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에 쓴 글을 문득 떠올려 다시 읽고는, 참 재미난 글 쓴 적 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그러고 보니 '등짐'이라는 이름으로 꼭 글 하나 써서, 사람들한테 이야기하고 싶었군요. '책'과 얽힌 일을 하는 사람들이 퍽 많아요. 등짐을 지며 책일 하는 사람 이야기는 아직 거의 어느 누구도 쓴 적이 없으리라 느낍니다. 등짐을 지면, 혼자서 네 시간쯤 들여 책 2만 권을 나를 수 있어요.

 

 

등짐

 


  지난 2006년 10월 어느 화요일, 내 어버이 이삿짐을 나르느라 오랜만에 등짐을 집니다. 책상자 하나를 밑에 깔고, 위에도 책이 잔뜩 담긴 바구니를 얹습니다. 책바구니를 혼자서 앞으로 안으며 들자면 허리가 너무 아프고 힘듭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등짐으로 들면 책상자 하나 더 나를 수 있고 허리도 덜 아픕니다. 함께 짐을 나르는 다른 분은 등짐을 안 집니다. 아마 힘들어서일 수 있고, 등짐을 져 보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도 예전에, 그러니까 어린 날과 젊은 날 무척 힘들게 살아오신 줄 압니다. 그렇지만 교감을 거쳐 교장이 된 이제는 딱히 힘들 일이 없다고 느낍니다. 몸으로는 말이지요. 그리하여 제 느낌으로는 일을 하실 줄 잊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더욱이 이삿짐 나르기는 거의 안 해 보셨겠지요. 문득, 2000년이었나, 언젠가 아버지가 제 살림집 이사할 때 도와주신 일이 떠오릅니다. 그때 제 방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책더미를 보며 “아유, 뭔 책이 이렇게 많아? 아유…” 하면서 진저지를 치셨습니다. 저는 이때 책꾸러미를 넷씩 날랐습니다. 왼겨드랑이와 오른겨드랑이에 책꾸러미를 하나씩 낀 뒤 왼손과 오른손으로 하나씩 들면서.

 

  바구니에 담긴 책은 끈으로 묶었으면 얼추 세 묶음. 이만한 책을 바구니에 담으면 하나만 따로 들기도 벅찹니다. 척 보아도 이삿짐을 안 날라 본 티가 납니다. 그동안 포장이사만 하셨으니, 이삿짐 꾸리는 법도 잊으셨겠네요.

 

  등짐을 나르는 동안 이마에 맺힌 땀이 방울이 져서 뚝뚝 떨어집니다. 아귀힘은 조금씩 풀리고 팔뚝이며 어깨가 뻐근합니다. 그래도 마지막 등짐까지 다 나릅니다. 지난날 출판사 영업부에서 일할 때 저한테 등짐을 가르쳐 준 배본회사 아저씨가 생각나네요. 도매상에서 전집상자를 전문으로 나르던 아저씨들도 생각나고요. 배본회사 아저씨는 젊은 나이에 그만 허리가 삐끗하고 말았는데, 힘으로 날라서 삐끗한 게 아니라, 꽤나 많은 책을 나르는 동안, 그 출판사 사람 가운데 어느 누구도 고개 한 번 내밀지 않고 안 도와주느라, 혼자서 낑낑대며 일을 하다가 계단에서 미끄러지며 삐끗했다고 들었습니다. 도매상 전집상자 짐꾼 아저씨는 쉰 줄이 넘은 듯했는데도 손수 만든 등지게에 상자 넷을 싣고 척척 거뜬히 날랐습니다. 이분들이 등짐을 나를 때 보면, 어느 누구도 서두르지 않고, 더 많이도 더 적게도 나르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같은 빠르기로 같은 무게 짐을 나를 뿐입니다. 자칫 힘으로 짐을 날랐다가는 얼마 나르지 못하고 몸이 다치거나 지쳐 버리니까요.

 

  자전거를 타고 충주에서 서울로, 또 서울에서 충주로 오가면서 생각해 봅니다. 처음에는 죽어라 달렸어요. 이렇게 죽어라 달리며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쉼없이 달렸어요. 그래, 이렇게 달려서 목적지에 닿으면 거의 뻗습니다. 그리곤 몸이 되살아나기까지 한 시간 남짓을 해롱해롱 한숨만 들이켜면서 쉬지요. 요새는 죽어라 달리지 않습니다. 때때로 발판을 힘껏 밟기도 하지만, 몸에 어느 만큼 땀이 나야 달리기도 덜 고단하고 꾸준하게 달릴 수 있기 때문이에요. 머지않아 겨울이 다가오는데, 겨울철에는 땀이 식지 않도록 알맞게 달려야 합니다. 땀이 식으면 추워서 못 달려요. 백오십 킬로미터쯤 되는 길을 한나절 동안 달리자면 그야말로 처음과 끝이 똑같을 만큼 꾸준하게 달려야 합니다.

 

  예전에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쓸 때면, 서너 시간이고 대여섯 시간이고 거의 꼼짝도 않고 기계처럼 글을 써댔습니다. 참 엄청나게 많이 썼어요. 요새는 한두 시간 앉아서 쓰면 참 오래 쓰는 셈인데, 어느 만큼 쓴 뒤 자리에서 일어나 바람도 쐬고 설거지나 청소나 책 갈무리를 합니다. 살짝 드러누워 허리를 펴기도 하고, 책도 읽습니다. 가끔 자전거 타고 이웃마을에 나들이를 가기도 합니다. 돌이켜보면, 글쓰기를 할 때 한 자리에서 꿈쩍 않고 밀어붙이듯 글을 쓰면 훨씬 많이 쓸 수는 있지만, 나중에 다시 보면 썩 내키지 않는 글이 꽤 보입니다. 이와 달리, 쓰는 틈틈이 쉬고 한숨을 돌린 뒤 다시 글을 되짚으면서 차근차근 쓰노라면, 시간이 제법 지난 다음 다시 보아도 그럭저럭 마음에 들곤 해요.

 

  모처럼 등짐을 져서 그런지, 어제 하루는 거의 누워 지내다시피 했어요. 글을 쓰건 책을 읽건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참 힘들었습니다. 누워 있어도 등허리가 쑤셨고요. 하루 더 지난 오늘은 퍽 나아졌습니다. 하루 더 가면 거의 다 풀리겠지요. 4339.10.19.나무/4346.8.4.손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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