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빛 책읽기

 


  얕은 골짝물에 엎드린다. 큰아이가 묻는다. “아버지 뭐 해요?” “응, 물결 봐.” 졸졸졸 돌돌돌 한결같이 흐르는 골짝물을 온몸으로 느낀다. 이윽고 골짝물에 드러눕는다. 팔깍지를 하고는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이 천천히 흩어지고, 하늘빛이 파랗다. 눈앞이 탁 트이며, 푸르게 빛나는 나뭇잎히 하늘과 곱게 어울린다고 느낀다. 이 빛은 눈을 뜬 이들이 누리는 선물이다. 앞을 보는 사람이기에 하늘을 맞아들일 수 있다.


  파랗게 눈부신 하늘은 우리한테 어떤 빛일까 생각한다. 파랗게 눈부신 하늘 밑에서 푸르게 자라는 풀과 나무는 우리한테 어떤 숨결일까 헤아린다. 싱그럽고 시원하게 흐르면서 가문 날이나 추운 날에도 한결같은 골짝물은 우리한테 어떤 내음일까 곱씹는다.


  골짝물에 드러누운 채 하늘빛을 사진으로 몇 장 옮긴다. 오래 쓰면서 낡은 내 사진기 안쪽에 낀 먼지가 사진에 나란히 찍힌다. 눈으로 보는 하늘에는 티끌도 먼지도 없지만, 낡은 사진기로 바라보는 하늘에는 티끌과 먼지가 함께 드러난다. 그래, 하늘에는 티끌도 먼지도 없다. 풀잎과 나뭇잎에도 티끌이나 먼지가 없다.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 눈에 티끌이랑 먼지가 있다. 풀과 나무를 살가이 마주하지 못하는 사람들 손에 티끌과 먼지가 있다.


  사진기를 물가에 내려놓고 다시 엎드린다. 고개를 골짝물에 박고 한 모금 두 모금 마신다. 흐르는 냇물이 가장 시원하다. 퐁퐁 솟아 흐르는 샘물이 가장 싱그럽다. 누구나 골짝물 마시고 샘물 들이켜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집과 마을과 나라가 맑게 빛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정치나 사회나 경제나 문화나 교육이나 과학이 아닌, 물과 햇볕과 흙과 바람과 풀과 나무를 맨 먼저 슬기롭게 살피며 헤아릴 때에, 비로소 삶이 아름답게 흐를 수 있으리라 느낀다. 아이들과 흙을 밟으면서 하늘을 누리고 냇물을 즐기는 날은 저절로 노래가 나온다. 4346.8.1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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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8-11 10:42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의 이 아름다운 마음글로
더위가 싹 물러가네요...^^

숲노래 2013-08-11 10:43   좋아요 0 | URL
오늘은 어제보다는 살짝 시원하면서 맑은 날 맞이하시기를 빌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