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는 사람

 


  마음속에서 이야기가 샘솟는 사람은 마루에 앉아서 온누리를 가만히 그릴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서 이야기가 샘솟지 못하는 사람은 온누리를 골골샅샅 밟으며 다니더라도 어느 모습 하나 찬찬히 그리지 못합니다. 누군가는 온누리 골골샅샅 다니며 사진을 바지런히 찍지요. 그런데, 이렇게 사진을 숱하게 찍으면서도 막상 마음속 이야기를 길어올리지 못하곤 해요. 왜냐하면, 이야기 아닌 ‘그럴듯한 모습’만 자꾸 사진에 담을 뿐이었으니까요.


  사진으로 담아야 아름다운 모습이 되지 않아요. 아름다운 모습이었기에 사진으로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곧, 글로 써야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지 않아요. 아름다운 이야기인 터라 자꾸자꾸 샘솟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글로 쓸밖에 없어요.


  아름다움을 아는 이는 굳이 사진을 안 찍고 애써 글을 안 씁니다. 모든 이야기가 마음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아름다운 빛과 꿈이 마음속에 있으니, 사진을 안 하고 글을 안 하더라도 즐겁게 웃으면서 삶을 누립니다.


  다시 말하자면, 관광객이라면 사진을 찍지 않고는 아무것 남길 수 없으니 사진을 찍을밖에 없으리라 생각해요. 길손이나 나그네라면 마음에 담을 테니, 굳이 사진을 안 찍겠지요.


  그러면, 어떤 사람이 시를 쓸까요. 어떤 사람이 시를 읽을까요. 어떤 사람이 시를 말할까요. 어떤 사람이 시를 이야기할까요.


  아름다움을 마주하면서 애써 사진을 찍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느끼면서 힘껏 시를 쓰는 마음을 헤아립니다. 조곤조곤 아름다운 모습 ‘말’로 들려주어도 못 깨닫는 사람이 있으니 사진을 찍어서 보여줍니다. 그런데, 사진을 보기 앞서 아름다움이 어떻게 아름다움인가를 못 깨달은 사람이 사진을 보며 아름다움을 깨닫거나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어쩌면, 누군가는 사진을 볼 때에 비로소 깨닫거나 알아차리겠지요. 그러면, 마루에 앉아 온누리 아름다운 이야기 한껏 느끼지 못하는 사람한테 아름다운 이야기를 찬찬히 적바림한 시를 읽히면 이녁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어떻게 얼마나 왜 무엇이 아름다운가를 가만히 느끼거나 깨닫거나 알아차릴까요. 아마, 누군가는 시로 읽을 때에 바야흐로 느끼거나 깨닫거나 알아차리겠지요.


  사진을 보거나 시를 읽으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만, 사진과 시에 앞서, 사진으로 담는 나비를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고, 시로 노래하는 바다와 하늘을 두 눈으로 보고 살갗과 온몸으로 맞아들이면서 아름다움을 깨닫습니다. 글을 쓰려면 삶을 일구어야 합니다. 글을 읽으려면 삶을 생각해야 합니다. 삶을 볼 때에 글을 보고, 삶을 사랑할 때에 글을 사랑합니다. 삶을 즐길 때에 글을 즐기고, 삶을 빛낼 때에 글 한 자락 빛냅니다. 4346.6.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글쓰기 삶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