 집에 가서 저녁 먹자.” “오늘은 고등어된장조림이야. 아. 고기가 아니라고 풀죽은 것 봐. 고등이는 머리가 좋아져. 시라베 오빠한테 가장 필요한 요소라구.” “시끄러우니까 잠자코 있어!” (50∼51쪽)
- ‘사실은 그것 때문에 왠지 모르게 키시, 신야와 어색해진 일이나, 형의 비밀, 엄마의 병에 대한 것 등등, 얘기하고 싶은 건 잔뜩 있었다. 하지만, 고개를 숙였을 때 보이던 미유키의 긴 눈썹이나 새하얀 목덜미, 보고 싶다고 했더니 만나러 달려와 준 마음씀씀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78∼79쪽)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일을 겪는대서 낯설지 않습니다. 하나하나 따지면 모두 낯설지요. 우리 아이도 어제와 오늘이 낯설어요. 하루만큼 더 자라는걸요. 우리 이웃도 낯설어요. 하루만큼 새롭게 살림 꾸리거든요.
삶을 꽃피우면서 사랑을 꽃피웁니다. 삶을 가꾸면서 이야기를 가꿉니다. 삶을 즐기면서 노래를 즐깁니다. 삶을 읽으면서 책을 읽습니다.
한 번도 겪지 않은 하루이기에 저녁에 잠들면서 두근두근 설렙니다. 오늘에 이어 이튿날에는 어떤 삶이 찾아들어 웃음꽃 지을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새 하루에는 어떤 새 마음과 새 몸이 되어 새롭게 왁자지껄 떠들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내가 부를 새 노래를 생각하고, 내가 지을 새 빛을 생각합니다.
- “형은 뭐해?” “내일 대학 친구 집에서 몬자야키 만들 거라, 도구 챙기고 있어.” “흐음, 왜?” “왜긴. 한 번도 먹어 본 적 없다니까 그렇지.” (81쪽)
- “하긴. 다들 똑같은 꿈을 향해 가고 있구나.” (149쪽)
오자와 마리 님 만화책 《은빛 숟가락》(삼양출판사,2013) 넷째 권을 읽습니다. 넷째 권에 나오는 사람들은 셋째 권과 대면, 한 뼘씩 더 자랐습니다. 더 자란 만큼 마음과 몸이 씩씩하고 튼튼한데, 한 뼘씩 더 자랐으면서도 ‘더 자란 만큼 새로운 삶에서 새로운 마음앓이’를 맞아들입니다. 한 뼘 더 자랐으니 지난 삶을 놓고 조금 더 기운차게 맞닥뜨릴 수 있을 테지만, 한 뼘에도 또 한 뼘 자라도록 새삼스러운 일들이 찾아와요. 한 뼘에서 또 한 뼘 자라면, 여기에서 또 한 뼘 자라도록 북돋울 새로운 일들이 찾아오겠지요. 그러고 나면, 또 다른 일 찾아와 새로 한 뼘, 또 한 뼘, 다시 한 뼘, 거듭 한 뼘, 이렇게 하루하루 언제나 새롭게 이어갑니다.
자, 이런저런 마음앓이는 살짝 내려놓읍시다. 우리 함께 저녁을 들어요. 아침을 같이 들고, 낮에 샛밥 나란히 들어요. 모든 사랑을 듬뿍 담아 지은 밥을 함께 먹어요. 온 꿈과 빛을 골고루 실어 지은 밥을 같이 먹어요.
미운 사람 싫은 사람 없어요. 고운 사람 반가운 사람 따로 없어요. 배고픈 사람이면 누구나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어요. 치고받는 싸움터에서도 싸움 살짝 쉬고 함께 밥을 먹어요. 밥을 먹고 기운을 차려 다시 싸우든 이제 싸움은 그치든,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며 밥을 먹어요.
- ‘나중에 리츠는, 그때까지 여러 번 밥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았으면서, 같이 밥을 먹는 건 처음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밖에서 다 같이 먹는 밥은 대부분 맛있지만, 거기서 가지런히 손을 모아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한 유코를 보고 가슴 설레었다고 말했다.’ (157쪽)
- ‘형의 비밀을 알고 나서 잠깐 동안 형한테 받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쓰레기를 버리고 도시락을 스스로 쌌지만, 그게 오래가지는 못했다. 왜냐면 형은 형이니까. 형이 무리해서 요리하는 거라면 몰라도, 뭔가를 만들면 먹어라 먹어라 어찌나 성가시게 구는지, 정말 그냥 좋아서 만들 뿐이다.’ (172∼173쪽)
밥 한 그릇에 평화가 있습니다. 밥 한 그릇에 사랑이 있습니다. 밥 한 그릇에 꿈이 있습니다. 아이들도 자라고, 어른들도 자랍니다. 아이들도 노래하고, 어른들도 노래합니다. 아이들만 자라지 않아요. 어른들은 안 자라지 않아요. 아이들만 배워야 하지 않아요. 어른들도 날마다 새롭게 배워요.
어른도 아이를 가르치고, 아이도 어른을 가르칩니다. 어른도 아이와 어깨동무를 하고, 아이도 어른과 어깨동무를 합니다. 서로 마주보면서 빙긋 웃습니다. 서로 깔깔 호호 하하 웃다가는 목청껏 노래를 부릅니다.
풀바람을 쐽니다. 하늘숨을 마십니다. 빗물을 맨몸으로 받다가는 입을 헤 벌려 그대로 빗물을 먹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즐겁게 입고 뛰놀거나 일한 옷은 벗어서 복복 비벼서 빨래합니다. 빨래기계에 맡길 수 있지만, 내 옷은 내 손으로 정갈하게 빨아서 말끔하게 넙니다. 이부자리를 깔고, 이불을 개요. 해가 좋으면 이불을 내다 넙니다. 해맑게 흐르는 하루는 지구별 모든 사람들한테 해맑은 이야기 한 보따리 베풀어 줍니다. 4346.10.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만화책 즐겨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