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못 개는 빨래

 


  어릴 적에 어머니 곁에서 빨래를 으레 개곤 했다. 어머니는 내가 빨래를 갤 적에 고맙다는 말씀을 늘 하셨다. 어느 때에는 당신이 나중에 개면 되니 그대로 두라 하셨지만, 어머니 집일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면, 도무지 언제 저 빨래를 갤 수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아마 식구들 모두 잠들고 나서 깊은 밤에서야 갠다는 뜻이었으리라.


  빨래를 다 마친 옷가지 개는 일은 하나도 안 힘들다. 10분쯤 말미를 내면 정갈하고 예쁘게 갤 만하다. 그런데, 집안일 가운데 10분 말미를 따로 못 빼기 일쑤이다. 이럭저럭 집안일 다 했구나 싶으며 등허리를 펼라치면 이때서야 ‘미처 못 갠 빨래’가 보인다. 빨래는 손으로 비비고 헹구어 다 한 다음 마당에 해바라기 시켜 보송보송 잘 말려 놓고는, 정작 곱게 개어 제자리에 두어야 할 몫은 뒤로 미룬다.


  집에서 한손 거드는 몫이란 아주 크다. 설거지를 조금이나마 거든다든지, 밥상에 수저를 놓는다든지, 다 먹은 빈 그릇 치운다든지 하는 한손조차 큰 손이 된다. 밥상 밑을 걸레로 한 번 훔쳐 준다든지, 마루와 방바닥을 슬쩍 비질을 하거나 걸레질 하는 손길도 대단히 반가운 일손이다.


  내 어머니는 내가 가시내로 태어나기를 바라셨을까. 나는 가시내로 태어났으면 집일을 어떻게 건사하며 살았을까. 4346.7.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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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7-27 07:43   좋아요 0 | URL
저도 아이들이 먹고 난 밥그릇을 싱크대에 갖다놓으면
그 마음이 너무 예뻐 "고맙다~!" 얘기합니다.
오늘은 마음을 곱게 개듯...빨래를 개야겠어요..^^

숲노래 2013-07-27 11:06   좋아요 0 | URL
빨래는 마음을 곱게 빨고
갤 적에는 마음을 곱게 개는데
늘 뒤엣일을 미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