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22] 감 떨어지는 소리
― ‘집나무’ 바라는 마음

 


  아침 낮 저녁마다 지붕을 쿵 하고 때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뒤꼍 감나무에서 풋감 떨어지는 소리입니다. 풋감은 떨어져서 뒤꼍에서 천천히 썩습니다. 다 익고 나서 우리한테 맛난 밥을 주면 얼마나 고마우랴 생각하는데, 아마 다른 이웃집처럼 줄기가 위로 뻗지 않도록 끊고 잘라서 난쟁이로 만들면, 이렇게 감알 떨어지는 일은 드물 수 있겠지요. 사람이 먹자고 심은 감나무인 만큼, 먹는 데에 모두들 더 눈길을 두어요.


  나도 우리 집 뒤꼍 감나무를 바라보면서 한 해에 한 알이라도 우리한테 남길 수 있겠니 하고 물어 보곤 합니다. 집임자가 드러누워 감나무 가지치기를 못 했다 하고, 집임자가 저승나라로 간 지 오래되어 감나무는 그저 죽죽 뻗기만 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죽죽 잘 뻗은 감나무가 예쁩니다. 워낙 모든 나무는 이렇게 하늘바라기를 하면서 씩씩하게 자라니까요.


  우리 집 뽕나무도 모과나무도 모두 하늘바라기를 하며 자라기를 바랍니다. 우리 집 매화나무와 무화과나무도 이웃들이 우리 몰래 가지치기를 해 주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 나무들이 가장 나무답게 천천히 자라는 결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나는 이 나무들이 스스로 씩씩하게 가지를 뻗으며 우람하게 크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나무열매도 대수롭지만, 나무그늘도 대수롭습니다. 나무열매가 높은 데에 맺히면 사다리를 받치고 따면 돼요. 못 딸 만한 자리는 새밥으로 두면 돼요. 아이들이 커서 나무타기를 하며 열매를 딸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나는 아이들이 나무타기를 하며 열매를 딸 만한 우람한 나무를 바랍니다. 손을 뻗으면 닿는 데에 열매 주렁주렁 달리게 하는 난쟁이 나무 아닌, 햇볕과 바람과 빗물 실컷 누리면서 튼튼하게 자라는 나무를 바랍니다.


  지붕에 감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합니다. 올해에는 몇 알이 가을까지 남을까 궁금합니다. 뒤꼍 감나무가 기운을 되찾아 굵고 튼튼한 ‘집나무’ 되어 우리 식구한테 소담스러운 감알 베풀 이듬해(또는 그 다음해, 또는 그 다음 다음해)를 기다립니다. 4346.8.2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고흥집에 갓 들어와서 살던 무렵. 집 뒤꼍 감나무는 해롱해롱 많이 아프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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