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서 만나다

 


  도서관에서 ‘세계여행’을 한다고 말씀하는 분이 있습니다. 중학생 적에 이런 말을 듣고는 인천시에 있는 시립도서관과 구립도서관을 모두 찾아다니며 어떤 책이 있는가를 찬찬히 살폈습니다. 내 동무들은 도서관에 ‘시험공부’를 하러 갔지만, 나는 도서관에 ‘책을 읽으러’ 갔습니다.

 

  1980년대 끝무렵과 1990년대 첫무렵 인천시 도서관은 ‘세계여행’을 시켜 줄 만한 책이 얼마 없었습니다. ‘국내여행’조차 제대로 시켜 주지 못했습니다. 도서관보다는 여느 새책방이 ‘여행’을 시켜 준다고 느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92년에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서 책에 눈을 떴습니다. 헌책방 한 곳 크기는 새책방 크기하고 견주면 퍽 작기도 하고 책꽂이도 조그맣다 할 수 있어요. 도서관 커다란 건물하고 대면 헌책방은 그야말로 콩알만 하구나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헌책방에는 도서관에 없고 새책방에 없는 책이 그득했어요. 도서관에서 갖추지 않는 책들이 있고, 새책방에서 사라진 책들이 있어요.


  헌책방에서 ‘세월 넘나드는 여행’을 합니다, 헌책방에서 ‘이 나라와 저 나라 가로지르는 여행’을 합니다. 다른 나라에서 나온 온갖 책을 헌책방에서 만납니다. 예전 사람들이 땀흘려 일군 알뜰한 책을 헌책방에서 만납니다.


  왜 도서관에는 다른 나라 책이 거의 없을까요. 왜 도서관에는 예전 책을 찾아보기 이토록 어려울까요. 도서관에는 어떤 책을 놓아야 어울릴까요. 새책방에는 어떤 책을 갖추어야 아름다울까요.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빌려 읽어야 즐거울까요. 사람들은 새책방에서 어떤 책을 사서 읽을 적에 흐뭇할까요.


  중국조선족이 엮은 책을 헌책방에서 만나며 생각합니다. 한국에 있는 헌책방에서 이 책을 만났기에, 나로서는 비행기삯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중국 연변에 있는 신화서점이나 헌책방을 샅샅이 찾아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돈 몇 푼으로 중국 연변 나들이를 다녀온 셈입니다.


  먼 나라 이웃 숨결을 느낍니다. 먼 나라 이웃 손길이 깃든 책을 넘기면서 내 마음으로 스며드는 넋을 곱씹습니다. 책을 만나면서 삶을 만납니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읽습니다. 책을 사귀면서 고운 꿈을 키웁니다. 4346.9.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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