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쌀

 


  1960년대를 휩쓴 독재정권 새마을운동은 이 나라 시골마을에 몇 가지 큰 발자국이자 생채기이자 앙금이자 응어리이자 수렁이자 굴레를 남겼다. 첫째, 슬레이트지붕과 시멘트논둑. 둘째, 농약농사와 비닐농사. 셋째, 시골을 버리고 도시로 떠나기. 넷째, 시골숲과 시골들과 시골마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와 기찻길 내며 외치는 경제발전.


  2010년대가 되어도 독재정권 새마을운동 깃발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요즈음 들어 더 힘차게 펄럭인다. 슬레이트지붕은 하나둘 철거하며 특수폐기물로 다룬다 하는데, 시멘트논둑에 이어 시멘트도랑이 생기고, 시멘트고샅이 되고 말았다. 마당도 온통 시멘트마당으로 바뀌었다. 농약농사는 줄어들 낌새가 안 보이고, 비닐농사는 아예 ‘커다란 비닐집 짓는 유기농’까지 생기는 흐름이다. 거름은 똥오줌으로 대더라도 햇볕과 바람과 빗물을 먹지 못하는 유기농은 얼마나 유기농답다고 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오늘날 시골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와 학제를 살피면, 하나같이 ‘도시사람 되기 교육’이고, ‘도시로 가서 일자리 찾으라는 수업’일 뿐이다. 곰곰이 살펴보라. 시골마을에 움튼 ‘농사꾼 가르치는 대학교’가 있는가. 새끼꼬끼, 씨뿌리기, 낫질, 낫갈기, 모시실뽑기, 베틀밟기, 물레잣기, 바느질, 지게질, 꼴베기, 두엄섞기. 볏짚엮기, 지붕잇기, 방아찧기, 절구찧기, 장작패기, 불때기, 나무하기, 나물캐기 같은 시골일 가르칠 만한 대학교 학과라든지 교수라든지 교과서는 아직 하나도 없다. 그리고, 지구자원 바닥난다 소리가 높지만, 새 자동차 만드는 일은 끊이지 않고, 새 찻길 닦는 일 또한 거침이 없다. 언제까지 이렇게 시골을 망가뜨리거나 무너뜨리거나 괴롭히면서 도시 문명 사회가 버틸 수 있을까.


  도시사람은 알까 모르겠는데, ‘친환경농약’을 뿌려서 멸구나 나방을 잡는다 할 적에는 잠자리도 거미도 나비도 벌도 모조리 죽는다. 벌레 잡는 ‘친환경농약’은 모든 벌레를 잡는다. 그리고, 멸구나 나방은 ‘친환경농약’에 차츰 길들면서 더 센 농약을 주지 않으면 잘 안 잡힌다. 이와 달리 잠자리나 거미나 나비나 벌은 ‘화학농약’에도 ‘친환경농약’에도 길들지 않는다. 그저 죽는다. 게아재비도 물방개도 미꾸라지도 그저 다 죽는다. 개구리도 도룡뇽도 가재도 개똥벌레도 싸그리 죽는다.


  고속철도 놓는다며 천성산에 굴을 뚫으면 도룡뇽이 죽을 뿐 아니라 삶터를 빼앗기니 이 공사를 막을 수밖에 없다며 맞선 지율 스님은 ‘도룡뇽 소송’을 했고, ‘도룡뇽을 생각하며 밥굶기 싸움’까지 했다.


  이때에 아주 많은 사람들은 ‘고작 도룡뇽 때문에?’ 하면서 비아냥거렸다. 도룡뇽 때문에 고속철도를 못 놓으면 경제손해가 어마어마하다고 외쳤다.


  도시사람은 아무 쌀이나 그냥 사다 먹기 일쑤이지만, 혼인을 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 몸에 아토피가 생길라치면 이때부터 아무 쌀이나 함부로 사다 먹이지 않고, 아무 소시지도 함부로 사다 먹이지 않으며, 아무 과자나 빵을 함부로 사다 먹이지 않는다. 아이가 아토피 걸려 벅벅 긁으며 피가 나는데 ‘가게에서 파는 여느 과자’ 사다 먹이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있을까? 아토피 걸려 얼굴에 벌겋게 우둘투둘 일어서는데 이 아이한테 ‘가게에서 파는 여느 케익’을 생일선물이라며 사다 주는 이모나 삼촌이 있을까?


