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색잉꼬 6
테츠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252

 


즐겁게 살아가려는 꿈
― 칠색잉꼬 6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도영명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2012.6.25./9000원

 


  저녁 늦게 잠든 아이들이 새벽 일찍 깹니다. 좀 느긋하게 자다가 일어나면 좋으련만, 늦게 자도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도 일찍 일어나요.


  새벽바람으로 일어난 아이들 쉬를 누이며 생각합니다. 나도 이 아이들만 한 어릴 적에는 이렇게 일찍 일어나 버릇했어요. 잠자리에 들 무렵에는 ‘더 놀지 못해’ 아쉬움을 달랬고, 새 하루가 찾아오면 벌떡 일어나 ‘더 놀려’고 애씁니다. 그런 어린 나날 보낸 내 발자국을 돌아보노라니, 우리 아이들 새벽바람으로 일어나서 놀려고 하는 몸짓을 나무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몸이 고단하다면 천천히 놀면서 몸을 깨우겠지요. 슬렁슬렁 놀고 뛰며 차츰차츰 기운을 찾으리라 느껴요.


  겨울이라면 해가 느즈막히 뜨니까 여덟 시나 아홉 시까지 이렁저렁 재울 수 있는데, 여름에는 네 시부터 동이 트니까, 아이들이 네 시 반 즈음 눈을 뜨면 ‘벌써 아침이 된’ 줄 생각합니다. 여섯 살 세 살 아이들은 아직 시계를 못 보고, 시간을 안 읽습니다.


- “이걸 먹여라.” “하지만 오오이시 님, 무사에겐 자비란 게 있습니다냥.” “인간에게 자비 따윈 소용없다냥!” (9쪽)
- “인간은 누구라도 면목이니 사회적 체면이니 하는 걸 신경 쓰느라 본심을 감추지. 남 앞에서는 마음에도 없는 있어 보이는 말을 하지. 즉 연극 같은 걸 하고 있는 셈이야. 그렇고 말고! 인간은 매일 연극을 하고 있는 거지! 하지만 때론 연극을 하는 중이란 걸 잊어버리고 원래 있는 마음을 드러내곤 하지. 그게 바로 본심이란 거야. 자, 잉꼬. 너도 슬슬 본심을 드러내는 게 어때?” (38∼39쪽)

 


  엊저녁에 불린 쌀을 헹구어 냄비로 옮깁니다. 두 아이와 어른 한 사람 먹을 몫을 끓입니다. 오늘은 달걀을 삶기로 하고 넉 알을 끓입니다. 이다음으로는 국거리를 송송 썰어 작은 냄비에 넣고는 물을 부어 불을 넣습니다. 날무를 가늘게 썹니다. 곤약은 무보다 조금 두껍게 썰어서 한 접시에 담습니다. 이렇게 한 뒤에 마당에서 풀을 뜯어 새 접시에 살포시 얹어야지요.


  아이들이 일찍 일어나 놀기에 아침도 일찍 차립니다. 아이들이 늦게 일어나면 아침을 늦게 차려요. 언제나 아이들한테 맞추어 밥을 마련합니다.


  생각해 보면, 아이 있는 집에서는 아이한테 맞춥니다. 늙은 어르신 있는 집에서는 늙은 어르신한테 맞추겠지요. 곧, 어린이와 늙은이한테 맞추어 삶을 움직입니다. 어린이와 늙은이가 맛나게 먹을 것을 살펴 밥을 차려요.


  어디 마실을 가더라도 어린이와 늙은이를 맨 먼저 살핍니다. 젊은이를 살피지 않습니다. 젊은이는 어린이와 늙은이를 곁에서 모십니다. 그런데, 시골에서도 군내버스를 탄다든지 시외버스를 타면 늘 ‘어린이’나 ‘늙은이’ 아닌 ‘젊은이’한테 맞춥니다. 또, 늙은 사람한테 맞춘다 하더라도 어린 사람까지 살피지 못해요. 이를테면, 어르신들이 라디오를 듣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싶다 하더라도, 어린이들 생각해서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끌 줄 알아야 해요. 어른들이 ‘치고 박고 다투고 싸우는 영화나 연속극’을 보고 싶다 하더라도, 버스에 아이들 탔으면 그런 텔레비전 영화와 연속극은 바로 끌 줄 알아야 합니다.


