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아끼는 손길

 


  책을 아끼는 손길로 풀 한 포기를 아낍니다. 책을 사랑하는 손길로 아이들을 따사롭게 쓰다듬습니다. 책을 믿는 손길로 나무 한 그루를 살며시 어루만집니다. 책을 즐기는 손길로 이웃과 어깨동무를 합니다. 책을 돌보는 손길로 집살림을 알뜰살뜰 일굽니다.


  마음을 기울일 적에 책 한 권 내 속으로 들어옵니다. 마음을 기울이지 못할 만큼 바쁘거나 힘들거나 고되거나 지치거나 멍하거나 쪼들릴 적에 책 한 권 내 속으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마음을 기울여야 내 동무와 이웃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알아듣습니다.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면 옆지기가 하는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고는 한귀로 흘립니다.


  책을 읽으려면 책을 읽으면 됩니다. 마음을 들여 생각을 활짝 열면서 책을 보드랍게 손에 쥐면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오직 이 책 하나만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며 다른 데에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우리 집 살림돈이 바닥이 났든, 내 몸 어디가 아프든, 내가 하는 일이 높은 울타리에 가로막혔든, 책방마실 나오는 길에 비를 쫄딱 맞았든, 이런 일 저런 일 아무것도 마음을 안 쓰고 오직 책만 손에 쥔 채 책에 깃든 이야기를 좇습니다.


  삶을 새롭게 마주하는 힘을 글 한 줄에서 얻습니다. 삶을 새롭게 마주하겠다는 다짐을 글 한 줄에서 깨닫습니다. 때로는 지식 한 조각 책에서 얻어요. 그런데, 지식조각은 책을 펼치지 않아도 우리 둘레에 널렸어요. 굳이 책을 손에 쥐어 이 책 하나에 깃든 이야기를 읽으려 한다면, 내 삶을 내 손으로 곱게 아끼면서 보듬을 빛을 헤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책을 아끼는 손길로 삶을 아낍니다. 책을 아끼는 손길로 삶터와 마을과 지구별을 아낍니다. 책을 아끼는 손길로 꿈과 사랑과 믿음을 고이 아낍니다. 책을 아끼는 손길로 하늘과 해와 비와 바람을 살뜰히 아낍니다. 4346.10.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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