  온 나라에 ‘화학농약’ 농사가 널리 퍼진 어느 때부터 ‘오리쌀’이 나온다. 오리농법으로 지은 쌀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메뚜기쌀’이 나온다. 설마 메뚜기농법이 있겠느냐만, 메뚜기가 죽지 않고 펄떡펄떡 뛸 만큼 깨끗하며 푸르다는 뜻을 내세우는 셈이다. 또 어느 시골에서는 ‘개구리쌀’이 나오기도 한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전남 고흥쯤 된다면, 아마 한국에서 ‘제비’가 가장 많이 날아다니며 집짓고 살아가는 데라 할 수도 있는데, 아직 전남 고흥에서는 ‘제비쌀’이나 ‘제비마을쌀’ 같은 이름을 쓰지 않는다. 아니, 이런 이름 섣불리 못 쓸 테지. 해마다 봄이 되면 수천 수만 마리에 이르는 제비가 전남 고흥으로 찾아들지만, 이 제비들은 가을이 되어 다시 태평양 너른 바다를 가로질러 중국 강남으로 가기 앞서까지 꽤 많이 숨을 거둔다. ‘친환경농약’은 멸구뿐 아니라 잠자리와 나비까지 모조리 죽인다. 항공방제 헬리콥터가 뿌린 ‘친환경농약’을 뒤집어쓰거나 마신 잠자리나 나비를 잡아먹은 제비는 뱃속이 뒤틀리다가 숨을 거둔다. 이러니, 어찌 ‘제비쌀’ 같은 이름을 섣불리 쓰겠는가. 마을마다 멸구 때문에 한창 농약을 치고 항공방제를 하는 요즈음, 고흥뿐 아니라 보성도 장흥도 강진도 영암도 해남도 거창도 상주도 문경도 양양도, 온통 제비들 숨막히고 배아파 죽을 노릇이다.


  ‘메뚜기쌀’ 이름을 붙인 시골에서는 참말 메뚜기가 펄떡펄떡 뛰놀까? 메뚜기 곁에 사마귀도 있을까? 사마귀 옆에 방아깨비도 있을까? 방아깨비 둘레에 풀무치나 개똥벌레나 땅강아지나 길앞잡이나 소금쟁이도 있을까?


  한 마디 덧붙이자면, ‘친환경농약’을 뿌려서 멸구나 나방을 잡는다 할 적에는, 매미도 나란히 죽는다. 나는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 이웃 여러 마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고샅이나 길바닥에 농약 맞고 죽은 온갖 풀벌레를 본다. 자동차에 치여 죽는 잠자리와 나비와 사마귀와 메뚜기와 개구리와 매미도 많지만, ‘친환경농약’이건 ‘화학농약’이건 온갖 농약을 뒤집어쓰며 죽는 잠자리와 나비와 사마귀와 메뚜기와 개구리와 매미도 많다.


  차에 치여 죽은 작은 새도 곧잘 만나기에, 자전거를 세워 살며시 손에 들어 풀숲에 놓아 주곤 한다. 이러면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아버지한테 묻는다. “아버지, 저 새, 꽃으로 다시 태어나?” “응, 다음 삶에서는 아름다운 들꽃으로 태어나서 환하게 웃으리라 생각해.” “그래? 새야, 작은 새야, 다음에 꽃으로 예쁘게 태어나? 그러면 내가 같이 놀아 줄게!”


  민주정권은 언제쯤 마주할 수 있을까. 민주와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농사와 행정과 교육과 문화는 언제쯤 이 나라에서 숨통을 틀 수 있을까. 우리 집 처마에 깃을 들인 ‘지난해에 새로 깨어난 제비’ 다섯 마리는 ‘지난가을 중국 강남으로 잘 갔다가 올봄에 씩씩하게 돌아왔는’데, 이 제비 다섯 마리는 봄에만 보았다. 여름으로 접어들어 마을마다 농약을 뿌릴 즈음 되고부터는 두 번 다시 보지 못했다. 4346.8.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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