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 피는 울타리
호박꽃이 핀다. 호박꽃이 노랗게 핀다. 호박꽃이 아이 얼굴만 하게 큼직큼직 핀다. 호박꽃은 퍽 먼 데에서 보더라도 쉬 알아챈다. 호박은 꽃송이를 많이 내놓지 않는다. 호박넝쿨 사이사이 듬성듬성 꽃송이 내놓는다. 감꽃은 크기가 조그맣지만 열매는 굵직한데, 호박꽃은 크기가 퍽 크고, 호박알은 훨씬 굵직하다.
얼마나 많은 햇볕과 바람과 빗물을 품는 호박알일까. 얼마나 따순 햇볕과 바람과 빗물을 먹고 노랗게 빛나는 호박꽃일까. 작은 호박씨 하나에서 숱한 호박알 주렁주렁 달린다. 호박넝쿨은 뻗을 수 있는 대로 뻗어, 배고픈 이웃한테 커다란 알덩이를 베푼다. 너도 먹고 나도 먹으며, 주렁주렁 달린 열매로 모두 배불리 밥그릇을 비운다.
울타리 따라 호박넝쿨 뻗어 호박꽃 피고 호박알 맺는다. 울타리는 이웃과 이웃을 가로막는 돌이 아니다. 울타리는 바람을 막고 넝쿨이 타고 오르도록 서로서로 살가이 만나는 이음새이다. 4346.10.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