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 원을 노리고
옆지기 람타학교 다니는 배움삯을 대고, 다가오는 시월에 옆지기 다시 미국 람타학교에 갈 돈을 마련하자는 뜻에서, 500만 원 상금이 걸린 어느 문학상에 시를 내려고, 그동안 몰래 쓴 시 가운데 네 가지를 뽑아 흰종이에 옮겨적는다. 마지막 한 가지로 어느 시를 옮겨적을까 갈팡질팡하다가, 그래 이 시를 옮겨적자 하고 생각하는데, 아이들이 아버지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마지막 한 장을 못 옮겨적고 아침과 낮이 흐른다. 우체국에 갈 겨를을 잃어버린다.
저녁이 되어 조금 조용한 틈을 타서 셈틀을 켠다. 종이에 옮겨적은 시를 타자로 쳐서 파일로 남겨야겠다 생각하며 수첩을 펼쳐 하나하나 옮기다가, 아차, 아까 옮겨적은 시 가운데 하나를 잘못 옮겨적었다고 깨닫는다. 그 시에서 두 줄을 빼먹고 안 옮겨적었다. 그 두 줄이 없으면 시로 옹글게 빛날 수 없는데 그만 두 줄을 안 옮겨적었다.
새근새근 달게 자는 아이들 바라보며 문득 생각한다. 이 아이들이 개구지게 놀지 않았으면 자전거 몰아 우체국에 갔을 테고, 이 아이들이 개구지게 놀았기에 우체국에 못 갔는데, 이 아이들은 무엇인가 마음으로 느꼈을까. 흰종이에 시를 다시 옮겨적는 일은 번거롭지만, 빠뜨린 두 줄을 새로 적어야 하니, 새 종이에 새롭게 적어야 한다. 아침에 그냥 우체국에 갔다면 내 마음은 어떠했을까. ‘빠뜨린 두 줄’을 뒤늦게 깨닫고는 ‘아차, 그 시꾸러미 보내면 안 되는데’ 하면서 아이고 소리가 나왔으면 땅을 얼마나 쳤을까. 시 다섯 꼭지는 500만 원을 노리고 쓰지 않았으나, 이 시 다섯 꼭지는 500만 원을, 또는 사랑을, 우리 식구한테 선물해 주리라 믿는다. 4346.9.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글쓰기 삶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