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는 값 2
책 한 권 사고 싶어 돈을 모읍니다. 사진기 한 대 장만하려고 여러 달이나 여러 해 푼푼이 돈을 모으듯이, 책을 사려고 푼푼이 돈을 모읍니다. 집과 땅을 사려고 꾸준하게 돈을 모으듯이, 책을 장만하고 책꽂이를 마련하며 책터를 꾸미려고 꾸준하게 돈을 모읍니다.
돈은 많이 모일 수 있고 조금 모일 수 있습니다. 어느 만큼 모을 수 있더라도 즐겁습니다. 많이 모은 돈으로는 책을 넉넉히 장만합니다. 조금 모은 돈으로는 책방에서 이 책 저 책 살피고 가눈 끝에, 주머니에 맞추어 한 권이나 두 권 알뜰히 장만합니다.
한 달에 한 권 장만하더라도 한 해에 열두 권 됩니다. 열 해에 백스무 권 됩니다. 서른 해에 삼백예순 권 됩니다. 내 책꽂이에 책을 몇 권 꽂든, 스스로 온마음 기울여 사랑스레 장만하면서 읽은 책은 마음밭 살찌우는 고운 빛으로 스며듭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밭 살찌우는 고운 빛을 찾고프기에 책을 장만해서 읽습니다. 내 마음밭 살찌우는 고운 빛이 될 만한 길동무를 만나고 싶어 씩씩하게 일하며 책값을 마련합니다.
자전거 한 대를 장만하려고 돈을 모으곤 합니다. 값싼 자전거도 많지만, 자전거를 한 번 장만했으면 적어도 마흔 해는 타고, 나중에 아이한테까지 물려줄 만한 자전거를 타고 싶습니다. 그래서 값싼 자전거보다는 튼튼하고 가벼우며 아름답고 야무진 자전거를 고릅니다. 한두 해 탈 자전거 아니라 마흔 해를 내다보는 자전거요, 아이한테 물려주고 싶은 자전거인 만큼 퍽 오래 돈을 모아 자전거 한 대를 장만합니다.
내가 읽으려는 책은 한 번 읽고 덮을 책이 아닙니다. 두고두고 되읽고 싶은 책을 장만합니다. 스스로 언제라도 다시 넘기거나 들추고픈 책을 장만합니다. 나중에는 아이한테 물려줄 만한 책을 장만합니다. 우리 아이들 무럭무럭 자라 어버이한테서 사랑과 꿈 가득 담은 고운 이야기밭 물려받을 수 있도록 푼푼이 돈을 모아 아름다운 책 기쁘게 장만합니다.
책을 사는 값이란, 이야기를 사는 값입니다. 책을 사는 값이란, 삶을 밝히는 빛을 사는 값입니다. 책을 사는 값이란, 사랑과 꿈을 아끼려는 고운 넋 북돋우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온 사람들 눈망울과 땀방울을 사는 값입니다. 4346.10.1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