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방제 대피하는 마음

 


  오늘 2013년 8월 12일과 13일은 우리 마을 논에 항공방제를 하는 날입니다. 오늘부터 금요일까지 우리 마을을 비롯해 고흥군 곳곳에 항공방제를 합니다. 이리하여, 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 한동안 고흥을 떠나기로 합니다. 항공방제는 친환경농약 뿌려서 벼멸구와 나방을 잡으려 한다는 일이라는데, 이 항공방제가 지나가고 나면 벼멸구와 나방도 죽을 테지만, 잠자리와 나비뿐 아니라 온갖 풀벌레가 모조리 죽습니다. 개구리도 죽고 제비도 죽습니다. 해오라기는 아예 자취를 감춥니다. 온 들판과 마을에서 아무런 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습니다. 항공방제가 지나간 시골은 ‘죽은 소리만 고요하게 퍼질’ 뿐입니다.


  사람을 뺀 모든 목숨이 죽어서 사라지는 일을 무섭게 느끼지 않는다면, 사람만 살아남고 다른 모든 목숨은 죽어도 된다고 여기는 짓을 끔찍하게 느끼지 않는다면, 사람은 스스로 사람됨을 내버리는 노릇이라고 봅니다.


  시골마을에 늙은 어르신만 있어 농약을 치기 어렵다 하지만, 늙은 어르신들은 늙은 몸으로 농약을 잘 치십니다. 항공방제가 아니어도 여느 때에 곳곳에 수없이 농약을 칩니다. 논둑에도 밭둑에도 길섶에도 온통 농약투성이입니다. 독재정권이 새마을운동 앞세워 시골마을 골골샅샅 풀지붕을 슬레트지붕으로 바꾸고, 온 나라 흙길을 시멘트길로 바꿀 무렵부터 길든 농약농사 버릇은 이제 쉰 해 마흔 해 동안 몸에 착 달라붙어 안 떨어집니다. 시골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할 적에 농약을 마시고 죽으면서, 정작 이 농약을 들과 숲에 뿌리면 사람들 몸이 어떻게 달라질는지를 조금도 헤아리지 않습니다. 그저 ‘사람 몸에 나쁘지 않을 만큼 뿌린다’고 할 뿐입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이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며 ‘하루빨리 시골 떠나 도시로 가는 길’만 배운 탓에, 시골에 늙은 할매 할배만 남았으니 어쩔 수 없을는지 모릅니다. 시골에서 늙은 할매 할배와 함께 흙을 만지며 아끼고 사랑할 어린이와 젊은이가 몽땅 사라졌다 할 만하니, 늙은 몸으로 농약을 만지며 흙을 죽이고 달달 볶을밖에 없을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늙은 몸이기에 농약만 써야 한다고 여겨, 흙을 죽이거나 망가뜨리면, 나중에라도 어린이와 젊은이가 시골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흙이 농약에 절디전 마당에, 비닐농사 지으며 밭마다 1미터 깊이까지 비닐쓰레기 파묻어 비닐쓰레기 넘치는 마당에, 어떤 도시 어린이와 젊은이가 시골이 좋다고 돌아올 수 있을까요? 시골을 아끼며 사랑할 젊은 일꾼이 시골로 찾아들기를 바란다면, 마을 어르신부터 군수와 공무원 모두 ‘흙을 살리고 살찌우는 길’을 북돋우면서 ‘숲을 지키고 돌보는 삶’을 가꾸어야 할 텐데요.


  오늘날 시골은 농약도 농약이지만, 밭자락에 몰래 함부로 파묻은 쓰레기가 그득그득합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고흥 시골마을 작은 집에 깃들었지만, 이 시골마을 작은 집에 와서 한 첫 일이란 밭에 파묻힌 쓰레기 캐내기였습니다. 우리 식구는 우리 밭에서만 1톤에 가까운 쓰레기를 캐내어 고흥쓰레기매립지로 옮겨야 했습니다. 쓰레기를 캐낸 밭은 아직 아무것도 심을 수 없습니다. 쓰레기냄새와 쓰레기물을 들풀이 걸러내고 씻어내기까지 앞으로 열 해쯤 기다려야겠지요. 여기에, 시골 어르신들은 비닐이나 농약병이나 플라스틱을 따로 가르지 않고 몽땅 그러모아서 ‘흙바닥 빈터’에서 태웁니다. 쓰레기를 태운 흙바닥 빈터는 마을마다 집집마다 있습니다.


  우리 시골에 언제부터 이처럼 쓰레기가 넘쳤을까요. 우리 시골에 언제부터 이렇게 ‘쓰레기농사’가 뿌리내렸을까요. 왜 농사짓기를 마친 논밭 둘레에 쓰레기가 잔뜩 굴러다녀야 할까요. 해마다 비닐쓰레기 어마어마하게 쏟아지는데, 이 비닐쓰레기는 누가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농약병과 농약봉지와 비료푸대와 막걸리병이 도랑이며 개울이며 밭둑이며 굴러다닙니다. 이것들은 누가 어디에 치워야 할까요.


  지난 7월 첫 항공방제 지나간 뒤부터 새벽멧새 노랫소리를 못 들으면서 새벽을 맞이합니다. 우리 집 풀밭에 깃들어 살아가는 풀벌레 몇몇 울음소리로 겨우 새벽을 느낍니다. 4346.8.1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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