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글쓰기 2
글을 쓰는 사람은 이녁 삶을 쓴다. 글을 읽는 사람은 이녁 글을 읽는다. 이녁 삶 아닌 이야기를 글로 쓰지 못하고, 이녁 삶 아닌 모습을 글에서 읽어내지 못한다.
어떻게 살아왔는가는 대수롭지 않다. 이렇게 살아왔기에 더 놀라운 글을 쓰지 않는다. 저렇게 살아온 터라 더 어수룩한 글을 내놓지 않는다. 어떤 삶을 꾸리며 하루하루 누렸다 하더라도, 이녁 삶을 얼마나 오롯이 드러내면서 사랑하는가를 밝히는가에 따라 글이 달라진다. 곧, 잘 쓰는 글과 못 쓰는 글이란 없다. 삶을 밝히는 글만 있고, 삶을 노래하는 책읽기만 있다.
그런데 적잖은 사람들이 이녁 삶을 담지 않는 글을 쓰려고 애쓴다. 더 많은 사람들은 이녁 삶을 읽지 않고서 책만 손에 쥐려 한다. 글을 쓰는 사람도 이녁 삶하고 멀어지고, 글을 읽는 사람도 이녁 삶하고 자꾸 등을 돌린다. 이렇게 되면 글도 책도 수렁에 빠진다.
매화나무 열매가 어떤 맛인가를 스스로 느끼지 않고 글을 쓸 때에, 살구나무 열매가 어떤 맛인가를 스스로 느끼지 않고 글을 읽을 때에, 삶은 그예 껍데기로 치닫는다. 가난이 어떠한가를 스스로 겪지 않고 글을 쓸 적에, 돈이 많은 삶이 어떠한가를 스스로 겪지 않고 글을 읽을 적에, 삶은 그저 겉치레로 흐르고 만다.
모르는 이야기라면 써서도 안 되고 읽어서도 안 된다. 아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글로 쓰고 책으로 읽는다. 모르는 이야기이기에 알려고 애쓰면서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내고, 몸으로 부대끼어 살아낸 뒤에라야 비로소 글을 쓴다. 그리고, 책을 읽는 사람도 이녁 스스로 모르는 이야기라면 알아차리지 못한다. 통독을 하든 정독을 하든 책을 알아차릴 수 없다. 삶이 없고서 책만 손에 쥔다면 아무것도 못 느낀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는 아무것 아니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는 아무것도 아니다. 글을 쓰고 싶으면 삶을 일구면 넉넉하다. 글을 읽고 싶으면 삶을 사랑하면 된다. 삶으로 글을 쓰고, 삶으로 글을 읽는다. 삶으로 밭을 일구고, 삶으로 가을걷이를 한다. 삶으로 아이를 낳고, 삶으로 아이들을 돌본다. 삶으로 노래를 부르고, 삶으로 밥을 차린다. 삶으로 비질을 하고, 삶으로 천천히 마을길 걷는다.
몸으로 움직이지 않고서 걷는 기쁨을 알 수 없듯, 몸으로 움직이지 않는데 글로 쓰지 못한다. 밥을 먹지 않고서 밥맛을 알지 못하듯, 밥을 먹는 즐거움 그대로 글을 읽는 즐거움을 몸으로 깊이 헤아린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대학교나 문화강좌로 찾아가서는 글을 못 쓴다. 글을 쓰고 싶으면 종이와 연필을 장만하면 된다. 글은 연필을 쥐어 종이에 내 삶을 쓸 때에 글이다. 4346.6.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글쓰기 삶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