  어른들이 고춧가루 듬뿍 친 해장국이나 설렁탕을 먹고 싶다 하더라도 이런 국을 아이들한테 먹일 수 없어요. 어른들은 냉면도 먹고 뭣도 먹는다지만, 아이들한테 이런 먹을거리를 함부로 먹일 수 없습니다. 어른들이 술을 마신대서 아이들한테 술을 먹일 수 없지요.


- “당신을 위해서 하는 소리야. 오늘 붙잡히면 당신의 경력도 끝장나는 거라고. 얌전히 연극을 포기하고 도망치는 게 좋을걸.” … “무슨 바보 같은 소릴. 난 배우야! 난 연기를 하고 싶다고. 아마도 넌, 무대에 설 때의 그 기분을 모르겠지.” “초등학교 때 학예회에서 무대에 선 적이 있어.” “여길 봐! 여기가 무대야. 객석 쪽은 컴컴해서 마치 큰 바다의 물결 앞에 서 있는 것같이 보이지! 라이트는 별의 빛처럼. 관객이 웅성거리는 소리는 파도소리처럼 느껴져. 무대는 말 그대로 다른 차원의 세계에 있는 해변이야! 여기에 서면 자신은 다른 차원의 세계에 있는 다른 인간이 될 수가 있어. 그리고, 다른 인생이 펼쳐지면서 마치 최면술에 걸린 것마냥 객석의 어둠과 천정과 바닥이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로 보이게 된다고!” (80, 82∼83쪽)

 

 


  오늘날 아이들은 잘 놀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느긋하고 한갓지며 걱정없이 놀 만한 빈터가 거의 없어요. 아파트 놀이터라 하더라도 자가용 쉴새없이 드나들며 시끄럽고 어지러워요. 아파트 놀이터에서 만질 만한 흙이나 모래가 없기 일쑤요, 햇볕 듬뿍 쬐거나 나무그늘에서 쉴 터를 제대로 마련한 데는 드물어요.


  그러면, 왜 아이들한테 놀이터를 마련해 주지 못할까요? 어른들부터 놀 줄 몰라서 이와 같지 않을까요? 어른들 스스로 놀지 않으니, 아이들 놀릴 생각을 못 하지는 않나요?


  어른들 스스로 나무그늘 누리면서 모래밭이나 흙땅에서 뒹구는 놀이를 즐겨야, 비로소 아이들도 이런 데에서 놀 때에 즐거운 줄 깨닫습니다. 어른들 스스로 어릴 적부터 모래밭이나 흙땅에서 뒹굴며 놀았어야, 아파트를 짓건 학교를 짓건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자리를 마련해요.


  시험공부 잘 하던 사람들이 교사가 되기보다는, 잘 놀고 잘 뛰며 잘 웃던 아이들이 교사가 되어야 ‘아이들을 슬기롭고 사랑스레’ 가르칩니다. 학교성적 뛰어난 사람들이 교육감이 되거나 장학사가 된대서 교육행정 잘 꾸리지 않습니다. 잘 놀고 잘 뛰며 잘 웃던 아이들이 교육감도 되고 장학사가 되어야지요.


  그러니까,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시장도, 군수도, 의사도, 간호사도, 박사도, 학사도, 판사도, 검사도, 뭣도 뭣도 모두 어린 나날 신나게 놀고 개구지게 뛰며 함박꽃처럼 웃던 아이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놀지 않던 아이가 대통령이 되면 이 나라를 엉터리로 윽박지르겠지요.


