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11] 늘 듣는 소리
― 맑은 노래를 누리는 삶

 


  인천에서 살며 옆지기를 만나 짝을 짓고 아이를 낳아서 돌보던 어느 날, 옆지기가 ‘전철 복복선 지나가는 소리’ 때문에 도무지 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한참 망설이다가 민원을 넣었습니다. 민원을 넣은 지 한 달쯤 지났을까, 눈이 펑펑 쏟아진 날 ‘소음공해 측정’을 한다면서 공무원 두 사람이 왔어요. 어쩜, 다른 날도 아닌 눈이 펑펑 쏟아져서 전철이 가장 느릿느릿 지나가는 날 왔을까요. 그런데, 눈이 펑펑 쏟아져서 전철이 느릿느릿 지나가는 데에도 데시벨 측정으로 110이라는 숫자가 나왔지요. 이때 공무원들은 120인가 130을 넘어야 민원으로 받아들여 피해보상을 해 준다고 말했습니다. 참 어이가 없었어요. 당신들 스스로 느끼지 않느냐고, 이렇게 눈 때문에 천천히 달리고, 눈에 소리가 묻히는 날 아닌, 여느 때에 소음측정 다시 해야 하지 않느냐고 따졌어요.


  여느 때라면 얼마나 높은 숫자가 나왔을까요. 전철 복복선이니까, 두 대가 마주 지나갔을 적에, 또 빠른전철이 나란히 지나갔을 적에는 얼마나 높은 숫자가 나왔을까요.


  우리 식구는 인천을 떠났고 그 집에서 나왔습니다. 우리 식구가 인천을 떠났어도 기차길 옆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 식구가 나온 그 옥탑집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더군요.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아가며 날마다 참으로 즐겁다고 생각합니다. 풀내음을 맡으면서도 즐겁고, 바람과 햇살로도 즐거운데, 다른 무엇보다, 귀를 시끄럽게 찢는 소리 아닌, 멧새와 개구리와 풀벌레와 나뭇잎과 풀잎과 잠자리와 나비가 들려주는 노랫소리를 하루 내내 들으면서 지내니 즐거워요.


  이런 소리를 돈을 주고 살 수 있을까요. 주파수를 똑같이 맞춘 소리를 노래로 만들어 들려준다 하더라도 이런 즐거움 누릴 수 있을까요. 마을 할매 할배 들은 손전화 아무 때나 터뜨리지 않으니, 손전화 기계로 시끄럽게 할 사람 없습니다. 장사하는 짐차 지나갈 적에 몇 분쯤 시끄럽지만 이내 사그라듭니다. 우리 마을 어귀로 지나가는 자동차는 몹시 적어요. 군내버스는 마을 어귀로 하루에 여덟 대만 지나갑니다.


  맑은 물과 싱그러운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과 짙푸른 푸나무를 누릴 수 있는 데가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데라고 느낍니다. 그리고, 여기에 고운 소리 흐른다면 참으로 좋겠지요. 아니, 다른 것 모두 좋은데 시끄러운 소리로 귀를 찢는다면, 물이 맑고 바람이 싱그러우며 햇살이 따사롭더라도 살기 힘들리라 느껴요. 곰곰이 생각하면, 물이나 바람이나 햇살이나 푸나무 어느 한 가지가 없거나 모자라다 하더라도, 소리가 귀를 찢으면 사람들이 살아가기 너무 힘겹거나 고단하지 싶어요.


  소리를 들으며 삶을 생각합니다. 노래를 헤아리며 삶을 살찌웁니다. 이야기를 읽으며 하루를 빛냅니다. 어버이로서 아이들한테 어떤 말마디를 들려주는가 돌아봅니다. 아이들은 어떤 말마디로 하루를 새로 짓는가 곱씹습니다. 며칠 앞서부터 저녁이면 마당에서 몹시 큰 개구리 울음소리 들려서, 설마 황소개구리인가 했는데, 저녁나절 보니, 그냥 참개구리였어요. 참개구리 한 마리 우리 마당과 텃밭 사이를 오가며 지냈더군요. 좋은 하루가 저물며 맑은 노래가 흐르고, 아이들은 새근새근 잘 잡니다. 4346.6.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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