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9.10.
 : 나비 주검

 


- 아주 오랜만에 수레와 샛자전거 모두 뗀 홀가분한 자전거를 달린다. 옆지기가 미국 람타학교에서 돌아왔으니 아이들 안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셈이지. 도서관에 들러 청소를 한다. 며칠 앞서 비가 내렸기에, 비가 새는 곳에 빗물이 고였다. 이 빗물을 밀걸레로 문지르면서 골마루를 닦는다. 비질과 밀걸레질을 마치고는 우체국으로 가서 편지를 부친다. 이제 어디로 갈까 생각하다가 청룡마을 쪽 접어드는 언덕길을 달린다. 언덕길 한쪽에 석류나무밭 있다. 누가 따로 심어서 돌볼 텐데, 찻길을 따라 두 줄로 석류나무가 자란다. 붉게 익는 알이 소담스럽다.

 

- 홀로 자전거를 달리니 무척 가벼운 한편, 자전거 발판 밟는 느낌이 다르다. 그동안 아이들 태우는 발판질에 익숙하다 보니, 혼자 타는 자전거 발판질이 갑자기 잘 안 된다. 자전거가 자꾸 흔들린다. 미후마을 장촌마을 지나 신촌마을 언저리 닿기까지 곰곰이 생각한다. 자전거 뒤에 수레나 샛자전거 붙일 적에는 발판질을 그만큼 무겁게 하고, 이렇게 혼자 가볍게 자전거 달릴 적에는 발판질도 그만큼 가볍게 해야 한다고 느낀다. 가볍게 밟자, 가볍게, 가볍게.

 

- 신촌마을에서 해창 들판 접어드는 샛길로 들어선다. 안동마을 즈음 해창만 드넓은 들판 쪽 길로 빠진다. 그런데, 한참 달리고 보니 길이 없다. 바닷물 흐르는 데가 나온다. 오던 길을 거슬러 달린다. 이쪽에는 자전거로 들어올 사람이 없을 테니 알림판 세우지도 않을 테고, 이리로 들어서는 이들은 들판을 일구는 농사꾼 짐차와 경운기뿐일 테니 알림판 없어도 저마다 길을 다 알겠지. 한참 돌고 다시 돌며 빙빙 돈 끝에 남촌마을까지 나온다. 송산마을 어귀까지 온다. 다시 돌고 더 돈 끝에 해창만방조제로 나오고,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해창만공원 옆을 스친다.

 

- 두 시간 즈음 해창 들판을 헤매고 달리며 생각한다. 이 너른 들판은 모두 뻘밭이었다는데, 얼마나 넓은 뻘밭이 사라진 셈일까. 이 너른 들판을 달리며 풀벌레 노랫소리 거의 못 듣는데, 이 너른 들판에는 얼마나 푸른 숨결이 감돌까. 이 너른 들판에도 나비가 몇 날지만, 마을에서 만나는 나비와 대면 아주 적다. 어떤 소리가 흐르는 들일까. 어떤 내음이 감도는 들인가. 드문드문 지나가는 자동차한테 치이고 밟혀 죽은 범나비 한 마리를 본다. 자전거로 옆을 슥 지나쳤다가 한참만에 돌아온다. 아무래도 그냥 지나갈 수 없다. 나비 주검을 한둘 아닌 수십씩 마주치는데 그때마다 이렇게 풀섶으로 옮기기는 힘들는지 모르나, 언제나 모르는 척 지나칠 수는 없다. 길바닥에 납짝쿵으로 눌러붙은 주검을 어렵게 뗀다. 풀섶에 내려놓는다. 너는 바람이 되고, 너는 빗물이 되고, 너는 햇살이 되고, 너는 꽃이 되어, 이 땅에서 곱게 웃을 수 있기를 빈다.

 

- 집으로 돌아간다. 세 시간 남짓 자전거를 달리니 엉덩이가 몹시 아프다. 옥강리 내초마을 앞에서 노란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 넷 본다. 이 노란버스는 오취 쪽으로 달리다가 다시 포두 쪽으로 돌아나온다. 돌아나오면서 자전거 옆으로 아주 바짝 붙으며 시잉 달린다. 초등학교 아이들 태우는 노란버스인데 얌전히 달려야 하지 않나. 노란버스는 되도록 천천히 달려야 하지 않나. 이 시골마을 아이들은 시잉 달리는 노란버스를 타면서 무얼 생각할 수 있을까. 마을마다 조그맣게 있는 배움터 아닌 면소재지나 읍내에 있는 학교까지 먼길을 오가면서 무엇을 보거나 느낄까.

 

- 흙밭과 자갈밭 한참 달린 자전거는 먼지투성이가 된다. 오랜 나날 나와 함께 어디로든 달리는 자전거가 고맙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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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9-12 17:27   좋아요 0 | URL
사진들이 너무 좋습니다~
자동차에 치이고 밟혀 죽은 나비를 어렵게 떼어 풀섶에 내려 놓고 나비에게
바람이 되고 빗물이 되고 햇살이 되고 꽃이 되어 이땅에서 곱게 웃을 수 있기를 비신
함께살기님의 마음에 찡해집니다...
아, 길가의 나무에 석류가 빨갛게 열렸네요~^^

숲노래 2013-09-12 17:50   좋아요 0 | URL
이날 사진을 200장쯤 찍었어요.
다른 글 하나를 쓰려고
이 글에는 몇 가지만 뽑았어요.

놀라운 시골마을 가을빛 담은
사진 곧 선보일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