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책, 비싼 책

 


  값이 너무 비싸다 싶은 책이 있으면 선뜻 손이 안 가기도 하지만, 값이 너무 싸다 싶은 책이 있으면 또 선뜻 손이 안 가곤 합니다. 내 주머니가 그닥 넉넉하지 못해 값이 너무 비싸구나 싶으면 선뜻 장만하지 못한다 할 텐데, 값이 너무 싸다 싶은 책한테도 손길이 안 가요. 값이 아주 싸다면 ‘같은 돈’으로 더 많이 장만할 수 있을 테지만, 마음이 안 움직입니다.


  장만하고 싶은 사진책이 있습니다. 이 사진책 내놓은 분은 ‘고인돌’을 찍었습니다. 참 좋은 ‘삶과 사람과 사진 이야기’ 들려주리라 생각하며 이 사진책 장만할 꿈을 키우는데, 따로 주문을 받아 사진작가가 손수 원판 사진을 묶어서 팝니다. 이 책은 첫 ‘수제본’은 100만 원이었다 하고, 이내 150만 원이 되었다가, 요즈음은 300만 원쯤 치러야 살 수 있는 듯합니다. 머잖아 500만 원이 넘을 수 있어요. 원판 사진에다가 손수 묶는 아름다운 책이니 틀림없이 ‘소장 값어치’가 있는 사진책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10만 원이나 15만 원 즈음, 또는 5만 원이나 7만 원 즈음으로 여느 사람들도 구경할 수 있는 사진책이 나올 수는 없는지 궁금해요. 사진을 좋아하고, 삶을 사랑하며,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들한테는 좀처럼 다가서기 어려운 값이기 때문입니다.


  헌책방에서 500원이나 1000원 값 붙여서 내놓는 책은 손쉽게 장만할까 헤아려 봅니다. 인터넷책방에서 500원이나 1000원 값 붙여서 판다는 책은 누구나 장만할 만한지 생각해 봅니다.


  나는 500만 원짜리 사진책을 장만할 엄두를 못 내기도 하지만, 500원짜리 값싼 책 또한 장만할 생각을 품지 않습니다. 아주 작고 얇으며 가벼운 책이라면, 헌책으로서 500원이나 1000원이 될 수도 있지만, 200∼300쪽 즈음 되는 여느 판짜임 책이라 할 때에는 헌책방에서도 3000∼4000원은 받아야 마땅하고, 요즈음 물건값을 살피면 5000∼6000원을 받을 수 있다고 느껴요. 제아무리 아름다운 이야기 담은 책이라 하더라도 지나치게 깎아내린 값은 달갑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쓴 사람’한테 지나치게 깎아내린 책값이 도움이 될까요?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책을 펴낸 사람한테 이런 터무니없는 싼값이 이바지할 수 있을까요?


  시골에서는 텃밭에서 무 한 뿌리 배추 한 포기 거저로 내어주곤 합니다. 굳이 돈으로 따져서 건네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저로 선물할 수 있다 해서 무 한 뿌리나 배추 한 포기에 500원이나 1000원을 받을 수 없어요. 제값을 받아야지요.


  책선물은 얼마든지 반갑지만, 선물 아닌 책을 500원이나 1000원에 사고팔도록 한다면, 또는 다른 책하고 견주어 너무 깎아내린 값으로 다룬다면, 이때에는 책이 무엇이 될까요.


  그저 많이 읽히면 되나요. 그저 많이 사들이도록 북돋우면 되나요.


  《위대한 개츠비》라고 하는 소설책 하나를 새책으로 펴낸 커다란 출판사마다 50% 에누리라느니 51% 에누리라느니 66% 에누리라느니 58% 에누리라느니를 하면서 2900원에, 3920원에, 4750원에, 4000원에, 5390원에 팝니다. 갓 나온 책조차 10% 에누리 아닌 40%, 아니 50% 훨씬 넘는 에누리로 사고팔립니다. 헌책 아닌 새책을 이렇게 팔고, 이렇게 파는 책이 아주 불티나게 팔립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책’ 아닌 ‘싸구려 물건’을 사들입니다.


  싸구려 물건 사들인다 하더라도 ‘아름답게’ 읽으면 아름다운 이야기를 가슴속에 품겠지요. 비싸게 사든 값싸게 사든, 읽는 이 스스로 즐겁게 읽으면 즐거운 빛이 마음속에서 환하게 샘솟겠지요.


  그런데 궁금합니다. 우리가 읽을 아름다운 이야기는 이렇게 마구잡이로 깎아내리는 책에서만 얻을까요. 우리는 언제부터 아름다운 이야기를 이토록 함부로 깎아내려서 사고팔아야 하나요. 게다가 3000∼5000원 사이로 파는 이 책들을 사면 다른 새책을 한두 권씩 끼워서 주고, 다른 선물까지 덤으로 안깁니다. 새책 한 권이 천 원조차 안 되는 꼴입니다.


  책값은 비쌀 수 있고 쌀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스스로 읽고픈 책을 사면 될 노릇입니다. 비싸다고 하면, 푼푼이 돈을 모아서 장만하면 되고, 값싸다 싶으면 여러 권 장만해서 이웃한테 선물할 수 있어요. 부디 책이 책답게 되도록 책마을 일꾼이 땀을 쏟기를 빕니다. 책방지기가 맑은 웃음 지으며 따순 손길로 아름다운 책을 사람들한테 보여줄 수 있기를 빕니다. 책으로 삶을 읽으려는 사람들 마음속에 좋은 이야기가 흐르도록 이끄는 책을 즐겁게 만날 수 있기를 빕니다. 4346.7.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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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3-07-04 21:31   좋아요 0 | URL
출판사 스스로가 저처럼 책 세일을 하고 있으니 책 읽는 이들이 내가 사는 책이 과연 거품이 없나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단 생각이 드네요.그러니 정가에 책을 사지 않는 이들이 많아지고 결국 세일해야만 팔리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숲노래 2013-07-04 23:12   좋아요 0 | URL
네. 이번 개츠비 책들은...
사재기 출판사 문제보다 훨씬 크고 나쁜 문제를
일으키는구나 싶은데에도...
'독자가 바란다'는 말도 안 되는 구실을 붙여
앞으로도 오래도록 이 터무니없는 깎아팔기가... 이어질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