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품이 나는 시집

 


  무슨무슨 문학상을 탔고 이런저런 시집을 여럿 냈다는 분이 쓴 어느 시집을 읽다가 하품이 나온다.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하다가 시집을 옆에 내려놓는다. 큰아이 볼을 살살 쥐고 작은아이 복숭아 같은 궁둥이를 슬슬 잡는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다. 어느새 시집을 잊는다. 비를 들어 마루와 부엌을 쓴다. 호박을 썰고 감자랑 양파도 썰어 볶는다. 밥을 끓이고 국을 끓인다. 아이들과 맛나게 먹는다. 수레와 샛자전거 붙인 자전거를 마당에 내린다. 아이들이 아버지 따라 마당으로 내려선다. 두 아이 태우고 대문을 활짝 연다. 이 깊은 두멧시골에까지 주암댐 수돗물 마시게 하겠다는 전라남도와 고흥군 문화복지정책에 따라 우리 집 앞 고샅길 모조리 파헤치고 양철인지 스텐인지 쇠붙이인지 아무튼 둥그런 주름관 파묻는다며 바쁘다.


  면소재지 우체국에 들르고, 면소재지 가게를 들른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은 다시 뛰놀고, 내 옷과 식구들 옷을 빨래한다. 어느덧 저녁 차릴 때가 된다. 저녁을 차린다. 함께 먹는다. 밥을 먹고 나서 함께 논다. 큰아이는 그림책을 펼쳐 뒤적이고, 작은아이는 장난감 비행기를 들며 논다. 나는 문득 떠올라 시집을 다시 손에 쥔다. 또 하품이 나온다. 몇 줄 읽다가 옆에 내려놓는다. 아이들 눈을 살피니 졸음이 가득하네. 아이들 쉬를 누이고 자리에 눕힌다. 이불을 여민다. 자장자장 노래를 부른다. 열 가락쯤 부를 무렵 두 아이 색색 숨소리 고르다.


  잠든 아이들 이마를 살살 쓰다듬고는 마당으로 내려선다. 차츰 차는 달빛이 아주 환하다. 마을과 들을 골고루 하얗게 덮는다. 별자리를 어림하고 미리내를 헤아린다. 오늘 우리 집 둘레에서 노래하는 풀벌레는 몇이나 있는가 생각한다. 쉬를 한 줄기 누고 집으로 들어가 아이들 곁에 나란히 눕는다. 4346.10.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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