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7.24.
: 나리꽃 자전거
- 아이들과 놀기란 아주 쉽다. 그저 마음을 홀가분하게 열고 아이들하고 놀면 된다. 아이들은 아주 놀랍거나 대단한 깜짝잔치를 베풀어 주어야 반기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전거에 태워 가까운 면소재지 우체국 다녀오는 길로도 즐거워 한다. 그러면, 자전거는? 대단한 자전거를 몰아야 아이들과 다닐 수 있지 않다. 튼튼한 자전거라면 다 즐겁다. 여느 짐자전거라면 뒷자리에 방석을 깔아 아이 하나 앉힐 만하고, 손잡이와 안장 사이에 조그마한 걸상을 놓아 아이 하나 더 앉힐 만하다. 돈을 조금 들일 수 있으면 자전거수레 하나 장만할 수 있다. 아이 태우는 자전거수레는 20∼30만 원이면 장만할 수 있다. 우리 집 아이는 둘이고, 큰아이는 여섯 살 되면서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나란히 못 태운다. 큰아이 몸이 많이 큰 만큼 따로 샛자전거를 붙여서 달린다. 샛자전거는 10∼20만 원 즈음 헤아리면 장만할 만하다. 이만 한 값을 비싸다고 여긴다면 가없이 비쌀 테지. 그런데, 이만 한 값은 자동차 기름 몇 번 넣을 만한 값일 뿐이다. 자가용을 덜 타고 자전거를 장만해서 아이들과 즐겁게 삶을 누릴 적에 얻는 보람과 빛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돈으로 셀 수 없는 웃음과 이야기를 낳는다.
- 한여름 더위가 한풀 꺾이려는 너덧 시 즈음 아이들을 부른다. “얘들아, 이제 땡볕이 덜 따가우니 자전거 탈까?” ‘자전거’ 소리에 작은아이가 먼저 고개를 홱 돌려 쳐다본다. “자정거? 자정거 타자!” 하면서 부리나케 마당으로 내려선다. 큰아이도 바로 따라온다. 수레와 샛자전거 붙인 자전거를 마당에 내려놓으니 작은아이는 누나가 앉는 샛자전거에 붙은 무당벌레 딸랑이를 만진다. 아이야, 네가 무럭무럭 자라서 샛자전거에 앉을 수 있으면 이제 네가 이것 늘 만질 수 있어. 그때에 네 누나는 혼자서 따로 자전거를 몰 수 있겠지.
- 소포꾸러미를 수레에 싣는다. 물을 챙긴다. 자, 이제 달릴까. 우체국으로 신나게 달리는 길에 호덕마을과 원산마을 들판 맞닿는 자리에 핀 나리꽃을 본다. 마을 어르신들이 틈틈이 풀베기를 하느라 해마다 몽땅 베여 죽는데, 용하게 해마다 다시 꽃대를 올려 꽃을 피운다. 땅에 뿌리박은 숨결이란 이렇게 씩씩할까. 마을 어르신들은 어느새 논둑이나 밭둑에 이처럼 고운 꽃 피어나도 썩 반기지 않는데, 집안 마당 한쪽에 일구는 꽃밭에서만 꽃을 보려 하시는데, 너희 들나리(들에서 피는 나리)는 기운차고 다부지게 살아가는구나.
- 우체국에서 소포를 부친다. 소포를 부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까 본 나리꽃 앞에서 자전거를 세운다. 큰아이한테 꽃내음 맡아 보라 이야기한다. 키 껑충 자란 나리꽃을 보려고 꽃대를 살살 잡아 끌어당긴다. “아, 냄새 좋다!” 냄새를 맡고 또 맡는다. 냄새를 맡고 자꾸 맡는다. 얘들아, 이 여름 지나고 가을이 와서 다시 너희가 싹둑 베이더라도, 이듬해 여름에 또 이렇게 어여쁜 꽃잔치 베풀어 주렴. 언제나 씩씩하고 다부진 고운 빛으로 우리 마을에 꽃빛을 나누어 주렴.
- 집에 닿는다. 큰아이한테 대문 열어 달라고 말한다. 큰아이는 콩콩 달려간다. 대문을 연다. 착하고 예쁘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