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농약 글쓰기

 


  ‘돈’이 따로 없던 지난날에는 누구나 ‘밥’을 얻으려고 흙을 일구었다. 도시가 아주 자그맣고, 자그마한 도시를 뺀 넓은 모든 곳이 시골이던 지난날에는, 누구나 스스로 ‘밥’을 즐겁게 누리려고 흙을 만졌다. 이때에는 농약이 없었을 뿐 아니라, 나 스스로 먹을 밥에 농약을 칠 바보란 없었다.


  ‘돈’이 나타나고 널리 퍼진 오늘날에는 몇몇 사람을 빼고 누구나 ‘돈’을 얻으려고 흙을 일군다. 오늘날 시골 흙일꾼 가운데 ‘밥’을 얻으려고 흙을 만지는 사람은 아주 드물고, 거의 모두 ‘돈’을 벌려고 흙을 만진다. 이리하여, 오늘날 시골 흙일꾼은 으레 농약을 치고 기계를 부린다. 내가 먹을 ‘밥’이 아닌 만큼, ‘돈’이 될 만한 상품이 되자면 겉보기에 굵직하고 때깔 좋으며 달달해야 한다.


  우리 집 부추밭에 모기들이 산다. 부추잎을 뜯자면 모기가 팔등과 손등과 얼굴에 달라붙는다. 그러나 이 모기를 손을 휘휘 저어 쫓기만 할 뿐, 모기약이건 살충제를 안 뿌린다. 왜냐하면, 부추잎은 내가 먹고 옆지기가 먹으며 아이들이 먹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밥’에 대고 살충제(농약)를 뿌리는 바보스러운 짓을 할 까닭이 없다.


  요즈음 들어 ‘친환경농업’을 내세운 곡식과 열매가 많다. 이들 ‘친환경농업 상품’은 ‘친환경농약’을 친다. 그리고, 이 ‘친환경농약’은 온갖 벌레를 죽이고, 벌레를 잡아먹는 개구리와 새를 죽인다. 다만, 벌레와 개구리와 새는 죽되 사람이 죽었다고는 하는 말이 없어, 친환경농약이건 여느 화학농약이건 그대로 쓰고 자꾸 쓴다.


  그러면, 친환경농업에서는 왜 농약을 쓰는가? 친환경이라 한다면 흙과 풀과 땅과 바람 모두를 살리는 농업이어야 하지 않는가? 왜 아무것도 안 살리고 친환경농업을 짓는다고 하는가? 바로 ‘돈’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스스로 먹을 ‘밥’이 아니라, 비싼값을 받아 내다팔 상품이 되어 ‘돈’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돈’을 바라보기에 농약을 쓴다. 상품 이름이 ‘친환경농업 곡식과 열매’이니 ‘친환경농약’이라면서 농약 이름까지 새로 붙인다. 도시사람은 어쨌든 ‘친환경’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마음을 놓고 돈을 치른다. 왜냐하면, 도시사람은 스스로 ‘밥’을 일구지 않고, 도시에서 돈만 벌기 때문이다. 도시사람은 돈을 치러서 밥을 사다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흙을 안 만지는 터라, 친환경농약이나 화학농약이 흙을 어떻게 망가뜨리고 숲과 들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살갗으로 못 느끼고 조금도 못 알아챈다. 시골과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그저 ‘돈을 더 치르’면서 ‘친환경’ 이름 붙은 곡식과 열매를 사다가 먹을 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돈’만 버는 도시사람이 ‘돈’만 바라는 시골사람을 만드는 노릇이다. 도시사람 스스로 텃밭을 마련하면서 푸성귀 몇 가지나마 스스로 길러서 먹는다면, 시골사람이 ‘돈’만 바라보면서 농약을 함부로 쓰는 굴레에 갇히도록 내몰지 않을 수 있다.


  생각해야 한다. 도시사람이 논까지 장만해서 쌀을 얻기는 힘들 테지. 도시사람이 능금나무 배나무 감나무 대추나무 하나하나 심을 땅을 얻어서 돌보기는 힘들 테지. 딸기 수박 참외 오이 토마토 배추 무 가지 연뿌리 들을 도시사람이 하나하나 길러서 먹기는 어렵다. 그러나, 스스로 기르기는 어렵다지만, 도시사람도 ‘돈’만 바라보지 않으면, 시골사람과 즐거이 어깨동무하는 길 열 수 있다.


  ‘돈’이 아닌 ‘삶’을 바라보면서, 시골과 몸소 1:1 직거래를 하면 된다. 1:1 직거래를 할 적에는 적어도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 한 해에 네 차례는 시골로 가서 품을 팔아야 한다. 제대로 직거래를 하겠다면, 달마다 한 차례는 시골로 가서 함께 일하고 함께 쉬며 함께 노래해야 한다. 철마다, 또는 달마다 시골숲 누리면서 시골일 함께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직거래를 할 만한 ‘자격’이 된다. ‘돈’만 내고 사다가 먹는 도시사람이라면, 시골사람은 너무 마땅히 농약을 칠밖에 없다.


  ‘돈’으로 뱃속 채우는 먹을거리 아닌, ‘밥’으로 삶을 북돋우는 먹을거리 바란다면, 도시사람은 대형마트에서 카트 밀며 자가용 짐칸에 잔뜩 먹을거리 실어서 나르는 쳇바퀴 아닌, 아름다운 시골마을 한 군데를 찾아서, 서로서로 돕고 아끼는 1:1 직거래, 이를테면 생활협동조합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먹는 ‘밥’이니 내 손길을 들여 내 땀을 쏟는다. 내가 ‘즐겁게 살아가고 싶은 꿈을 이루는 길’이기에 돈을 아름답게 벌면서 아름답게 쓰는 길을 헤아린다.


  글을 쓸 적도 이와 같다. 돈을 얻고자 쓰는 글은 글다울 수 없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에 글을 쓴다. 서로 즐거이 주고받으면서 생각을 북돋우며 사랑을 길어올리고 싶기에 글을 쓴다. 이리하여, 글이란 대학교 문예창작학과라든지 문예교실이나 글쓰기학원에서 가르칠 수 없다. 글은 ‘이야기’이니까, 스스로 누리는 ‘삶’에 따라 스스로 즐겁게 태어난다. 4346.8.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글쓰기 삶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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