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 18. 한글날이 공휴일이 된 뜻
― 껍데기인 ‘글’과 알맹이인 ‘말’

 


  2013년부터 한글날이 다시 공휴일이 됩니다. 달력을 보면 한글날 빛깔이 빨갛게 물듭니다. 공휴일이 되니 사람들이 한글날을 새롭게 다시 기리려나 궁금한데, 사람들이 기릴 만한 날이라 한다면 공휴일이건 국경일이건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기리리라 느껴요. 기릴 만한 아름다운 날은 중앙정부에서 공휴일이나 휴일이나 국경일로 삼지 않아도 ‘기릴 만한 아름다운 날’입니다.


  한글날은 한글을 기리는 날입니다. 한겨레가 쓰는 ‘말’을 기리는 날이 아닙니다. 한글이라는 글을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을 붙인 임금님을 기리는 날입니다. 그래서, 한글단체에서는 한글날에 세종큰임금 동상 앞으로 가서 꽃을 바칩니다.


  한글날이나 꽃바치기가 뜻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나, 무언가 엉뚱한 데로 잔치와 이야기가 흐르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한글이란 무엇일까요. 한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사람이 주고받는 말을 담는 그릇이 한글입니다. 우리한테 글이 있는 즐거움과 기쁨을 기리려는 한글날입니다. 그런데, 훈민정음을 처음 만든 때부터 개화기를 지나고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해방 언저리를 지나도록, 이 나라 지식인과 권력자와 공무원은 한글을 업신여겼어요. 모두들 중국글을 빌어 글을 썼지, 한국글로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한국글 아닌 중국글 빌어서 글을 쓰니, 저절로 중국말이 스며듭니다. 중국글로 담는 이야기는 중국말로 이루어집니다. 수많은 한자말이 중국글 빌어쓴 버릇 때문에 스며들었습니다. 이 흐름은 오늘날에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요즈음에는 영어를 마구 쓰는 일을 나무라거나 꾸짖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한국말을 한국글로 안 담고 영어를 한국글로 담으려 하니 나무라거나 꾸짖습니다. 그러면, 한국말 아닌 중국말을 한국글에 담는 일 또한 나무라거나 꾸짖어야 올바릅니다. 더 나아가, 한국글이 한국글답도록 한국말다운 한국말을 살찌우면서 아낄 때에 아름답지요.


  ‘목백일홍(木百日紅)’이라고 가리키는 나무가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목백일홍’이라고도 ‘백일홍’이라고도 가리키지 않습니다. ‘배롱나무’라 하거나 ‘간지럼나무’라 합니다. 꽃은 따로 ‘배롱꽃’이라 합니다. 글로 놓고 보자면 ‘목백일홍’이나 ‘백일홍’도 한글이에요. 그러나 ‘백일홍’처럼 적는대서 한국말이 되지 않아요. 한국말은 ‘배롱꽃’이고 ‘배롱나무’이며 ‘간지럼나무’입니다.


  ‘목’이라 적어도 한글이지만, 한국말이 아닙니다. ‘나무’라 적고 말할 때에 올바른 한글이면서 아름다운 한국말입니다. ‘대지’라 적으면 한글은 되어도 한국말은 못 되어요. ‘땅’이라 적고 말할 때에 한국말다운 한국말입니다.


  말은 ‘말’이라고 가리켜야 올바른 한국글이면서 한국말입니다. ‘언어’처럼 적으면 껍데기와 무늬는 한글이라 하더라도 올바르지 않은 한국글이고 엉뚱한 중국말이 됩니다.


  박남일 님이 쓴 글로 빚은 그림책 《뜨고 지고》(길벗어린이,2008) 52쪽을 보면, “바람이 잔잔한 날에는 물결이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메밀꽃이 일고.” 같은 글월이 나옵니다. 물결과 너울과 메밀꽃을 이야기하는 대목입니다.


  나는 바다가 가까운 동네에서 태어나 바닷가에서 무척 자주 오래 놀았어요. 어릴 적에 ‘메밀꽃’이라는 낱말을 익히 들었습니다. 그런데, 들판에 피는 메밀꽃 아닌 바다에 일어나난 메밀꽃을 보고 들었어요. 바다와 얽힌 낱말을 살핀다면, ‘물결’이 아름다운 한국말이면서 한국글입니다. ‘파도’는 껍데기만 한글일 뿐 한국말이 아닙니다. ‘바닷가’와 ‘모래밭’이 아름다운 한국말이면서 한국글이에요. ‘해변’과 ‘해안’과 ‘해수욕장’과 ‘모래사장’은 한국말도 아니고 한국글도 아닙니다.


