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나무와 책기둥
헌책방에서는 책이 책이기도 하면서 때로는 탑이 되고 때로는 밑받침이 된다. 헌책방에서는 책이 보배가 되기도 하면서 읽을거리가 되며 따사로운 이야기꽃이 되기도 한다. 헌책방에서는 책이 기록이나 역사나 문화가 되기도 한다. 아름다운 만남이 될 때가 있고, 애틋한 벗이 될 때가 있으며, 그리운 님이 될 때가 있다.
받침대 밑에서 기둥 노릇을 하는 책은 서운하게 여길까. 나무받침대 밑에서 튼튼히 기둥 구실을 하는 책은 저마다 어떤 빛을 이룰까.
나무한테서 얻은 종이는 사람들이 이야기 담은 책으로 다시 태어난다. 사람들한테 푸른 숨결 나누어 주던 나무는 알맞게 잘리고 손질받아 받침대나 책상이나 걸상 되어 우리 곁에 머문다.
오래되어 낡은 플라스틱이나 쇠붙이나 비닐은 쓰레기가 된다. 오래되어 낡은 책걸상은 잘 닦고 손질해서 두고두고 쓸 뿐 아니라, 너무 갈라지거나 쪼개졌다 싶으면 아궁이에 넣어 방바닥 지피는 장작으로 거듭난다.
다 다른 이야기 담긴 책은 어떠한 빛이 되어 사람들 손으로 다시 찾아갈 수 있을까. 오늘 이야기는 모레나 글피에 어떠한 빛으로 사람들 손에 살그마니 얹힐 수 있을까.
서른 해 꾸준하게 읽히는 책이 있고, 마흔 해만에 새롭게 빛을 보는 책이 있다. 이백 해 한결같이 읽히는 책이 있으며, 오백 해만에 비로소 빛을 보는 책이 있다.
책을 아름답다고 느끼면, 내 마음속에서 아름다움이 찬찬히 싹을 튼다는 뜻이다. 책을 사랑스레 느끼면, 내 마음자리에서 사랑이 천천히 움을 튼다는 뜻이다. 책을 반가이 여기면, 내 마음결이 보드랍게 춤을 추면서 이웃을 반가이 맞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누가 책기둥에서 하나 빼내어 다른 책을 책기둥 되도록 할까. 누가 책기둥을 하나하나 덜어내어 받침대 기둥이 오롯이 나무로 바뀌도록 할까. 돌고 도는 책이니만큼, 오늘은 책기둥이 되고 모레에는 다른 책들이 책기둥이 되다가는 글피에는 새로운 책들이 책기둥이 되겠지. 4346.6.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