- “난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하고, 반드시 관객을 감동시키지. 그렇기에 감동에 대한 대가를 관객으로부터 받는 거야. 그게 잘못인가? 옛날 광대들은 손님들이 던지는 돈을 받아 살아왔어. 부자는 금화를 뿌렸고, 가난한 사람은 돈을 내지 않았어. 그걸로 충분해! 일반 관객들로부터는 돈 받을 생각을 하지 않지.” (84쪽)
- “보기 좋은걸. 사는 보람이 있는 사람은. 아까 당신이 무대에서 들려준 얘기. 계속 생각해 보니 점점 부러워졌어. 당신도 그 여자도 사는 보람을 느끼고 있더군. 좋겠어.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어서.” “너한테도 하고 싶은 건 있을 텐데?” “없어. 그딴 건.” “있다면 스케반 노릇 따위를 할 것 같아?” (110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칠색잉꼬》(학산문화사,2012) 여섯째 권을 읽습니다. 《칠색잉꼬》 여섯째 권에서는 ‘즐겁게 살아가는 길’이란 무엇일까 하고 이야기합니다. 즐거움이란 내가 스스로 찾는지, 다른 사람이 챙겨 줄 수 있는지, 차근차근 짚습니다.


  스스로 즐거운 삶으로 나아가지 않을 때에 나한테 즐거움이 깃들까요. 스스로 안 즐거운 삶으로 치닫는데 나한테 즐거움이 선물처럼 떨어질까요.


  사람들은 ‘다른 나’를 찾아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조용히 생각에 잠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나’란 처음부터 없습니다. 모든 모습이 나 그대로입니다. 좋거나 싫은 모습이란 없고, 반갑거나 못마땅한 삶이란 없어요.


  아이가 하나라서 서운할 까닭 없고, 아이가 넷이라서 벅찰 까닭 없습니다. 아이가 없으니 홀가분할 까닭 없고, 아이가 없어서 쓸쓸할 까닭 없어요. 즐거움도 슬픔도, 서운함도 고단함도, 홀가분함도 쓸쓸함도, 사랑도 미움도, 언제나 스스로 불러들입니다. 스스로 마음속에서 이 모든 모습을 길어올려요.


- “제자가 될 수 있다면 어떤 고생이든지 하겠어요.” “멍청한 녀석! 농사일의 어려움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친 겁쟁이가, 무슨 고생을 견대낼 수 있다는 거지?” “난 농사일이 맞지 않아요! 샤쿠지이 씨를 존경하고 있어요. 샤쿠지이 씨처럼 되고 싶다고요.” “이 바보 자식. 알겠나, 잘 들어. 우선 한 사람 몫의 훌륭한 농부가 되어 봐. 그러면 같은 남자로서 만나 주지. 도중에 포기하고 뛰쳐나오기라도 한다면 넌 남자도 아닐 뿐더러 인간쓰레기일 뿐이야!” (160∼161쪽)
- “오늘 밤은 달도 아름답겠군. 춤을 하나 선보이도록 하지요. 라모나, 준비를.” … “어땠소.” “브라보, 굉장합니다. 도중에는 어째선지 마치 동물로 보이더군요.” “동물로 보였다고? 방금 건 동물의 춤이오. 동물 역을 하고 있던 게 아니라 동물 그 자체가 된 거요. 이 나무 위에 집이 있는 건, 조금이라도 새나 동물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지. 동물만이 아니오! 바람도, 불도, 물로도 될 수 있소! 자연을 보시오. 모든 것에 리듬이 있소. 짐승도, 새도, 물고기도, 나무도, 풀도, 바람이나 불도 다들 리듬이 있고 춤추듯이 보이는 법이오. 나는 거기서 배운 거요.” (191, 193∼194쪽)

 


  즐겁고 싶으면 즐겁게 살자고 꿈을 꿀 노릇입니다. 즐겁게 살자고 꿈을 꾸면서, 이 꿈을 이루자면 내 마음과 삶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를 생각할 노릇입니다. 내가 이루고 싶은 즐거운 삶을 바라보면서 차근차근 한 걸음씩 내딛을 노릇입니다.


