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 글쓰기

 


  동시집 하나를 읽고 나서 곧바로 비평글을 쓴다. 참 잘 되었구나 싶은 작품이 있지만, 가벼운 말놀이에 그친 작품이 훨씬 많다고 느낀다. 동시를 쓴 분이 어린이 눈높이로 잘 살피며 알뜰살뜰 글을 썼구나 싶지만, 동시란 어린이 눈높이가 된대서 쓸 수 있지 않다. 무슨 말인가 하면, 어린이가 쓰는 ‘어린이 글’이라고 해서 모두 읽을 만하지 않다. 비뚤어진 입시지옥에 길들여지고 텔레비전에 사로잡힌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쓰는 글은 ‘비록 어린이가 쓴 글’이라 하더라도 비뚤어진 생각으로 살아가는 어른들이 쓰는 ‘슬픈 글’하고 똑같다.


  곧, 동시를 쓰려 한다면, 어린이 눈높이가 되어야 할 뿐 아니라, 어린이가 살아가고 싶은 지구별이 어떠할 때에 즐거울까 하는 생각을 갖추어야 한다. 어린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요, 어린이가 어떤 놀이를 좋아하는가를 어른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어린이하고 함께 뛰노는 마음일 뿐 아니라, 어린이가 신나게 뛰어놀 만한 터전을 마련하도록 ‘사회에서도 마을에서도 집에서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는 한편, 집안일도 웬만큼 맡아서 할 줄 알아야 하고, 하루 동안 아이들과 퍽 오랫동안 보내면서 아이들 삶을 지켜보고, 글쓴이(어른)가 어릴 적에는 어떻게 놀고 뛰며 지냈는가를 되새길 수 있어야 한다.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났다고 해서 동시를 잘 쓰지 않는다. 시골에서 살거나 도시에서 살거나 대수롭지 않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든, 마음가짐을 슬기롭게 갖추고, 마음씨를 착하게 다스리며, 마음결이 올바른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동시집 하나를 놓고 쓴 비평글이 좀 따가운가 싶어 미안하다. 그러나, 이렇게 쓰지 않을 수 없다. 동시를 쓰는 어른들이 깨우치고 느끼며 생각할 것이 참 많다. 아이들이 뛰놀 홀가분한 자리 하나 마련하지 않고서, 아이들이 숨막혀 허덕이는데, ‘아이들이 숨막혀 허덕이는 모습’만 어린이 눈높이로 바라본대서 동시가 될 수 없다. 이 숨막히는 골을 파헤치고 아름다운 숲이 되도록 무언가 애쓰면서 새로운 꿈을 동시에 담아야 비로소 글이요 문학이며 삶과 사랑이 된다고 생각한다. 비평글 쓰면서 자꾸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우리 어린이문학이 어떤 모습인가를 어른들이 잘 깨닫기를 바랄 뿐이다. 4346.7.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글쓰기 삶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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