  다시 공휴일이 된 한글날을 기리는 뜻은 훌륭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글이라는 글자에만 눈길을 둘 수 없습니다. 한글이라는 글자에 담는 한국말을 슬기롭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한글이라는 글자에 담을 한국사람 넋과 삶을 사랑스레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알파벳을 빌어서 쓰더라도 겨레말과 나라말 아름답고 튼튼히 지키는 저 아시아 나라와 중남미 나라를 보셔요. 베트남 겨레가 쓰는 베트남말은 베트남말입니다. 브라질과 칠레와 쿠바가 부르는 노래는 브라질 겨레 노래요 칠레 겨레 노래이며 쿠바 겨레 노래예요. 이들은 글이 없고 나라를 빼앗기며 모진 식민지살이를 겪어야 했을 뿐 아니라, 말까지 에스파냐말이나 포르투갈말을 써야 하지만, 이러한 글과 말로도 이녁 겨레와 나라 넋·얼을 알뜰히 보여줍니다.


  한국사람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겉보기로만 한글인 글이 아닌, 알맹이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말을 옳게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낱말만 예쁘장한 토박이말이 아니라, 낱말과 낱말을 엮는 글월(문장)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한국말을 깨달아야 합니다.


  껍데기는 한글이라지만, 일본 말투와 번역 말투가 어지럽게 섞인 글을 쓴다면, 이러한 글은 ‘겉보기 한글’이지만 ‘속보기 한국말’이 될 수 없어요. 껍데기 한글날을 기리는 데에서 그칠 노릇이 아니라, 아름다운 알맹이가 될 한국말을 살찌우고 북돋우면서 사랑하고 즐기는 길로 나아갈 노릇입니다. 이를테면, 한글로 ‘오마이뉴스·프레시안’이나 ‘네이버·다음’처럼 적으면 겉보기로는 한글이지만, 속알맹이로는 한국말이 아니에요. 이들 이름은 모두 ‘ohmynews·pressian’에다가 ‘naver·daum’이라는 외국말이에요. 무늬만 한글로 적어서 보여준대서 한글날을 기리는 뜻이 아닙니다. 마음을 올곧게 추슬러서 아름답게 다스려야 한글날을 기리는 참뜻이 됩니다. 생각을 하고, 생각을 키우며, 생각을 넓힐 때에 비로소 한글날을 한글날답게 아끼면서 노래할 수 있습니다.


  세종큰임금이 한글(훈민정음)을 빚어서 퍼뜨린 일은 틀림없이 훌륭합니다. 그러나, 세종큰임금이 왜 한글을 빚어서 퍼뜨릴 수 있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바로, 이 나라 시골마다 흙을 만지며 일구던 수수하고 투박한 여느 사람들이 여느 시골살이를 지키고 가꾸고 살찌우면서 시골말을 아름답게 돌보았기에, 한글(훈민정음)을 빚을 수 있었고, 이 한글에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한국말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토박이말이란 바로 시골말입니다. 토박이말은 시골사람이 시골마을에서 흙을 만지고 숲을 가꾸며 들을 노래하던 삶이 담긴 말입니다. 그래서, 요즈음 도시문명사회가 된 모습에서 한겨레 토박이말을 아무리 되찾거나 되살리려고 해도 사람들이 제대로 못 쓰거나 잘 몰라요. 도시에서는 흙을 안 만지고 숲과 들을 아끼거나 보살피지 못하니까요. 앞으로 도시에서도 텃밭을 일구고, 도시 한복판에도 숲을 마련해서, 도시사람 스스로 밭과 숲을 노래하며 햇볕과 바람과 비와 눈과 꽃과 풀과 나무와 흙을 사랑할 수 있다면, 시나브로 한글과 한국말 모두 넉넉하고 푸르게 되살아나리라 생각합니다. 4대강사업과 한미자유무역협정과 국가보안법과 막개발과 핵발전소 모진 바람이 휘몰아치는 사회에서 한글과 한국말은 살아나지 못합니다. 입시지옥과 재테크와 자동차와 고속도로와 경제성장율에 목을 매다는 나라에서 한글과 한국말은 숨조차 쉬지 못합니다.


  삶길을 열어야 말길이 열립니다. 말길을 열어야 마음길과 생각길을 엽니다. 2013년 한글날을 발판으로 삼아 앞으로는 겉치레와 무늬와 껍데기에서만 그치는 ‘한글날 잔치’가 아닌, 속살과 알맹이와 참모습을 가꾸며 살찌우는 ‘한국말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4346.10.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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