  야구선수가 되고 싶든 가수가 되고 싶든 늘 같아요. 차근차근 몸가짐을 추스르고 마음씨를 다독이며 솜씨를 키울 노릇입니다. 하루아침에 짠 하고 나타나는 야구선수나 가수가 아니라, 오래도록 내 삶으로 누릴 빛을 헤아리면서 꾸준하게 나아갈 노릇이에요. 좋아하는 빛대로 살아가도록 생각을 거듭하고 땀을 흘려야지요.


- “자, 어디든 가거라! 인간이 없는 곳으로.” (138쪽)


  그런데 우리 살아가는 이 지구별에서 사람들이 자꾸자꾸 꿈을 잃습니다. 아니, 오늘 이 지구별에서는 사람들이 자꾸자꾸 꿈하고 멀어집니다. 누가 몰아내거나 밀어냈기에 멀어지지 않아요. 스스로 멀어져요.


  사람들 스스로 숲하고 동떨어지면서 꿈하고 동떨어집니다. 사람들 스스로 나무하고 사귀지 않으면서 꿈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사람들 스스로 꽃과 인사를 못 나누고 풀하고 노래하지 못하면서, 자꾸자꾸 사람들 스스로 말을 잃고 노래를 잊어요.


  사람이 사는 곳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지만, 사람만 있고서야 사람조차 살지 못해요. 범이 살거나 여우가 사는 곳을 생각해 봐요. 범이 사는 멧골에는 범만 살지 않아요. 여우가 사는 둘레에도 여우만 살지 않아요. 온갖 짐승이 서로 얼크러집니다. 숱한 풀과 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랍니다.


  곰도 토끼도 다람쥐도 뱀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곰만 있대서야 곰조차 살지 못해요. 토끼만 우글거린다면 토끼들 모두 죽어요. 너른 흙땅, 곧 들판과 숲과 멧자락이 있어야 합니다. 냇물이 흐르고 바다가 있으며 모래밭이 펼쳐져야지요.


  사람들은 사람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도시를 세웁니다. 이 도시에는 숲도 들도 흙도 없습니다. 나무는 모양만 있는 시늉으로 처박습니다. 아끼고 돌보며 누리는 나무가 아니라 돈으로 처박아 나뭇가지 아무렇게나 휘어 놓는 나무예요. 이러다 보니, 도시는 커지면 커질수록 사람다움을 잃습니다. 도시에서는 사람빛이 환하지 않아요. 도시에서는 사람빛이 어둡습니다. 사람들만 있는 도시에서는 빛도 사랑도 꿈도 자라지 못해요. 입으로는 사랑을 노래하는 듯하지만, 참답거나 착하거나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라, 남녀가 몸을 더듬는 노닥거리만 읊어요.


  삶이 없으니 사랑이 없어요. 사랑이 없으니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고, 사람이 사람답지 못한 터라 말이 말답지 않고, 꿈도 이야기도 샘솟지 못합니다.


  청둥오리가 하늘을 날아야지요. 해오라기가 다리쉼을 할 수 있어야지요. 개구리와 뱀이 서로 얼크러져야지요. 도룡뇽도 가재도 마음껏 도랑에서 놀아야지요. 다슬기와 개똥벌레가 사이좋게 어깨동무해야지요. 사람 아닌 수많은 목숨들이 깃들 때에 도시이건 시골이건 ‘사람이 살 만한’ 터전이 됩니다. 사람과 함께 숱한 숨결이 곱게 바람을 마시고 햇살을 누릴 때에 ‘사람이 사랑스레 살 만한’ 보금자리가 되어요. 삶터도 보금자리도 마땅하지 않다면, 즐겁게 빛낼 삶은 그예 숨죽입니다. 4346.7.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만화책 즐겨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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