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9] 시골길 걷기
― 가장 즐거운 마실

 


  가장 즐거운 나들이는 걷기입니다. 걸어서 다니는 나들이가 가장 즐겁습니다. 두 다리로 천천히 거닐 때에는 우리 마을과 이웃 여러 마을 천천히 느낍니다. 논을 보고 밭을 보며 풀숲을 봅니다. 나무를 보고 하늘을 보며 먼 멧골을 봅니다. 하늘과 구름과 해를 봅니다. 새와 풀벌레와 개구리를 보지요.


  두 다리로 천천히 걷기에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두 다리로 천천히 걷는 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아이들은 저희 깜냥껏 신나게 뛰어놉니다. 아이들은 거침없이 뛰고, 거리끼지 않으며 달립니다.


  갑작스레 온 나라에 ‘걷기 바람’이 불면서 관광길을 곳곳에 큰돈 들여 우지끈 뚝딱 하고 만드는데, 사람이 거닐 길이란 돈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사람이 거닐 길은 오직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보금자리와 마을이 있는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숲과 들로 이어지는 풀섶입니다.


  바닥에 아스콘이나 돌을 깔아야 하지 않습니다. 울타리를 세우거나 전망대를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이 길로 몇 킬로미터, 저 길로 또 몇 킬로미터, 이렇게 나누어 길을 닦아야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걷는 길에 표지판이나 알림판 있을 까닭 없습니다. 그저 걷는 길이요, 걷다가 느긋하게 쉬는 길입니다.


  풀숲에 앉으면 되지요. 바위에 앉으면 돼요. 나무 밑에 앉으면 되고, 모래밭에 앉으면 돼요. 따로 걸상을 마련해야 할 곳은 버스터나 기차역입니다. 이런 데에는 걸상을 넉넉히 마련해서 퍽 많은 사람들이 다리도 쉬고 짐도 내려놓기 좋도록 해야 합니다. 공원에 따로 걸상이 있지 않아도 돼요. 다만, 비 내린 뒤에는 풀밭에 앉기 어려울 수 있으니, 비를 그을 만한 자리에 걸상을 둘 수 있겠지요. 이런 걸상은 모두 나무로 짜면 됩니다.


  혼자서도 걷고 아이들하고도 걷습니다. 씩씩하게 걷습니다. 한 시간쯤 가볍게 걷습니다. 두 시간도 이럭저럭 즐겁게 걷습니다. 걷다 보면, 아이들이 힘들어 할 때가 있는데, 아이들이 힘들어 하면 한 아이씩 안거나 업으면 돼요. 작은아이가 안기거나 업힌 뒤 내려서 다시 걷고, 큰아이가 안기거나 업힌 뒤 내려서 다시 걸어요.


  아이들은 즐겁게 걸어가면서 다리에 힘을 붙입니다. 아이들은 신나게 걷고 뛰고 달리고 날면서 마을과 보금자리를 넓게 껴안습니다. 아이들은 활짝 웃으면서 걷는 내내 바람과 햇살과 흙과 빗물과 냇물과 풀과 나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를 시나브로 느낍니다. 4346.6.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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