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보이는 책

 


  발걸음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들꽃도 보이고 나무꽃도 보입니다. 잰걸음으로 스쳐서 지나가면 들꽃도 나무꽃도 안 보입니다. 자전거로 씽 하고 달리기만 할 적에도, 자가용으로 씽씽 하고 내달리기만 할 적에도, 들꽃이랑 나무꽃을 못 봅니다.


  멈출 때에 멧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멈출 때에 메뚜기 뜀박질과 방아깨비 방아질을 봅니다. 멈출 때에 하늘빛과 구름빛을 보고, 멈출 때에 빗소리를 듣습니다. 멈출 때에 골목집 담벼락 타고 오르는 덩굴풀에 피어난 조그마한 꽃을 봅니다. 멈출 때에 참새가 뿅뿅뿅 날 듯이 뛰는 모습을 봅니다. 멈출 때에 아이들 까르르 웃으면서 드러나는 앙증맞은 이를 봅니다. 멈출 때에 손에 책을 쥐어 읽습니다.


  그리고, 멈출 때에 비로소 헌책방 조그마한 책시렁에 꽂힌 책이 눈에 들어와, 책이름 하나하나 살피면서, 내 마음속으로 스며들 아름다운 책이 어디에 있는가 하고 알아챕니다. 멈추면 보이는 책이요, 멈추지 않으면 안 보이는 책입니다. 멈추면 책맛을 느끼고, 멈추지 않으면 책맛을 못 느낍니다. 멈추면 책빛이 드리운 결을 바라볼 수 있고, 멈추지 않으면 책빛이 드리운 결을 못 만납니다. 4346.8.1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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